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때 내세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불가론이 조선의 지침이 되었고, 공자의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중국을 하늘 같은 존재로 삼으며 섬기었다.
소수의 사대부와 그들이 형성한 양반이라는 지위층이 절대다수의 백성을 억누르고 있는 구조에 세종은 눈을 떴으며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수단이 글과 학문이라는 사실에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의 힘은 지식과 지혜에 의해 결정되는 바, 백성이 책을 읽어 지식과 지혜를 얻기에는 한자라는 문자가 너무 어려웠고, 결국 학문도 지혜도 신분도 벼슬도 다 세습된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세종은 역사상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생각을 해낸다.
하지만 사방이 적이었다.
고관대작은 물론 집현전 학사들 중에도 제 나라 임금을 업신여기고 명나라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강종배는 명나라의 환관 주구에게 세종이 요사스러운 글자를 만들어 명나라 황제에게 반역행위를 한다 보고하고 주자각을 불한당을 보내 은수의 아버지인 양승락을 죽이고 은수를 납치한다.
은수는 명나라로 끌려가지만 은수를 양녀로 받아들이고 도피시켜준 유겸과, 객주에서 불한당을 제지해준 이름 모를 노인과 손님들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옷에 주황색 머리를 한 신부(베르나스)의 도움으로 북경을 떠난 은수는 2년이 지난 후 바티칸에 도착하게 된다.
베르나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봉사를 시작한 은수는 수많은 서기와 필경사들에 의해 사형수가 바뀌고 다른 사람이 사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고발하게 되면서 바티칸으로 가 교황을 만나게 된다.
모음 하나 잘못 쓰는 작은 실수로 무고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교황에게 은수는 금속활자를 소개한 후 직접 시연을 보여준다.
쇳물을 녹여 거푸집을 통해 만든 활자 가지에 붙어 있는 알파벳을 하나씩 떼어내 일자로 배열해 고정시킨 후 염료를 묻혀 종이를 덮고 정성껏 문지른 후 종이를 들어 올리니 종이 위에 선명히 글자가 꽂혔다.
교황을 비롯한 모든 성직자들은 신의 은총이라며 감격했다.
그러나 다음날 바로 은수는 로마의 마인츠라는 도시로 보내지게 된다.
필사업이 성행한 마인츠의 어느 필사 공방에서 필사를 하던 은수는 필사업의 한계를 느낀 후 금속활자를 만들려다가 마녀로 몰리게 된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금속활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백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돌아가셨고, 조선에서는 백성을 위한 글자는 만드신 상감이 계셨고, 그분 또한 글자를 퍼뜨리는 게 의미가 있다고 하셨기에 이곳에서도 글자를 퍼뜨리는 건 똑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은수가 만든 금속활자를 보고 찬양과 축복을 내렸던 교황과 사제들은 사람(가난하고 무식하고 저급하고 비열한 자)들이 쉽게 글자를 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궤변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며 은수를 악마의 대리인으로 몰아세우며 만약 금속활자를 만들려 한다면 바로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