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
올리비에 바보 지음, 이나래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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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 올리비에 바보, 더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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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참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개인이 처한 구조적 조건과 불평등은 지워버린 채,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오롯이 성실하지 못한 개인 탓으로 돌리는 편리한 잣대로 쉽게 쓰여 왔다. 그렇기에 『노력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살짝 경계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원제인 『L'ère de la flemme』, 즉 '게으름의 시대'라는 제목을 확인한 순간, 저자가 현대 문명의 어떤 지점을 겨누고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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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올리비에 바보는 인간의 역사를 생존하고, 공동체에 소속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온 고투의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기술과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던 수고들이 거짓말처럼 하나씩 사라졌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음식을 조리하지 않아도 손쉽게 끼니를 해결하고, 길을 외우지 않아도 지도가 목적지로 안내하며, 두꺼운 책을 읽지 않아도 몇 분짜리 요약 영상으로 대강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질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번민하기보다 AI에게 물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얻어내는 일도 자연스럽다. 문명의 장대한 발전사처럼 보이는 이 현상들 너머로 저자는 편리함이라는 유혹에 길들여진 인간이 애쓰는 능력 그 자체를 상실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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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단순 노역(Labor)과 주체적인 노력(Effort)을 명확히 구분하는 시선이었다. 불필요하고 고단한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한 것은 문명이 이뤄낸 명백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손빨래를 고집해야 성실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며, 단지 불편함을 참아냈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숭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본질은 그렇게 확보한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일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몰입하고, 잘되지 않는 동작을 끈질기게 반복하며, 관계의 부딪힘을 무릅쓰고 타인과 연결을 이어가는 일에는 여전히 고단한 수고가 요구된다. 기계가 인간의 고된 수고를 대신해 주는 시대일수록, 어떤 불편함과 마찰만큼은 끝까지 스스로 감당해 낼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고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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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자의 진단을 온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지점도 존재한다. 청년 세대의 무기력이나 변화된 노동관을 게으름이라는 단편적인 프레임으로 묶어버리는 몇몇 대목은 다소 경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날의 무기력은 노력을 게을리해서라기보다는 아무리 애써도 정당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좌절을 반복 학습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덕으로 포장되던 희생과 참을성을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정당한 거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아 정당하게 멈추는 것과, 어려움을 버텨내는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 포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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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대신해 주어도 상관없는 수고가 있는 반면, 아무리 효율적인 대안이 생겨도 내 몸과 마음으로 직접 마찰을 겪어내야만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경험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느리게 읽어 내고 답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한동안 조급함 없이 헤매보는 일 같은 것들이 아마 그런 것들일 것이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과거의 불편함으로 회귀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삶에서 모든 마찰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과연 축복이기만 한가에 대해서는 깊이 의심해 볼 일이다. 가끔은 조금 오래 걸리고, 귀찮고, 잘 되지 않는 일을 내 힘으로 끝까지 완수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미래에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내 삶을 내가 직접 살아내고 있다는 주도권을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싸이프레스(@cypress_book)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노력의종말 #올리비에바보 #더웨이브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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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은 니체를 만나라 - 흔들리지 않고 나로 살아가는 법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기영 옮김 / 달먹는토끼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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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은 니체를 만나라 - 흔들리지 않고 나로 살아가는 법> 프리드리히 니체, 달먹는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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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라는 이름의 명성은 익숙하지만, 정작 그의 저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 낸 이가 얼마나 될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몇 번이나 그의 책에 도전했다가, 낯설고 어려운 문장들에 가로막혀 조용히 책을 덮었던 기억은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경험해 본 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높고 아득했던 니체 철학의 문턱을 과감하게 낮춘 준 책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선악의 저편』 등 대표 저작들에 흩어져 있던 니체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문장들을 217편의 짧은 글로 추출해 놓았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정독해도 좋지만, 마음이 어수선한 날 책상 위에 두고 눈에 들어오는 글부터 읽어도 좋게 편집이 잘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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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화두는 바로 '내 삶의 기준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수많은 선택을 내리며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믿지만, 타인의 평판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밀려 내린 결정도 적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라는 경고, 직업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조언, 남들의 안전한 발자국을 맹목적으로 따르느라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일침까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쉽게 지키지 못하는 것들을 명쾌하게 지적해주는 니체의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일이 잘 풀릴 때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듯 들뜨고, 성과가 비껴갈 때면 하루 전체를 실패한 인생처럼 자책하던 경험들. 그것은 어쩌면 직업과 성취라는 외적 조건에 자아의 크기를 너무 많이 내어주었기 때문이었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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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작정 강해지라거나 맹목적인 성공을 이루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니체는 결코 실패와 고통을 삶에서 완전히 멸균해 내야 할 오점 취급하지 않았다. 실패는 무언가를 온몸으로 시도했다는 증거이며,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진정한 의미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내 삶 안으로 걸어 들어온 비극 이후의 시간까지 내 손으로 직접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었다. 흔히 가벼운 유행어처럼 소비되던 '아모르 파티'라는 단어가, 니체의 문장 속에서는 훨씬 무겁고 정직한 삶의 결단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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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시간을 바라보는 니체의 시선 역시 상당히 매서웠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결핍이나 외로움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훈련하는 기회로 바라보는 니체의 관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나아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삶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세상에 내어주고 만다는 지적은 꽤나 날카롭다고 느꼈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과,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잘 살아냈다는 사실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수없이 지워나간 날보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내달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날이 훨씬 드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저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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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으로 니체의 깊고 광대한 철학 세계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뭔가 트렌디한 숏폼 형태의 문장들로 엮인 만큼, 그 문장이 도출된 구체적인 역사적·철학적 맥락이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니체라는 거대한 철학자가 쓴 불후의 명작들이 숨쉬는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을 잠시 해볼 수 있는 다정한 안내판이자 작은 출입구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무조건 삶의 절대적 정답으로 삼기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딴죽을 걸어보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 이 책은 황소그룹미디어(@hwangsomediagroup)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일생에한번은니체를만나라 #프리드리히니체 #니체 #황소그룹미디어 #달먹는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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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 ㅣ 나는 도대체
케리 올리치.켈리 권터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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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 케리 올리치 · 켈리 권터, 북플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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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졌었다. 스스로를 유별나게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 여겨본 적은 없지만, 가만히 일상을 복기해 보면 내가 꽤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한 뒤 미안함에 굳이 길고 구차한 핑계를 덧붙이거나, 내 의견을 건네놓고 상대의 눈빛과 표정 변화를 슬그머니 살피는 행동들은 사회 생활을 해본 누구나가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어쩌면 눈치를 본다는 것은 타인이 보낸 시선을 사실적으로 읽어내는 활동이기 이전에 아직 오지도 않은 타인의 반응과 실망을 혼자 끊임없이 짐작하고 조바심 내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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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닌 미덕은, 이러한 눈치 보기 습관을 단순히 소심한 성격이나 자존감 부족이라는 개인의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이 실패하지 않은 무난한 삶인지를 지속적으로 학습한다. 부모가 안심할 만한 선택,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설명하기 편한 직업, 적당한 나이에 치러내야 하는 결혼과 출산 같은 통과의례와 사회적 표준들. 처음에는 외부에서 주입된 기준에 불과했던 타인들이 제시하는 정답이, 오랜 시간 귓가에 맴돌며 어느새 내가 진정 원하는 내 생각으로 둔갑해 버리기 쉽다. 이 책은 이러한 사회적 기대를 가족, 종교와 영성, 젠더, 공동체와 문화, 사랑과 직업이라는 상자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읽는 내내 던지게 되는 본질적인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닌, "내가 원한다고 믿어왔던 수많은 선택 중, 과연 진짜 내 욕망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였다. 안정적인 직장과 남들의 인정이라는 포장지 뒤에 감춰진 정체가, 실은 그저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붙들고 있던 타인의 기준이었음을,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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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건네는 다양한 조언 중 가장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타인의 실망을 어느 정도 견뎌내야 한다"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눈치를 보는 근본적인 동기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자식이자 다정한 동료, 문제 일으키지 않는 무난한 이웃이 되고 싶어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이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며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삶의 끝에 기다리는 비극은 명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실망을 막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삶을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가장 크게 실망하고 상처받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다. 타인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과, 나라는 존재를 끝없이 순번 뒤로 미루며 스스로를 양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

