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
캐롤라인 트레이시 지음, 김민정 옮김 / 일레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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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 캐롤라인 트레이시,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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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호수라고 하면 역시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떠오른다. 거울 같은 수면에 하늘이 비치는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풍경!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한편 실용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짠물 호수는 식수로 사용할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쓸모없는 물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캐롤라인 트레이시의 『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는 인간의 셈법으로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그 짠물 속에서 미생물과 염수새우가 번성하고,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생존을 위해 긴 비행 끝에 날아드는 풍요로운 터전이 소금호수라고 알려주는 놀라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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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그레이트솔트호, 솔턴호, 모노호 등 세계 곳곳의 짠 호수들을 직접 찾아 발로 뛴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 여정에는 기묘하도록 아름다운생태계의 신비와 함께, 물줄기를 도시와 농경지로 돌리고 광물을 수탈해 온 인간 개입의 역사가 겹쳐져 나타난다. 호수가 말라붙으며 드러난 바닥에서 독성 먼지가 날려 주변 사람들의 호흡기를 위협하는 광경은 지금의 인류에게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울창한 숲이나 예쁜 꽃이 가득한 자연에는 쉽게 애정을 내어주지만, 악취가 나고 벌레가 들끓으며 황량해 보이는 습지나 갯벌은 너무 쉽게 개발되거나 버려져도 좋을 대상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책은 단지 인간에게 유용하거나 보기 좋다는 것을 기준으로 자연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의 숨결이 이어지고 있기에 들여다봐야 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어쩌면 제목 속 '이상한 세계'라는 말은 오직 인간의 편의로만 자연의 가치를 매기던 우리의 왜곡된 시선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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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에서 그치지 않고 깊은 인상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소금호수를 탐사한 저자의 십여 년이 곧 그녀 자신의 삶과 사랑,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시간과 동일시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과서적인 자연관에서 벗어나 생존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해 온 소금호수의 수많은 생명들을 관찰하며, 저자는 인간의 삶 역시 단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인다. 직접 걷고,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지켜본 시간의 깊이가 바탕에 깔려 있기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저 도덕적인 설교가 아닌 한 사람의 진정성 어린 고백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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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로의 완벽한 복원만을 고집하며 절망하는 대신, 상처 입은 지금의 조건 속에서 다시 생명이 삶을 이어갈 길을 찾아내는 것 역시 중요한 회복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책을 다 읽고나니 소금호수라는 공간이 인간의 오만과 생명의 질긴 집념이 얽힌,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장소라고 느껴졌다. 숙연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이상하고 가치 없어 보인다는 핑계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계와 타인의 삶을 손쉽게 외면해 왔는지, 이러한 질문 앞에 오랫동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생태 에세이였다.



* 이 책은 일레븐(@elleven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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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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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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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천재성은 종이 한 장 차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한 가지에 기이하게 집착하는 예술가들, 혹은 반 고흐나 도스토옙스키처럼 지독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은 이들의 서사를 접할 때면 우리는 이 오랜 클리셰를 별 의심 없이 수용하곤 한다.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의 『뇌가 만든 천재들』은 예술가들의 삶과 뇌를 낭만적으로 덧칠해 온 이 익숙한 연결고리를 신경과학의 정교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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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부터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리스트의 공감각, 프리다 칼로의 신체적 트라우마, 버지니아 울프와 실비아 플라스의 정신적 고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이들의 병력을 추적해 "그러니까 이런 질환 때문에 천재가 되었다"는 식의 손쉬운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위대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뇌전증이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문학을 거저 만들어낸 것도 아닐 것이다. 