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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 ‘아니오’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당신에게
이승주 지음 / 책들의정원 / 2019년 9월
평점 :
참다 참다 벗어버리게 된 어떤 분풀이가
적어도 나 스스로를 구제할 수는 있을 거라고.
귀여운 아내인 척,
현명한 며느리인 척,
착한 직장인인 척하지 않는
이 솔직한 발산의 이야기가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 이승주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다수의 유명한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무탈했던 20대와는 달리 30대의 세상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간섭, 정신 병동 같은 직장생활, 멘탈까지 후달리는 전투 육아까지 겪으면서 그녀의 가슴속에 활화산 같은 화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더 이상은 입 닫고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자신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번째 책인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를 통해 기혼여성이 맞닥뜨린 리얼 라이프를 이야기하며, '아니오'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의 생각.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의 행동.
딱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의 일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삶을 살아갈 바엔, 나다운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과 부딪혀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트리플 A형과에 속했던 나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말도 적은 편이라 친구들도 조금씩은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상냥하게 웃으며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이미지 탓에 더 어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러터진 속과는 달리 겉으로 보이는 조금은 세하고 강해 보이는 이미지 탓에 나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나를 자기주장 강하고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단정 지어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보이는 이미지의 덕도 보는 편이라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니 보니 언젠가부터는 사람들을 담대하게, 솔직하게, 심플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돌고도는 세상 속에 꼴 보기 싫은 인간들은 계속 나타나고 관계가 엮이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만 생각하며 심플하게 정리가 된다.
나의 정신 건강이 제일 소중해!!!
사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다.
늘 같은 자리에서 동동거리지 않고, 한 가지 패턴과 풍경으로 살지 않고, 삶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더 넓게 펼쳐내기 위해서 말이다.
호캉스는 단지 '호텔로 가는 바캉스'가 아니라 '내 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으로도 '나'라는 존재를 건강하게 끌어가기 위해 만남의 '쉼의 방식'을 이어갈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엔 두 가지 못된 공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여성을 이용하는 방법은 아름답다는 찬사다'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입을 닫게 하는 것은 못생겼다는 비난이다.'이다.
그 어느 쪽도 여성 입장에선 정답이 아니다.
사회가 정의한 아름다움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평범한 주물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것'이자 끝없는 고통만을 안겨줄 뿐이다.
'살을 빼는 것이 정답', '예쁘지 않으면 무 쓸모'라고 말하는 망할 놈의 세상!
'뚱보의 저주'는 스스로를 혐오해 만들어낸 환영일 뿐, 콤플렉스나 이상한 편견이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은 나'라며 스스로를 예뻐해 주는 건 어떨까.
물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노력하다 보면 자존감은 최고점을 찍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장, '엄마'라는 이름의 수백 가지 그림자에서는 결혼 후 겪게 되는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시월드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
언젠가부터 출산을 하면 조리원으로 들어가는 게 당연시 된 것 같다.
물론 난 조리원 세대가 아니었으므로 그곳의 생활상을 저자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부만 알게 된 셈인데 나의 성격으로는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댁은 '시댁'인데 처가는 '처가"인가에 대한 글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시댁은 '도련님', '아가씨'로 존칭하면서 친정 쪽은 '처남', '처제'로 부른다는 것.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불렸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여성가족부가 가족 호칭을 정비해 새로운 이름은 마련한다고 하니 모두가 공감하고 공평할 수 있는 가족 호칭어로 정리되길 바라본다.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도 있다.
이런 이야기(호칭에 관한)는 또래와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조금만 나이가 있거나 부모님 세대만 되어도 이런 말을 꺼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싸우자는 게 아니라 모두가 공평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자는 건데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더 강하게 반대하는 건 뭔 경우인지...
그리고 '시월드의 언어폭력'으로 속상해하는 며느리들을 위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아들이 있고 딸이 있으니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딸을 시집보낸 친정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상식적이건 사람도 '시'자만 들어가면 비상식적인 사람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는데 나부터라도 비상식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실천하고자 한다.
워킹맘인 저자의 고충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엄마, 부인, 딸, 며느리, 회사원 등 다양한 모습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 부모님, 친구들을 챙기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를 챙기는 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 좋았다.
나 하나만 참는다고 다 괜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