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이기는 게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이소담 옮김 / 김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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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이기는 게임> 요시타케 신스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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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유독 흰색 페인트 선만 밟으며 걷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을 했을 것 같다. 발이 아스팔트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괜히 지는 것 같고, 무사히 건너편 보도블록에 발을 디디면 세상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승리를 거둔 양 가슴이 뿌듯해졌다. 어른이 되면 이런 싱거운 놀이는 시시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아슬아슬하게 타거나, 마트에서 고른 계산대 줄이 옆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줄어들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주먹을 쥐는 순간들이 여전히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 '날마다 이기는 게임'은 바로 이 사소하고 은밀한 마음의 순간들을 잘 포착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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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아침에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일정이 조금만 틀어져도 오늘은 이미 글렀다는 생각이 하루 전체를 지배하곤 한다.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는 기분 속에서 남은 시간마저 망쳐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적인 하루의 기준이 너무 엄격했던 탓은 아닐까? 이 책이 독자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지점은 거창한 성취 대신 승리의 조건을 내가 직접 바꿔버리는 유연한 시각에 있지 않나 싶다. 승리의 기준선을 내가 닿을 수 있는 현실적인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자책으로 무거워졌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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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미덕은 "다 잘될 거야"라거나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어보라"는 식의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고, 잊으려 발버둥 쳐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불쾌한 감정들이 분명 존재한다. 시시껄렁한 자기계발서가 흔히 말하는 고난의 극복은 때로 너무 비장해서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날일수록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애쓰기보다, 규칙을 살짝 비틀어보자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싫은 사람을 억지로 품어 안고 용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마주쳤을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곁을 지나칠 수만 있어도 이미 내가 이긴 셈 치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이 영리하고 소박한 태도는 억지스러운 긍정보다 훨씬 실질적인 힘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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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노력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의 평가나 타인의 인정은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지만, 내가 나에게 매기는 점수의 기준만큼은 전부 내 손안에 쥐여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남는 생각은 하나였다.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진짜 필요한 능력은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경기에서 1등을 차지하는 완벽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고 쓰러진 날에도 주저앉아 자책하는 대신, 내가 다시 이길 수 있는 작은 게임을 즉석에서 새로 고안해 내는 마음의 탄력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도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 여기까지 걸어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박할 수 없는 꽤 근사한 승리다.



* 이 책은 김영사(@gimmyoung)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날마다이기는게임 #요시타케신스케 #김영사 #서평단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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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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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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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역경을 맞닥뜨릴 때마다 간절했던 것은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줄 기적보다는, 그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과 작은 틈이었던 것 같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옷자락이 완전히 젖지 않도록 몇 걸음 물러서서 올려다볼 수 있는 처마 같은 공간말이다. 이 책 『처마 밑 도피자들』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라는 기묘한 판타지적 세계관을 빌려왔지만, 장르가주는 재미를 넘어 상실과 고통 앞에 선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온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꽤나 철학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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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자주 슬픔이나 문제를 주로 빠르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곤 한다. 세상은 아파할 시간조차 넉넉히 허락하지 않고 다음 일과를 향해 등을 떠밀기 일쑤다. 하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저승사자의 발걸음을 영원히 막아 설 수는 없겠지만, 그저 못다 한 인사를 건네고 마음에 걸린 매듭을 풀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을 벌어주는 행위를 통해 망자들을 위로한다. 그 소박한 유예가 유독 뭉클하게 다가와 내 마음도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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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죽음 그 자체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산 자의 집착에 대한 주제가 마음에 많이 남았다. 떠나야 할 존재에게 존엄한 마침표를 찍을 시간을 주는 배려와, 떠나보낼 용기가 없어 상대를 억지로 붙잡아두는 집착은 겉보기에 닮아 있어도 그 속내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지 못한다는 말은 때로 얼마나 기만적인지... 상대의 고통이나 존엄보다 내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붙들고 늘어지는 미련은, 아무리 선의로 포장해도 결국 타인을 가두는 차가운 감옥이 될 뿐이다.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제대로 묻지 않는 다정함은 언제든 폭력으로 뒤집힐 수 있다. 타인을 위한다는 핑계 뒤에 숨겨진 내 이기적인 결핍은 없는지, 관계 속에서 내가 지어 올린 안식처가 혹여 상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아니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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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환상적인 설정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는 그런 마법 같은 잠시동안의 틈과 여유는 생각보다 잘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저승사자의 눈을 가릴 솟대도 없고, 멈추지 않는 시간을 대신 늦춰줄 친절한 결계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살아 숨 쉬는 지금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무겁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누군가의 아픔을 대할 때의 태도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슬픔 앞에서 무엇이라도 해줘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곤 한다. 하지만 처마는 비를 완전히 멈추게 하는 지붕이 아니다. 비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스스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때까지 잠시 어깨를 기댈 그늘 한 뼘을 내어줄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의 곁을 지킨다는 것, 그 다정함의 알맞은 크기는 어쩌면 작은 자리 내어줌이면 충분할 것이다.



