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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김미량 지음 / SISO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프랑스 국경지대 '생장'이라는 도시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라는 도시까지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행자들이 뽑은 가장 걷고 싶은 길이란다.
예수의 제자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걸어왔던 길로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다.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부터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많은 여행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코스가 되었다.
흙길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옛길을 걷다 보면, 순례자들의 발길에서 불거진 영험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으며,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숭고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한다.
순례길은 총 32구간으로 완주 시 대략 800km를 걷게 된다.
보통 하루에 20 ~ 30km를 걷는데 총 6~7시간 가까이 소요된다고 할 때 순례 여정은 5~6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물론 개인의 체력과 사정에 따라 매일 걷는 시간이 다르고,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참배하기 위해 걷는 순례자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걷기를 좋아하거나 자기 성찰 등 개인적인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걷기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마침 얼마 전 종영한 '스페인 하숙'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듯하기도 하다.
나 또한 걷기의 매력에 빠져 걷기 좋은 곳들을 찾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갈맷길, 해파랑길 등 걷고자 마음만 먹으면 국내에도 걷기 좋은 곳들이 참 많지만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장장 800km에 달하는 대장정의 길로 5~6주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제일 먼저 여정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나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라 한 번 간 김에 최대한 머무를 수 있도록 계획을 짜야 할 것 같았는데,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쉽게 떠날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이 길을 걷는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 읽게 된 책이 <올라!>였다.
21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로 살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산티아고행을 결심하게 된다.
<올라!>는 산티아고 여행을 준비하는 시점에서부터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오롯이 홀로 나아가야 하는 길이었지만 긴 여정 동안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항상 '함께'였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모인 순례자들은 서로에게 친구, 애인, 엄마, 아빠, 언니, 동생, 형이 되어주며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동행했다.
순례자들은 서로의 아픔을 덜어주고 어루만져 주며 지금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순간순간 느끼면서 한마음으로 가까워졌다.
순례길을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서로의 좌절에 순수함으로 울어주고, 어떤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고. 지금의 방황에 불빛이 되어 주기를 자청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기대했던 것들, 듣고자 했던 대답들, 뭔가 찾아 헤매던 것들을 각자 원하는 만큼 다 얻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게 되겠지만,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보았다.
'온전히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더 깊고 커진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어떤 일원이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고민거리들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삶에 대해 조금 더 현명해지고 어른다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를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단단하지 않으면 자신의 나라에 살고 있을 때보다 더 많은 허상을 쫓고 시달리게 된다는 걸 보아왔다.
오리건 주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며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사람에게 상처받고, 뭔가 꼬일 대로 꼬인 사건들 때문에 얼룩진 역사들로 가족들과 서먹하게 지내는 시간들도 힘겨웠다.
오래 미국에 살아도, 설령 태어났다 하더라도, 미국인이 아닌 것으로 취급받기 쉬웠고, 한국에 살고 있지 않는 지금은 한국인도 아니다.
어디에도 낄 데가 없는 문화적 난민이었다.
받아 주질 않으니 혼자 버티는 수밖에 없었고,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주어진 환경이 모두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만 억울했던 것도 아니고 매 순간들을 낭비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렇게 살아남았는데, 뭔가에 휩쓸리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제대로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는 일조차도 힘들어질 만큼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고, 쉼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쓸데없는 사명감과 답을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과 지나친 무모함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순례자들이 자연을 벗 삼아 동화되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에 그들이 정말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는 얘길 들었어.
너에게도 그런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 얼어날 거야."
산티아고에 모인 순례자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너무나 많이 지니고 있었고, 더 가지려고 부단히 애쓰려다 상처받고, 부러지고 그러다 무너졌고 그래서 결국 누더기가 되어 버린 영혼의 치료를 위해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기분 전환을 하거나 재충전을 하기 위해 혹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떠나온 여행이 아니었다.
오롯이 필요한 몇 가지의 소지품과 허기가 졌을 때 먹을 약간의 비상식량을 배낭에 담고 물병을 들고 걸으며 많은 것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운다.
뭔가를 지금 원하는데 여의치 않을 때 현재 상황에 맞춰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빨리 내려놓는 것을 배운다.
내가 내려놓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면서 느끼던 공허함이나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법정 스님의 가르침대로 소유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자유를 나는 여기서 배운다.
더 갖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지금'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욕심을 조금 덜어낸다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양쪽 어깨가 조금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젠 내 힘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두려운 없이 당당하게 걸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
날씨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이제는 어정쩡히 끼어서도 편안해하며 살아가는 법도 배운다.
그 또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니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한 사람이 '나'임을 믿고 당당해질 것을 배운다.
저자는 <올라!>을 통해 순례길에서 만나 모든 천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들의 애정 어린 보살핌이 아니었다며 힘든 여정을 혼자서는 도저히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 덕분에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원이 되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은인이었고, 삶의 길잡이였고, 마음의 짐을 대신 져준 짐꾼이었고, 등 뒤에서 지켜주는 보호자였다.
"까미노의 천사들이여,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