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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명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우리에게는 그 어떤 길을 가더라도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삶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보다 막상 부딪혀보면 두려운 게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자에게는 그 길을 능히 헤쳐나갈 힘과 지혜가 함께한다.
"내가 나를 물을 때 부처가 온다."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내가 내 발로 걸어가는 삶, 자유의 삶.
그것이 바로 부처의 길이다.
자유 없는 곳에 행복한 삶이란 없다.
짧은 인생, 자유롭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다 가자.
흔들려도, 넘어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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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명진 스님은 종교면보다는 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하는 종교인으로 사회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오셨다.
조계종의 적폐와 총무원장 고발, 종교인 과세, 박근혜 탄핵, 이명박 구속,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최고의 부자도, 최고의 유명인사들도 '대체 어떤 게 잘 사는 건지'를 고민한다 하니 그들 또한 사는 게 어렵고 행복하진 않은 모양이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물질에 더 집착하게 되면서, 더 돈의 노예가 되는데 돈은 너무 많아도 불행하고 너무 없어도 불행하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부자는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불행하고 가난한 자는 없어서 불행한 사회다.
물질적 욕망만 쫓는 이 사회의 불균등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헬조선'을 극복할 수 없다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한때는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고 우리는 불나방처럼 그것을 향해 달려왔는데 이제 우리는 물질적 욕망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님은 중요한 것은 기준점이라며 어떤 것을 삶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하셨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는 '나도 잘 살고 사회도 잘 사는 법'을 모색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이 안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전문가일수록 이런 '지식의 착각'에 빠지기가 더 쉽다고 한다.
자부심은 오만이 되고 오만은 곧 오판으로 이어지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너무 신뢰하면 다양한 변수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확신을 가진 사람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가장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늘 회의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말씀하셨다.
확신을 갖고 하는 일이 갈등을 낳기도 하는데 그런 태도가 전쟁까지 빚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우리 안의 견고한 성벽 같은 '앎'을 허물고 우리가 착각하는 존재임을 인식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사는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우리가 과연 무엇을 옳다고 감히 확신할 수 있을까.
모르면서 안다고 확신하는 그게 가장 무서운 재앙이다.
안다고 확신하고 옳다고 맹신하는 순간 우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믿음과 확신은 위험하기에 스님은 끊임없이 회의한다고 하셨다.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는 성찰이며, 성찰의 핵심은 확신하는 순간 돌아는 것이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의심할 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성찰하는 상태가 되며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우리의 생각을 말하는데 이것이 잘 버려지지도, 내려놓아지지도, 비워지지도 않는다.
스님은 마음이, 그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보라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 생각이라는 것, 욕망이라는 것은 모두 '앎'에서 비롯된 것으로 '앎'은 생각의 뿌리이며 욕망의 뿌리라고 하셨다.
마음을 비우려면 바로 이 '앏'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이며, 이 '앎'을 끊는 비결은 '모름'을 닦아 나가는 것이란다.
모름을 닦아나가다는 것은 앎이 바탕이 되었던 우리의 사고방식을 모름으로 뒤집어 놓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아는 존재가 아니라 모르는 존재라는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고 보다 나은 삶으로 도약하고 싶어 한다.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업'을 바꾸는 것이란다.
그 운명을 바꾸는 법, 업을 바꾸는 지름길이 바로 '앎'이 아닌 '모름'을 수행하는 것이란다.
모름을 깨달으면 힘이 생기는데 어떤 것이 옳다는 생각에 갇히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란다.
무언가 틀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과 아무런 장벽 없이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은데, 어딘가에 묶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사유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창의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것도 이런 사고의 자유 속에서 창의력을 얻기 위함이란다.
마음을 다 비운 상태에서는 '앎'에 묶이지 않는 수만 가지 자유로운 생각이 일어난다.
'앎'을 모두 버린 '모름' 속에는 지혜가 깃들어 있으니 '앎'에 묶이지 말고 '모름'이라는 자유로운 속에서 살아보라 권하고 있다.
자유 없는 곳에 행복한 삶이란 없다.
짧은 인생, 자유롭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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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채 안 되는 생을 살아가는데 재산, 지위, 명예들이 과연 내 길을 가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일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단다.
결국 죽는 날 빈손인 게 인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말씀하신다.
인생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너무 짧다.
너무 짧아 섬광같이 찰나 가버리는 다시는 살 수 없는 인생의 순간을 왜 남 따라가며 살아야 하는가.
내 길 가기도 모자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