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두 아이의 7살 무렵부터 시작된다. 둘은 다른 듯 닮았고 먼 듯 가까웠다. 또 둘 사이엔 친구 사이가 그렇듯 질투도 있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의존도 있었다. 초반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은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의 못된 심뽀가 서로를 할퀴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 또한 연필심이 눈에 박혀 친구 집에 엄마와 손을 잡고 따지러 간 시절이 있다. 그러나 릴라는 나와 달랐다. 이 소녀는 남자 아이들에게 맞고 질질 짜는 흔한 여자 아이가 아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본인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를 향해 돌을 피가 날 때까지 던지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때는 커터 칼을 꺼내 들어 남자 아이의 목에 피를 냈다. 내심 통쾌했다. 수동적인 나에 비해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본인을 스스로 지키고 그녀의 친구도 지켜냈다.
그러나 릴라의 적극적인 보호 본능은 집에서부터 길러진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중학교에 가지 못할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라고 있는 여자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를 그렇게 좋아라하고 구워 삶았건만 결국 그녀는 집에서 집안 일을 돕는 딸아이에 그치게 된다.
우리네 엄마들은 어떤가.
우리 외삼촌은 당연히 대학을 갔지만 엄마는 고입 원서를 쓰기 위해 외할머니에게 시위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3일을 굶어야 했다. 심지어 나의 과거 시어머니는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경제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보는 오빠의 친구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나는 우리 식구들을 비롯해 시댁 식구들이 '나의 가족'이란 카테고리에 들어오게 되고 이 많은 가족들과 오손도손 지내는 것이 결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 집에서 항상 으뜸가는 손님이었고, 나는 시댁에서 종일 설거지를 하고 상을 닦는 며느리였다. 남편은 아이를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남편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돈을 벌고 집에서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돈 번다고 생색내는 아내에 불과했다.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 차별이 이 책에는 아주 편한 문체들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인생에 녹아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은 46년 생인 이들에게는 시작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똑똑했던 릴라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집에서 그녀는 무엇을 꿈꾸며 자아를 찾게 될까.
전쟁을 막 이겨내고 남편의 욕설과 매질이 애정을 넘나드는 행위로 인정받던 그 시절. 돈이 없으면 여자 애는 학교를 못 가는 게 당연한 그 시절. 릴라가 자아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보다도 영리한 머리와 날카로운 본능을 가진 릴라는 그럼 이런 좌절에 분노를 느낄까? 아님 순응하게 될까? 결혼으로 또 다른 행복을 찾아가는 것 같던 그녀에게 이 책의 마지막 줄은 심장이 훅 무너지게 한다.
두 여성의 우정은 정말 눈 부시다. 그러나 두 여성은 다른 길을 가게 될까, 아니면 다만 릴라가 먼저 다른 듯 같은 길을 걷는 것 뿐일까. 이 책의 3편이나 4편 즘에서는 정말로 둘이 스스로를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치밀한 인물들의 성격 묘사는 주인공을 가장한 작가가 영민하고 예리한 여성이란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무던해 보이는 주인공의 심리가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다니 독자는 읽으면서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던해 보이는 주인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헤매며 살아가는 '나'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해 치밀하게 그러나 재미있게 생각해 보길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