이 책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네 마음대로 살아라"라는 식의 무책임한 솔루션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세심한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라 말하며, 상황을 알아차리고 작은 실천으로 연결하는 현실적인 단계들을 제안한다. 오랜 시간동안 굳어진 행동 방식이 책 한 권으로 단숨에 뒤바뀔 리 없기에, 삶을 통째로 뒤엎으려들기보다는 아주 작은 기대부터 하나씩 거절해 보는 연습을 권하는 조언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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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관계의 균형을 조율하는 눈치라는 감각 자체는 유용한 삶의 기술이다. 문제는 그 감각이 내 욕망과 선택보다 늘 한발 앞서 달리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것 같다. 남을 배려하되 나 자신을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밀어내지 않고 누군가의 기대를 거절하는 것이 그 사람 자체를 거절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 책이 말하는 진짜 자유는 바로 그 작은 구별점에서 시작된다. 책을 덮고 난 뒤 다음번 선택의 순간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서보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 원할 것 같아 원하는 척 연기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찰나의 시간동안 우리는 타인에게 넘겨주었던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북플레저(@_book_pleaser)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나는도대체왜눈치를볼까 #케리올리치 #켈리권터 #북플레저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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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꿰맨 눈과 기울어진 사랑
김하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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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꿰맨 눈과 기울어진 사랑> 김하진, O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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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한 눈에 반했습니다』인 줄 알았는데, '에'가 아니라 '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눈 하나'가 누군가에게 반해버렸다는 엉뚱함이라니... 김하진의 첫 소설집 『한 눈이 반했습니다』는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익숙한 언어와 일상을 아주 살짝 비틀어 순식간에 낯설고 기이한 풍경으로 바꿔놓는 여섯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에 가볍게 웃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설 속 이상한 세계가 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생각보다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작품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설정이 약간은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우 기발하다고 느꼈다.