* 이 책은 쌤앤파커스(@samnparker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처마밑도피자들 #리러하 #저승사자 #소설 #악마의계약서는만기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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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 이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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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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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과학 이론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그 지식이 탄생한 역사를 살피는 일은 늘 흥미롭다. 교과서에 실린 공식과 객관적 사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권력과 사회적 분위기, 인간적인 욕망이 지식의 형성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은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엄밀한 논리와 실험의 영역인 과학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주의라니... 얼핏 물과 기름처럼 보이는 두 영역은 대체 어디서 만나고 있는 것일까?


🪺

책은 고대 자연철학에서 출발해 근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산업화와 세계대전, 그리고 식민주의와 젠더, 최신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과학사를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이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과학은 결코 사회 바깥에서 홀로 꽃피운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그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길어 올려졌다. 과학을 절대적으로 무결한 신전에서 끌어내려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 안으로 다시 위치시키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이나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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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과학을 바라보는 가장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은, 과학을 몇몇 고독한 천재들이 단번에 완성해 낸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치열한 논쟁과 뼈아픈 실패, 끝없는 수정이 누적된 협력의 결과로 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는 진짜 이유는 과학이 언제나 완벽하게 옳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직하게 열어두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거와 관측 결과가 나타나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던 기존의 가설이라도 과감하게 의심하고 다시 검증대에 올린다. 최우수 과학자, 국가 리더 과학자, 과학계에서 언젠가 신성처럼 나타날 한 명의 과학자에게만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정책 관련자들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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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막대한 국가 예산과 정책, 기업의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 기후위기와 AI가 인류의 존립을 뒤흔드는 오늘날, 연구실 안의 과학자들에게만 모든 결정을 맡겨둘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기술을 향해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 단계를 지나,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멈춰야 하는가를 시민들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지는 않았을까? 또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제목의 문장을 뒤집어 보게 된다. 과학에 민주주의가 절실한 만큼,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과학적 태도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책은 출판사 이음(@eum_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과학은민주주의가필요하다 #정인경 #이음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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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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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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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가장 자주 머릿 속에 떠오른 질문은 "이 책은 대체 어느 시대, 어떤 공간을 설명하고 있는 걸까?"였다. 공장에서 제조되듯 태어나는 아이들, 여럿으로 나뉜 ‘나’, 희귀해진 남성이라는 성별, 그리고 인간을 묵묵히 관찰하는 시선들. 한 편의 호흡에 겨우 적응할 만하면 소설은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이 불쑥 수백 년, 수천 년 뒤의 낯선 시공간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연작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반에는 길을 조금은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지점을 돌파하면 앞에서 스쳐 지나갔던 단어와 기묘한 설정들이 퍼즐처럼 맞물리기 시작하고, 그때야 비로소 이 소설이 품은 진짜 구조가 드러난다. 작가가 친절한 지도를 쥐여주지는 않지만, 흩어진 파편들을 독자가 직접 주워 맞추며 서서히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가도록 유도한 것은 틀림없다. 처음에 느꼈던 낯섦과 당혹감마저 꽤나 정교하게 계산된 장치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쾌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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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인류의 멸망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루는 방식은 대단히 독창적이었다. 대개 종말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하면 거대한 전쟁, 파괴적인 자연재해, 압도적인 폐허가 불러 일으키는 비장미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종말에는 비명과 굉음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아이를 먹이고 돌보며, 누군가를 아끼거나 사소한 일로 질투하고 미워한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조용히, 아주 서서히 다른 존재로 변형되며 조금씩 스러져간다. 세계의 끝을 다루면서도 소설 전체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숨소리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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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득한 시간을 건너오면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있었다. 바로 나와 닮은 것은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밀어내는 태도였다. 작품 속에서 인류는 멸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질적인 집단들을 구성해 다양성을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통제된 조건 안에서조차 기어이 나와 다른 타자를 찾아내 경계하고 혐오를 싹틔운다. 자신이 알던 범주를 벗어난 존재를 마주했을 때 관찰자가 느끼는 공포와 배제의 선택은 인간의 밑바닥을 훤히 보여준다. 머리로는 타자와의 공존을 외치면서도, 막상 내 상식으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낯선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의 이기심을 손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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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작가가 인간이라는 종을 차갑게 조롱하거나 세계를 염세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온기가 행간마다 배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어 올리면서도 자신들의 손으로 더 많은 것을 부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면서도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며, 뻔한 실수를 지겹도록 되풀이한다. 하지만 인간의 곁을 지키며 그들을 기록해 온 인공지능과 관찰자들은,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비합리성 때문에 끝내 인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의 눈에 비친 인간은 얼마나 불가해하고 모순투성이였을까? 그러나 쓸데없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패배가 뻔한 싸움에 매달리며, 미워했던 사람을 다시 그리워하고 마는 그 비효율과 결함 속에야말로 기계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의 본질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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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소설이 던지는 진짜 화두가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질문의 핵심은 인류가 어떤 파국을 맞아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그 기나긴 궤적 속에서도 인간은 끝끝내 무엇이었는가에 닿아 있는 듯 했다. 우주적 시간의 잣대로 보면 인간은 반드시 영원히 살아남아야 할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타났다 스러질 무수한 종(種) 가운데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멀찍이 물러선 채 조용히 저물어가는 인간의 역사를 관조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부대끼며 싸우고, 후회하고, 사랑하는 이 소란스러운 하루하루가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본 게시물은 아카(@aka_book_)님의 모집으로 디플롯(@dplotpress)에서 보내주시고 SF탐사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큰새에게사로잡히지않도록 #디플롯 #SF탐사단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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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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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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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재일조선인(자이니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식민지 시기에 건너간 이들과 그 후손,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차별 같은 역사적 맥락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던 것은 어디까지나 멀리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단편적인 역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적과 거주지, 시민권과 일상의 정체성이 실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삐걱거리고 어긋날 때 어떤 균열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무게를 단 한 번도 실감해본 적이 없으니 내 지식이 단편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이 책을 읽는 독서 시간이 정말 의미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

