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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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에이유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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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먼저 만난 이야기는 꽤나 신선했다. 솔직히 좀 야하고, 당황스러운데, 이상하게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 작품이었달까... '이런 소재를 이렇게 풀어낸다고?' 싶을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라이더 재킷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압도적인 피지컬의 매력남 레이와, 어수룩하고 순한 얼굴로 그에게 자석처럼 끌려들어 가는 콜린. 처음에는 그 기묘한 불협화음 자체가 유쾌한 구경거리였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는 이상하게도 콜린의 선택에 따른 서사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콜린은 무엇을 사랑했던 걸까? 레이를? 아니면 레이에게 선택받음으로써 겨우 존재 가치를 증명받은 자기 자신을?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영화사 찬란 최고!!!)


🕶️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건조하고 어두우며 콜린의 내면 깊숙한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듯했다. 1975년,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콜린은 박스힐에서 오토바이를 구경하다가 레이를 만난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그에게 사냥당했다고 해야 더 표현이 정확할지도... 이 도입부의 묘사가 참 근사하다. 이 기묘한 관계에는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보다는, 레이라는 문턱에 걸려 콜린이 엎어져버린다는 동사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 콜린은 제 발로 레이의 세계에 걸어 들어갔다고 믿었겠지만 실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그의 발밑에 고꾸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낮은 자세 그대로 한동안 레이를 신처럼 올려다본다.


🏍️

레이는 차갑고 완벽하며 자신만의 규칙이 확고한 지배자 성향의 인간이다. 콜린은 그런 레이를 거의 숭배하듯 모신다. 그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동시에 언제 버려질지 몰라 안달복달하기도 한다. 분명 이 관계에는 가학성과 피학성, 욕망과 수치심, 사랑과 통제라는 불편한 감정들이 엉켜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내 안의 도덕적 경보음이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은 이 뒤틀린 관계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콜린이 왜 그토록 레이라는 동아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왜 자신을 깎아내려야만 비로소 사랑받는다고 느꼈는지를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추적한다.


🕶️

퀴어 로맨스, 자극적인 묘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텍스트는 그것을 도구로 하여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자존감이 바닥난 한 인간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씁쓸한 고백록이라고 해야할까? 때로는 콜린의 지독한 자기연민이 답답하고 우습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 하나로 내 가치를 증명받고 싶었던 미숙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자기 내면의 결핍을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채워 나가는 콜린의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응원하고 싶기도 했다.


🏍️

얇은 두께에 비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영화의 잔상이 떠올라 피식 웃다가도 콜린의 쓸쓸한 문장 앞에서는 이내 숙연해지기도 했다. 멋진 라이더가 운전하는 고급 바이크 뒷자리에 올라라 낭만적인 질주를 하면 멋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의 핸들과 브레이크를 타인에게 통째로 양도하는 위태로운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 제 발로 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독창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담아냈다. 영화도 책도 완전 재밌다!



* 이 책은 영화사 찬란(@challanfilm)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뒷자리에태워줘 #애덤마스존스 #찬란 #에이유앤씨 #뒷자리에태워줘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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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심 ㅣ 저스트YA 16
윤슬빛 지음 / 책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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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심> 윤슬빛, 책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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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에는 왜 '결정'이 아니라 '결심'이란 단어를 썼을까? 결정이 머리로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는 선택이라면 결심은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짐이라는 느낌이니 말이다.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내 삶의 운전대를 남의 손에 쥐여주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단단한 말처럼 느껴지는 단어, '결심'. 책을 덮고 나니 이 제목이 처음보다 훨씬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 듯 했다. 


🪽

주하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품은 아이다. 가까운 관계 안에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혼자 버텨왔다. 소설은 주하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날들, 도망쳐야 했던 나날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연기하는 데 얼마나 지독한 에너지가 드는지를 담담하게 뒤쫓는다. 주하의 시간이 너무 조용해서 그 고요함이 도리어 비명처럼 아프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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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주하를 단번에 구원해 주는 백마 탄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다정한 큰엄마가 있고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이 있고 '둥우리'라는 작은 아지트가 생기지만, 결국 자기 삶의 영토를 향해 발을 내딛는 건 주하 자신이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은 곁에 서서 온기를 나눠줄 순 있어도 주하의 입을 대신 열어줄 수는 없다. 결국 산다는 건 자기 몫의 문장을 스스로 써 내려가는 과정일테니. 주하가 자기 방을 되찾고 글을 써 내려가는 대목이 유독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자기만의 방은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다. 한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조차 유배당했던 아이가 자신의 이름과 언어를 찾아 돌아오는 여정은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

청소년 소설을 읽다 보면 아이들의 세계를 훔쳐보다가 되레 어른인 내가 호되게 야단맞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주하에게 필요했던 건 대단한 해결책을 쥐여주는 척척박사 어른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함부로 캐묻지 않되 끝내 시선을 돌리지 않는 그런 어른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었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이 질문이 목에 걸려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