- 「솔로 인 더 라이트」 : 바비인형을 좋아하는 미희와 건담에 빠진 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인형에 관한 이야기

- 「한 눈이 반했습니다」 : 얼굴의 완벽한 대칭이 미의 기준이 된 세상에서, 한쪽 눈을 아예 봉합해 버리는 '외눈 시술'이 유행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 「견인지역」 : 일상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삶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을 말 그대로 갓길의 고장 난 차처럼 견인해주는 시설에 관한 이야기

조금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설정들임에도 독자들이 이 이야기에 쑥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까닭은, 그 기묘한 바탕에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일상적인 감정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유별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한 감정,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고치려는 노력, 버거우면서도 괜찮은 척 매일 출근길에 오르는 무기력한 감정들이 소설 전반에 짙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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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한 눈이 반했습니다」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 오히려 자신의 정상적인 한쪽 눈을 봉합해 없애버린다는 발상이 무척이나 기이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것 같다. 주인공 이심은 비대칭적인 눈을 콤플렉스로 여기다 유행에 따라 한쪽 눈을 봉합한다. 수술 자체보다 더 섬뜩한 건 이심이 그 기괴한 선택을 아주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거울을 보며 남들이 정해놓은 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바꾸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을 나 자신의 고유한 기준이라고 믿게 된다. 아무리 기괴한 유행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따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것이 다수의 상식으로 탈바꿈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 이 지점에서 현실의 공포가 소설 속에서 선명히 넘쳐난다.