재일조선인 3세이자 연구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외워온 할아버지의 고향 주소를 찾아 경주로 향하다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차를 돌려세웠다는 책 소개 글이 이 책의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디아스포라의 삶을 고난을 겪고 마침내 뿌리를 찾아 돌아오는 여정이라는 단선적인 감동으로 쉽게 소비하곤 한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닌게 분명하다. 조상의 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내 고향이 되는 것도 아니며, 국적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으로 스며드는 것도 아니기에... 법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지위와 이 땅에서 실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경험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틈이 존재하며, 저자는 바로 그 균열의 자리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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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누가 복지와 교육, 의료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국가와 국제사회시스템에 던지는 듯 했다. 평소 일상을 누리는 이들에게는 공기처럼 느껴지는 제도가, 그 선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에게는 삶의 조건 전체를 위협하는 가혹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특히 혐오와 배외주의를 다루는 대목을 읽을 때는 갑갑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자는 혐오를 몇몇 악한 개인의 일탈로 설명하지 않는다. 혐오는 사회적 불안과 결합하며 학습되고, 심지어 ‘안전’, ‘상식’, ‘국민의 권리 보호’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언어의 탈을 쓴 채 교묘히 살아남는다. 


🪟

한국 사회의 난민과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 속에 더욱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저자의 언어로 일종의 불쾌한 '정동'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과거의 차별받은 역사적 기억이 오늘날 우리보다 취약한 타자를 배제하지 않을 정당한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못함에도 '우리가 피해자였다'는 기억과 '우리 울타리 밖의 사람을 밀어내겠다'는 냉담함은 한 사회 안에 너무나 태연하게 공존한다는 사실이 불편하면서도, 나 역시 그들과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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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쓰는 '우리'라는 말은, 그 자체로 울타리 바깥의 누군가를 만들어낸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집'은 혈통이나 국적으로 고정된 과거의 영토가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자리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의 다름을 견뎌내며 머물 자리를 만들어가는 끝없는 협상의 과정을 저자는 '집'의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기준의 하한선을 조금이나마 흔들어 질문을 남기는 책은 정말 귀하다. 그리고 이 책이 정말 그러했다. 책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내가 생각하는 집의 문은 과연 어디까지 열려 있는가라는 물음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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