이 책의 결말은 상처를 깔끔하게 극복했다는 식의 흔한 해피엔딩으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어떤 비극은 평생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슬픔은 삶의 지울 수 없는 괄호로 남는다. 다만, 그 고통의 괄호를 품에 안은 채 다음 문장으로 걸어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주하의 결심이 눈부신 건 아마도 이 아이가 온몸이 덜덜 떨릴 만큼 무서우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차마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이 꼭 필요한 이들의 손에 조용히 쥐어지기를 바란다. 주하처럼 오랜 시간 해야할 말을 삼켜왔을 누군가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 다시 네 삶을 살아도 돼"라고 다정하게 등을 쓸어내리는 작은 손길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 이 책은 책폴 출판사(@jumping_books)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어떤결심 #윤슬빛 #책폴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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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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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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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자주 만난 건 문장보다는 공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 분명 말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도달하지 않는 소리들, 통역사의 입을 거치기 전까지는 박제된 기호에 불과한 언어들, 그리고 기어이 국경을 건너지 못한 아쉬운 마음들. 이상하게도 그 헐거운 빈자리들에 시선이 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리 랑그바드의 『나의 통역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나'가 친가족을 만나 나누는 대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이 대화의 풍경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어머니가 말한다"라는 무미건조한 반복. 그리고 번역되지 못한 채 하얗게 방치된 여백들이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만 같았다.


🕊️

문장들이 희곡의 지문처럼 쓰여 있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어색하다, 서먹하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건조하고도 먹먹한 형식 자체가 곧 소설이 품은 마음의 실체라는 것을 말이다. 핏줄의 상봉이라는 서사는 대개 눈물을 동반한 감동을 예고한다.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고 부둥켜안고 울며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이야기. 하지만 소설은 그런 손쉬운 위안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피가 섞였다고 언어까지 저절로 통할 리 없고 닮은 얼굴이 단숨에 친밀함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한국어를 모르는 '나'와, '나'의 지난 세월을 짐작조차 못 하는 가족들. 그 완고한 거리감 사이에 통역사가 존재한다. 말을 나르는 사람, 때로는 감정의 모서리를 깎아내는 사람, 동시에 '나'의 연인이기도 한 존재 말이다.


🤍

가족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디뎌야 하는 발판이 사실은 가족이 전혀 모르는 나의 가장 내밀한 타인이라는 아이러니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나'는 자신의 진짜 삶을 가족에게 가닿게 하고 싶지만 동시에 그 날것의 고백이 가족을 또 한 번 주춤거리게 만들까 봐 두려워한다. 입양이라는 방식으로 인해 소속감 바깥으로 밀려나 본 경험이 있는 이에게 두 번째 거절의 가능성은 얼마나 잔인한 무게일까. 그리하여 책 속의 침묵은 생존을 위한 오랜 망설임의 증거처럼 읽혀졌다.


🕊️

가장 아팠던 장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이야기였다. 가족의 역사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기어이 온전히 기록되지는 못한 존재. 유가족 명단 사이에 남겨진 빈자리는 이 책이 품은 공백의 은유와 꼭 닮아 있는 것 같다. 말해지지 못한 사람, 끝내 번역되지 못한 사람, 너무 늦게 도착해버린 이방인. 그럼에도 ‘나’는 이 답답한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말이 안 통한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돌아서버리면 편할 텐데 기어이 다시 찾아오고, 묻고, 기다리며 대화를 시도한다. 읽으면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와 가족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외로움까지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통역사가 필요한지 모른다.


🗣️

『나의 통역사』는 해외 입양인의 이야기지만 결국 모든 인간관계가 가진 서투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떤 마음은 완벽하게 번역될 수 없고, 그렇기에 어떤 말은 영원히 마음 속 공백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어이 닿고 싶어 한다. 이 책은 그 쓸쓸하고도 다정한 발버둥을 너무 담담하게 보여준다. 다 읽은 후 책을 덮고 나면 소란스러운 말보다 적막한 침묵을, 빼곡한 문장보다 텅 빈 공백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정말 묘한 책이었다.