유독 예술가의 고통 앞에서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해석하곤 했던 우리의 관성에 책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중요한 것은 거장들이 고통 때문에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지독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술로 바꾸어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특별했던 것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자신만의 언어로 전환해 낸 능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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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이나 편측 무시처럼 뇌가 현실을 수용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대목들은 특히 흥미로웠다. 칸딘스키에게 음악과 색채가 분리된 감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의 추상화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정신병원에서 주변의 사소한 재료들을 모아 끊임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냈던 마르틴 라미레스의 일화 역시 인상 깊었다. 우리는 모두가 완벽히 같은 현실을 공유한다고 믿지만, 실은 각자의 뇌가 감각과 기억을 선별하여 저마다의 현실을 재구성해 낼 뿐이다. 예술이란 어쩌면 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은밀하고 독특한 차이를 바깥 세계로 꺼내어 보여주는 통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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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서는 기억과 망각, 꿈과 환각을 지나 AI의 창의성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내용의 폭이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넓어진다. 다루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 다소 급하게 지나간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지만 기계가 사람보다 더 예쁜 그림과 아름다운 음악을 단숨에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을 다시 정의하려는 책의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천재란 결함 없는 완벽한 뇌를 선사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마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고통과 상처를 끝내 자기만의 정직한 방식으로 표현해낸,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책은 흐름출판(@nextwave_pub)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뇌가만든천재들 #마리오데라피에드라월터 #흐름출판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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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ㅣ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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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오귀스트 르누아르(지은이), 홍선기(엮은이),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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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인간 내면의 깊은 욕망과 죄의식을 끈질긴 문장으로 파헤쳤고, 다른 한 사람은 햇살과 꽃, 아이와 여인의 미소처럼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집요하게 화폭에 담았다. 레프 톨스토이와 오귀스트 르누아르. 이름만 봐서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두 거장 사이에, 이 책은 ‘사생아’라는 뜻밖의 불편한 키워드를 꺼내놓는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가십성 제목인가 싶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사생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두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삶에서 드러난 그 모순이 작품 속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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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농민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티모페이를 끝내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이후에 써 내려간 그의 문학들이다. 『악마』에서는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혀 무너지는 인간의 심리를 응시하고,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는 위선과 질투, 성욕과 결혼의 비극을 자기 해부에 가까울 정도로 파헤치며, 『주인과 일꾼』에서는 마침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숭고함에 다가선다. 작품을 읽는 내내 그의 실제 삶은 어땠을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글 속에서는 인간의 위선과 죄를 그토록 칼날처럼 또렷하게 조명했던 문호가, 정작 자기 삶에 닥친 문제 앞에서는 끝내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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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서사는 또 다른 의미로 씁쓸하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피부, 행복한 가족과 아이들의 웃음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화가에게도,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딸 '잔'이 있었다. 생활비를 보내며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그 수많은 명화 속 어디에서도 자기 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책에 수록된 르누아르의 화사한 그림들을 한 장씩 넘어볼 때마다 기묘한 감정이 차오른다. 그림은 변함없이 눈부신데,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에는 서늘한 그늘이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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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뒤에도 두 거장을 존경해야 할지, 혹은 실망해야 할지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좋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완벽할 필요는 없으며, 한 인간의 결함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반대로 예술의 위대함이 삶에서의 비난받아 마땅한 면모를 덮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건, 인간은 참으로 복잡한 존재한 존재이고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는 것이었다. 두 거장을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정말 유의미한 인문 에세라서 참 좋았다(이 시리즈 정말 재밌다!!!).