🪡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은 「견인지역」이다. 흔히 조난이라 하면 거친 산이나 아득한 바다 한가운데를 떠올리지만,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집에서, 직장에서, 혹은 매일 걷던 길 위에서 조난당한다. 몸은 멀쩡히 일상을 부유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어디선가 멈춰 선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힘들다고 비명을 지를 기운조차 없어 그저 출근하고, 대답하고, 어색하게 웃다가 다음 날 다시 똑같은 굴레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무기력에 조난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주변의 침묵하던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구하는 데에는 그 조난을 먼저 알아채 주는 시선이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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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완성도가 완벽하게 균일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야기는 강렬한 아이디어가 인물의 내면 서사를 압도해 감정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서둘러 마무리되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인형, 외눈 시술, 사람을 견인하는 시설, 출산과 가족에 대한 낯선 감각까지, 이토록 다채로운 소재를 거리낌 없이 펼쳐 보이는 작가의 과감이 돋보이는 패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다 읽고 나면 처음 제목을 잘못 읽었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한 눈'에' 반해버리는 진부한 사랑 이야기보다, 자신의 한 눈'이' 반해버리는 이상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라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책은 상도덕 서평클럽(@f83_project)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 : OTD(@otdcontents)


#한눈이반했습니다 #김하진 #OTD #상도덕서평클럽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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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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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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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으면 사람의 성격 밑바닥이 드러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역시 차 한 대 끼어드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오기로 속도를 올리고, 경적 소리 하나에 발끈하며, 앞차가 몇 초만 늦게 출발해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쏟아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보복 운전이나 도로 위 폭력 사태를 보며 "대체 왜 저지경까지 갔을까?"라며 혀를 찰 때도 있지만, 실상 우리 역시 그 분노의 찰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일의 『잠들면 눈뜬다』는 바로 이 지극히 일상적인 도로 위의 섬뜩한 분노에서 출발하는 소설이었다.


😶‍🌫️

119 구급차를 운전하는 무영과 그의 아내 수정은 3년 전 고속도로에서 난폭 운전자와 얽히며 비극적인 사고를 겪는다. 상향등을 몇 번 켰다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끔찍한 보복 운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은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사고 이후 피해자들의 삶은 참담하게 부서진다. 수정에게는 삭혀지지 않는 분노가, 무영에게는 운전대를 잡는 것조차 힘겨운 트라우마가 남는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운전자들의 광기 어린 사고가 잇따른다. 역주행을 하고도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고, 사소한 시비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소설 초반을 지배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리어 더 큰소리를 치는 뻔뻔한 인간들의 적반하장과 내로남불이 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불쾌감이었다.


🚗

이후 프로파일러 예령이 등장하고 기이한 사건들 뒤에 '미아즈마'라는 초자연적 존재가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지며, 소설은 범죄 스릴러에서 오컬트적 요소가 가미된 장르물로 전환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분노, 폭력성을 부추기는 검붉은 기운인 미아즈마. 처음에는 굳이 이러한 초자연적 장치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한다. 인간은 미아즈마 같은 괴물이 없어도 충분히 잔혹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설정의 진가가 드러난다. 미아즈마는 이미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일탈과 분노의 씨앗을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킬 뿐이었다. 누구나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을 품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나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스스로 이성의 고삐를 죄는 능력일 것이다. 고야의 유명한 작품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에서 모티프를 따온 제목처럼, 이 소설에서 정말로 무서운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피해자인 양 굴며, 끝내 자신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인간의 비겁함이었다.


😶‍🌫️

장르소설답게 후반부의 전개는 거침없고 빠르다.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전과 긴박한 몸싸움이 이어지며, 주인공 무영은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의 공포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나니 운전대를 잡을 때 마음가짐을 사뭇 다르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도로 위에서 무례하거나 위협적인 운전자를 마주할 때 "저 사람 혹시 미아즈마?"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부터 내 안의 이성을 잘 깨워두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면의 괴물이라는 고전적인 화두를 한국의 도로 위로 끌어올려 오싹한 생활 밀착형 공포로 완성해 낸 매력적인 스릴러 작품이었다!!



* 이 책은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잠들면눈뜬다 #김종일 #황금가지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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