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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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해 밥하는 시간

나의 삶을 치유하는 시간


저자는 많은 여성들이 홀로 밥을 먹으면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늘 누군가를 위해서 밥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여자들이 홀로 밥을 먹을 때의 홀가분함을 기쁨으로 느낀다고 봤다.

자신을 위해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리고 홀로 즐겁게 밥을 먹는다는 게 서글프거나 우울해할 일도 아니지만 마냥 기쁘고 즐거운 것도 홀가분한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점심, 저녁을 혼자 해결할 때가 많다.

물론 낮 시간에는 지인들과 약속을 만들어 함께 식사도 하지만 매일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혼자 밥을 먹게 된다.

저자가 쓴 '밥 경전'에 나오듯 대부분 건성으로 밥을 먹는 편이라 혼자 밥 먹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가 않다.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거리를 뒤적이며 오롯이 나만을 위해 맛있게 한 상을 차리기보단 '혼자 다 먹지도 못할 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앞서 그냥 대충 끼니나 때우자는 식으로 밥을 먹게 된다.

나에게 밥이란 가족과 함게 먹는 정겨움이 담겨있어야 제맛이 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가계가 달린 집에 살았는데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셔서 대부분의 식사는 늘 부모님과 했다.

밥을 먹는 즐거움도 컸지만 매일 엄마와 시장에 가 그날 저녁 반찬거리를 사 오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함께 장을 보고, 맛있게 요리가 되어 따뜻한 밥상이 차려지면 즐겁고 행복하게 밥을 먹었었다.

밥은 항상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결혼 후 혼자 먹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그게 그렇게 싫었다.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몽글몽글 피워내는 밥의 설법.

오십 평생 이 단순한 밥이 없었네.

그게 무슨 삶이라고!



저자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따뜻하고 아늑한 밥에 대한 기억이 없었기에 영혼마저도 따뜻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평생 느껴왔던 삶의 허기, 고아 의식은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밥의 허기에서 오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제대로 못 먹어 영혼이 허기가 져 있는데 제대로 먹일 생각조차도 못 했다는 것이 허망했다고...

남은 생애 동안 스스로에게 정성스러운 밥을 올리는 '즐거운 밥하기'를 실현하기 위해 '따뜻한 밥 먹기'부터 배워나가고 실천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밥을 하는 행위'에서부터 '어떻게 먹을 것인가?'고민해보니 대충 먹는 밥은 대충 사는 삶 같았고, 허겁지겁 먹는 밥은 허겁지겁 사는 삶 같더란다.

나는 혼자 먹는 게 적적하기도 하고,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 대충 한 끼 때우는 식으로 밥을 먹었었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할 때는 대충 차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위해 밥 한 끼 차리는 게 뭐 그리 번거로운 일이라고 대충 먹을 생각만 했을까.

대충 먹고산다는 건 스스로의 존엄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말에 맘 한켜가 씁쓸해졌다.

저자는 먹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각적으로 깨어서 먹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했다.

한 끼 밥을 대하는 태도가 나를 대하는 태도, 내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밥을 정성스럽게 먹는 행위는 나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고, 내 삶을 정성스럽게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른 봄에 씨 뿌리고 물을 주고, 햇빛과 비를 받고 자라는 모습을 매일매일 지켜본 생명들이 놓여 있는 식탁.

내 손으로 기르고, 내 손으로 거둔 생명을 요리해 차린 밥상.

이 밥을 먹으면서 언젠가부터 내가 든든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스스로가 소중한 느낌이 든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하면서도 가슴 벅찬 기분.

그토록 막막하고 공허했던 삶이 어쩌면 아무렇게나 먹은 밥과 깊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밥 먹기를 그리 허술히 하면서 삶이 풍성하길 바랐다니.



단순하게 밥 한 끼 먹는 걸 가지고 삶을 운운할 만큼 대단한 건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밥'에 대한 추억에는 많은 것이 얽히고 섞여 있어 한 사람의 인격과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정성 어린 밥상은 가족들의 마음에 따뜻함이 가득한 사랑과 행복을 뿌리 깊게 남긴다.

매일 차리는 밥상이지만 한 끼 한 끼를 소중히 여기고, 밥을 먹는 행위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자각적으로 깨어서 음식을 먹을 때, 밥 먹는 행위는 맑고 아름답다.


압력밥솥 뚜껑을 열고 김이 막 오르는 밥을 나무주걱으로 살살 젓는다.

먹빛이 도는 자그마한 자기 그릇에 소복이 담는다.

현미잡곡밥에 들깨미역국, 두부구이, 김치.

식탁에 단정히 앉아 손을 모아 감사드린다.

한 입씩 먹는다.

현미밥은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밥이 다 넘어가면 국을 뜬다.

미역의 미끌한 느낌과 들깨의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현미유에 구운 따뜻한 두부의 말랑하면서도 졸깃한 맛,

약간 신 김치의 톡 쏘는 알싸한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는다.

저무는 햇살이 갓 튀겨낸 튀김처럼 투명하게 바삭거린다.

반찬으로 가을 저녁의 햇살을 한 줌 뿌린다.

딱새 한 마리 먹이를 물고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함께 식사를 한다.


"잘 살고 있나요? 당신"


내게는 숨 쉬기처럼 당연한 일상이 없었다.

평생 밥을 먹었지만 '밥'이 없었고, 평생 몸을 지니고 살았지만 '몸'이 없었고, 평생 집에서 살았지만 '집'이 없었다.

온각 관념의 세계를 헤맨 끝에 만난 게 '아무것도 아닌' 세계라는 역설.

그 역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직관.

그런 것이 글을 시작하게 했다.

그러니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관념에서 구체적인 일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겪은 지루함과 고됨, 자신과의 싸움, 그러면서 조금씩 쌓여간 삶의 어떤 굳건함, 단순한 기쁨, 아름다움, 고요한 시간...

그 일상의 즐거움이나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다.


<저자의 말> 당신에게 건네는 일상적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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