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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 진도·제주편 - 치열한 생존과 일상을 기록한 섬들의 연대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ㅣ 섬문화 답사기 시리즈 4
김준 지음 / 보누스 / 2019년 9월
평점 :
섬이 주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예전에 내가 느꼈던 섬은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곳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고립되어 있는 사람은 볼 때면 '섬'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다소 부정적인 느낌으로 인식되었던 섬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은 바뀌어 가고 있다.
넓은 바다에 떠있는 섬들은 긴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겐 휴식 같은 곳이기도 하다.
긴 바다를 항해하지 않는 이들도 힘들고 지치는 고단한 삶과 시간들을 치유받고자 섬으로 떠나기도 한다.
외롭고 쓸쓸함으로 여겨졌던 섬은 오하려 외로움을 토닥거려주고 쓸쓸함을 덜어주는 위안의 섬이 되었고 다시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만시켜 주는 힐링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김준 박사가 저술한 <섬문화답사기>는 바다에서 쓴 21세기 '섬 대동여지도'라고 한다.
한국의 3,300여 개 섬 가운데 460여 개 유인도를 20년에 걸쳐 낱낱이 누비면서 샅샅이 기록한, 발로 쓴 장편 섬답사기이자 장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바다, 그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한반도의 영원한 미래의 보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섬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새 문화들이 거듭 창출될 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섬살이를 소중하게 갈무리해 보관하는 '씨오쟁이 - 섬을 지키는 토종 씨앗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섬문화 답사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다와 갯벌은 우리 세대만 이용하는 자원이 아니기에 당장 눈앞 이익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방법은 바다에 있고, 숲에 있고, 길에 있고, 섬사람들의 삶인 문화에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섬문화답사기-진도, 제주 편>는 저자가 부지런히 섬길을 걸으며 찾고 기록한 섬들의 생태를 연구와 인문학적인 탐사의 결과물로 곳곳에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고독과 고립의 공간인 섬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와 거친 바람이라는 숙명적인 한계에 온몸으로 맞서며 미역줄기처럼 질기게 살아온 섬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의 역사와 일상에 주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진도는 본 섬을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은 정말 새떼처럼 조도면에 모여 있다.
한 면에 5개 유인도와 119개 무인도로 모두 154개가 모여 있는데 좁은 공간에 많은 섬이 분포한 것으로는 단연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란다.
섬만 많은 것이 아니라 관매도, 주지도, 양덕도, 혈도, 병풍도 등 그 모양새가 아름답다.
그러나 대부분이 바위섬이다.
바위가 많으니 얼마나 척박할까.
게다가 물길이 거칠기로 조선에 제일이라 명량해전의 울돌목, 장죽수도, 맹골수도, 거차수도, 독거수도, 모두 조류가 거세서 한때는 오갈 수 없었고, 많은 목숨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이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돌미역과 멸치라는 선물을 주었다.
진도의 돌미역은 '진도곽'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결혼하는 딸에게 혼수품을 넣어 보냈다고 한다.
거친 바다에서 바위를 붙잡고 살아야 하는 돌미역은 어쩌면 섬 주민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돌미역이 없었다면 무인도로 바뀌었을 섬들이 꽤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도 군도의 작은 섬에서 섬살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돌미역 덕분이기에 섬사람들은 바다에 겸손하고 고마워하며 살아간다.
진도의 벽파진은 울둘목을 사이에 두고 해남의 우수영과 마주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배되어 온 곳이기도 하지만 명량해전의 대승을 이끈 이충무공전첩기념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벽파의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이더니라.
- 이충무공전첩가념비 <이은상 - 글, 손재형 - 글씨> -
명량은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바다다.
폭이 좁은 곳은 294미터, 넓은 곳도 1,500미터에 불과하다.
이곳을 흐르는 물은 가장 빠를 때는 초속 6.5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바다가 운다.
그래서 울둘목이라 한다.
진도의 바다는 아프다.
백성들이 힘들 때 함께 울었기 때문이다.
삼별초, 정유재란, 한국전쟁 그리고 세월호까지.
진도의 바다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진도에 전해지는 '진도만가'는 저승길을 닦는 상여놀이란다.