* 이 책은 푸른숲(@prunsoop)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푸른숲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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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ㅣ 흔들릴 때마다 나는 OO를 읽었다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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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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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 앞에서는 누구나 약간의 부채감을 느낄 것 같다.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벽돌 책들을 서가에 꽂아두고 차일피일 미뤄둔 (나 같은)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큰맘 먹고 독서대 위에 책을 얹고 펼쳐야 할 것 같은 긴 시간과 깊은 공을 들여 읽어야 할 것같은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거장의 문학을 해설하는 고답적인 강의록이 아니었다. 생의 밑바닥을 먼저 구르고 온 인생 선배가 슬쩍 건네는 잔잔한 술잔 같은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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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가장 먼저 눈에 꽂힌 대목은 건 그 유명한 '사형 직전의 5분' 대목이었다. 젊은 시절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장 앞에 섰다가 집행 직전 극적으로 감형되었던 순간. 정말로 죽는 줄 알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남은 시간을 쪼개 썼다고 한다. 동료들과 작별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눈부신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는 데에 말이다.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 속에서 뭔가 서늘한 감정이 피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아무렇게나 흘려보내던 그 '5분'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모든 밀도를 압축해 놓은 우주였다는 사실이 뭔가 뼈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늘 시간이 없다고 투정 부리던 내 게으른 모습이 한없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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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싸구려 낙관을 팔지 않는다(나는 이런 배배 꼬인 사람들이 좋다 ㅋㅋ). "다 잘 될 거야",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같은 영혼 없는 다독임이 때로는 인간을 더 깊은 도피처로 밀어 넣는다는 걸 저자는 정확히 짚어낸다. 나 역시 힘든 일이 생기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며 슬쩍 덮어두고는, 그걸 희망이라 착각하곤 했다.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그저 미뤄둔 것뿐인데 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그런 식의 포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질척이고 거칠었던 것 같다. 시베리아 수용소, 지독한 가난, 도박 중독, 평생을 괴롭힌 질병까지. 책은 이 지옥 같은 삶을 결코 성장의 밑거름 따위로 미화하지 않는다. 고통 자체가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눈을 부릅뜬 채 응시하는 태도가 비로소 인간을 바꾸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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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의 가면을 다룬 대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갈등이 싫어서 싫다는 말을 삼키고,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괜찮다며 넘기는 버릇들은 독약을 삼키는 일과 같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내 마음을 자꾸 뒷전으로 미루는 행위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참 고치기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이 시대를 초월해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인물들...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질투에 눈이 멀어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기 안의 시커먼 오물같은 어두운 면을 애써 모른 척 피하지는 않는다. 그 생동감 있는 날것의 인간미가 묘한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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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먼지 쌓인 책장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전에는 그저 어둡고 축축한 세계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소설들이, 이제는 인간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가장 치열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희망마저 사치스러운 막막한 날,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화려한 치어리딩이 아니라 "그래도 오늘 하루를 버텨내겠다"라는 서툴지만 독한 결심일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저 흔들릴지라도 제 자리를 지키며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도 조금은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제 자리를 지켜보려 노력해야겠다.



* 이 책은 @gbb_mom @_kkimhee @water_liliesjin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motivebooks.official


#흔들릴때마다나는도스토옙스키를읽었다 #표도르도스토옙스키 #닻 #모티브 #르온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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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준비를 이긴다 - 과잉 준비 인간을 위한 그냥 하기의 기술
존 프린스 지음, 정지현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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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준비를 이긴다 - 과잉 준비 인간을 위한 그냥 하기의 기술> 존 프린스,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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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때가 아니라서", "조금만 더 알아본 뒤에", "이번 주 바쁜 일만 지나고 나면 확실하게". 말은 참 그럴듯하고 심지어 우아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세련된 핑계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결국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밑천이 드러날까 봐 두려운 마음, 그리고 막상 시작했는데도 내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겁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정작 내 가슴을 가장 후벼 판 건 책 속 문장을 넘어 내 책상 위였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겠다며 벌여놓은 온갖 흔적들. 읽어야 할 책들, 새로 산 노트, 독서하며 붙일 거라고 산 인덱스들, 스티커, 필기구, 마스킹 테이프 등등... 그동안 나는 이걸 나름 철저한 준비성이라 호명하며 한편으로는 뿌듯해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인정하게 됐다. 그건 그저 시작하기 싫었던 늑장부림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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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책은 대책 없이 "그냥 해!"라며 등을 떠미는 무책임한 자기계발서는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가 시작 앞에서 왜 자꾸 브레이크를 밟는지, 그 멈칫거림과 주저함의 심리를 해부하듯 들여다보게 만든다. 완벽주의라는 덫, 가면 증후군, 타인의 시선, 그리고 100%의 확신이 올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버릇까지. 저자는 정말 뼈를 때리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준비가 부족해서 못 하는 건가? 아니면 시작하지 않으려고 준비를 계속 늘리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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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당장 손발을 움직이게 만드는 실천에 좀 더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다. 챕터마다 직접 생각을 적고 연습하는 코너가 있어서 좋았다. 미뤄둔 내 게으름을 맨눈으로 직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다 적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를 실제로 적어보니 개운한 느낌도 들었다. 머릿속에서 괴물처럼 부풀어 오르던 불안도, 종이 위에 글로 막상 적어놓고 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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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시작은 늘 거창하고 근사해야 한다고 믿어 왔던 것 같다. 완벽한 타이밍이 오고, 내 실력이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채워지면 그때 멋지게 짜잔 하고 나타나야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 같다. 자신감은 출발선에서 미리 나눠주는 사은품 같은 게 아니다. 서툴더라도 들이받고, 깨지고, 고쳐 가며 달리는 와중에 아주 조금씩 살이 붙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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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머릿속이 꽤 명료해졌다. 결론은 의외로 심플하다. 두려워도 하고 싶다면, 그냥 일단 저지르는 것! 처음부터 잘할 필요도 없고, 엉성해도 상관없다. 때로는 완벽한 계획표보다 어설픈 첫걸음이 우리를 훨씬 더 먼 곳으로 데려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 이 책은 부키(@bookie_pub)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시작이준비를이긴다 #부키 #존프린스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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