* 단단한맘킴히서평모집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gbb_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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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ebooks.official


#거장의사생아들 #홍선기 #세계문화전집 #모티브 #르온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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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삶의 위로가 될 때 - 흔들리는 어른을 위한 ‘마음 한자’의 짧은 지혜
우승희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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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삶의 위로가 될때 - 흔들리는 어른을 위한 ‘마음 한자’의 짧은 지혜> 우승희, 추수밭(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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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내뱉곤 한다. "행복하다", "불안하다", "후회스럽다", "우울하다" 등등. 지극히 자연스럽게 쓰이는 말들이지만, 정작 그 단어들이 왜 그런 뜻을 품게 되었는지 글자의 속사정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 책, 『한자가 삶의 위로가 될 때』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해온 익숙한 한자어들의 분석해 그 글자 깊숙한 곳에 숨겨진 인간의 감정 서사를 복원해 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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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각오, 인내, 행복, 질투, 욕망, 불안, 후회, 고독처럼 마음을 다스리고 표현하는 70가지 한자어가 등장한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한 어원 사전이나 단어 풀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글자의 조형적 원리를 이리저리 뜯어본 뒤, 그 의미를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의 철학적 통찰과 연결하고, 다시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정선 위로 데려온다. 한자 공부를 한다는 부담감보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정밀한 관찰이 담긴 놀라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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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긍정의 기운으로 예쁘게 포장하는 책은 아니었다. 질투를 갑자기 선한 마음이라고 우기거나 후회를 맘껏 즐기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감정들을 삶에서 오려내야 할 쓸모없는 무언가로 취급하지 않을 뿐이다. 질투에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숨어 있고, 후회에는 지나온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힘이 있으며, 고독은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외로움이 아니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방이라고 설명해준다.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서둘러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이 책의 태도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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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도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오히려 학창 시절 무작정 외워야 했던 한자의 딱딱한 기억을 깨뜨려주는 신선한 인문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에 읽어 내려가도 좋지만, 마음이 어수선한 날 목차를 펼쳐 눈에 들어오는 단어 하나를 골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라면, 무심코 "불안하다"거나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어놓을 때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다정한 눈으로 그 단어 앞에 잠시 머무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 헤스티아(@hestia_hotforever)가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청림출판(@chungrim.official)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한자가삶의위로가될때 #동양고전 #인문학 #인문학책추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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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
서점순 지음, 배진시 외 옮김 / 긱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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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 서점순, 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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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면 대체로 사소한 장면들만 그려진다. 따스한 안방 냄새,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던 가족의 목소리, 해 질 녘 자주 산책하던 골목길과도 같은 사소한 일상들 말이다. 그러나 서점순 작가의 『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를 읽다 보면, 그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다는 사실조차 누군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종의 특권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등장인물처럼 어떤 이에게는 유년 시절에 겪은 일이 너무 끔찍해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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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무렵, 작가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사찰과 수용 시설에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학대를 겪은 뒤 프랑스로 해외 입양되었다. '납치', '감금', '폭행', '해외입양'과 같은 단어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 압축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충격적인 사건 자체를 독자들로 하여금 그저 소비하라고 쓰여진 글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무력한 아이가 그 참혹한 비극 이후의 아득한 시간들을 어떻게 버티고, 마주하며, 마침내 오늘까지 걸어왔는지를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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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상흔은 결코 기승전결이 선명한 서사로 기억될 수는 없을 것이다. 특정한 냄새, 순간의 감각,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과 중간중간 끊어진 장면들이 느닷없이 플래시백처럼 튀어나와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고야 만다. 잊었다고 믿었던 안 좋은 기억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내뱉을 수 없는 비명이 되어 몸 어딘가에 깊이 봉인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침묵을 깨다'라는 행위는 단순히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외면하고 버려두어야만 했던,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비로소 온전히 끌어안는 숭고한 수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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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한 저자는 자신의 뿌리와 소속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가족과 함께 있던 아이, 시설에 갇혀 있던 아이,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어른이 하나의 생 안에 어지럽게 공존하지만, 그 어떤 한 단어로도 자신을 완벽하게 설명해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책에 한국어와 영어가 나란히 수록된 구성 역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단 하나의 국적이나 언어의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저자의 외롭고도 단단한 정체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구성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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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같은 실화는 되돌릴 수 없는 잔혹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기록하여 스스로 삶의 정직한 증인이 되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존엄이 서려 있다. 얇은 분량임에도 결코 서둘러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타인의 거대한 고통을 자극적인 드라마처럼 소비하지 않도록, 몇 번이고 읽는 속도를 스스로 늦추려 노력했다.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감정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을 온전히 불러낸 한 사람의 담담하고도 위대한 용기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책은 모도님(@knitting79books)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 : 긱 출판사(@geek_publishing)



#그때그아이침묵을깨다 #서점순 #긱 #해외입양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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