진도 무속에서 비롯되었다는 '만가'는 부모 주검 앞에 자식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게 판을 벌인다.
물론 망자의 넋을 위로하면서.
진도에서 죽음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엿소리를 하는 소리꾼과 함께 흥을 돋우어 이승에 남은 가족에게는 위안을 주고, 구경꾼들에게는 굿을 보여준다.
섬사람들은 죽음을 단순히 숙명으로 받아들지 않았다.
죽음은 산 자들이 삶을 다잡는 카타르시스요, 축제였다.
진도 문화는 그 자체가 축제요 놀이였다.
제주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있는 상황이라 또 한 권을 더하는 것보다는 본섬을 제외하고 작은 섬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주 가파도는 평균 고도가 20.5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가장 높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도에는 산이나 봉우리가 없다.
높은 산이 없어 농사짓기 좋을 것 같지만 바람이 강해 쉽지가 않다.
평평한 섬이지만 제주도에 딸린 섬(추자도, 우도, 비양도, 마라도, 가파도 등) 중에서 물 걱정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우물이 109개 정도 있는데 이 중 공동우물이 4개, 집집마다 샘이 있었다는데 해안을 매립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비양도는 제주도의 미니어처다.
비양봉의 분화구도 그렇고, 한림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마치 뭍에서 제주를 보는 것 같다.
제주에 딸린 섬 중에서 가장 여행객이 적어 때가 묻지 않은 섬으로 아직까지도 옛 제주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제주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바닷가를 중심으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해안경관이 많이 무너졌다.
이를 부추긴 것이 '올레'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편의시설이 만들어지고, 자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땅을 목돈을 주고 사겠다니 땅을 팔았고, 그곳에는 국경을 알 수 없는 건물이 들어섰다.
비양도만은 그래도 예외였다.
그래서 가장 제주다운 작은 제주로 비양도를 마음에 담았는데 최근 비양도를 다녀와보니 아쉽지만 그 마음을 비워야겠더란다.
추자도는 거리로 보면 제주에 훨씬 가깝지만 '제주스럽지 않고 낯익은 것' 같다.
자연환경이 전라도 연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먹아보면 영락없이 전라도 사람이다.
제주의 갯바위는 현무암인데 추자도의 바위는 대륙에서 관찰되는 안산암이다.
<제주어사전>에서 오름은 '한 번의 분화 활동으로 봉긋봉긋 솟아오른 화산'이라고 했다.
오름은 모양새에 따라 말굽형, 원추형, 원형, 복합형으로 나뉜다.
제주에는 37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용눈이오름', '새별오름', '수월봉' 등 널리 알려진 유명한 오름도 많은데 그중 '거문오름'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거문오름은 모두 세 개의 탐방로가 있는데 정상 코스, 분화구 코스, 용암협곡 코스다.
이 중 정상 코스와 분화구 코스는 가이드 안내를 받으며 언제라도 트레킹이 가능(물론, 예약에 성공해야 함) 하지만, 용암협곡 코스(용암이 흘러내린 길을 따라 걷는 길)는 '국제트레킹'행사 기간에만 개방한다고 한다.
해녀는 제주의 전통문화의 상징이다.
이들이 하는 생업을 '물질'이라 하고, 그들을 가리켜 '잠여' '잠수'라고 한다.
수산업법에는 '나잠어업'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산소 공급장치 업ㅎ이 잠수한 후 낫, 호미, 칼 등을 사용하여 패류, 해조류, 기타 정착성 수산동식물을 포획, 채취하는 어업'으로 신고를 한 후 어업활동을 한다.
해녀의 명칭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바닷가 물속에 들어가서 해조류와 패류를 캐는 여인'이라 정의하니 그대로 풀이하면 '바다의 여자'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잠여, 잠수는 '자맥질'이라는 어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명칭이기도 하다.
섬으로 유배된 사람들도 많았다.
가까이 강화도로 유배 보내진 이들도 있지만 멀리 전라도의 많은 섬들과 제주까지 유배를 보내곤 했는데 조선시대 제주도에는 270여 명이 유배를 왔을 정도라고 한다.
제주는 이젠 유배객 대신에 1,000만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다.
이들의 여행을 '자발적인 유배'라고 하기도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