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평점 :
-
<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황금가지
🚗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의 성격 밑바닥이 드러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역시 차 한 대 끼어드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오기로 속도를 올리고, 경적 소리 하나에 발끈하며, 앞차가 몇 초만 늦게 출발해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쏟아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보복 운전이나 도로 위 폭력 사태를 보며 "대체 왜 저지경까지 갔을까?"라며 혀를 찰 때도 있지만, 실상 우리 역시 그 분노의 찰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일의 『잠들면 눈뜬다』는 바로 이 지극히 일상적인 도로 위의 섬뜩한 분노에서 출발하는 소설이었다.
😶🌫️
119 구급차를 운전하는 무영과 그의 아내 수정은 3년 전 고속도로에서 난폭 운전자와 얽히며 비극적인 사고를 겪는다. 상향등을 몇 번 켰다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끔찍한 보복 운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은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사고 이후 피해자들의 삶은 참담하게 부서진다. 수정에게는 삭혀지지 않는 분노가, 무영에게는 운전대를 잡는 것조차 힘겨운 트라우마가 남는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운전자들의 광기 어린 사고가 잇따른다. 역주행을 하고도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고, 사소한 시비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소설 초반을 지배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리어 더 큰소리를 치는 뻔뻔한 인간들의 적반하장과 내로남불이 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불쾌감이었다.
🚗
이후 프로파일러 예령이 등장하고 기이한 사건들 뒤에 '미아즈마'라는 초자연적 존재가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지며, 소설은 범죄 스릴러에서 오컬트적 요소가 가미된 장르물로 전환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분노, 폭력성을 부추기는 검붉은 기운인 미아즈마. 처음에는 굳이 이러한 초자연적 장치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한다. 인간은 미아즈마 같은 괴물이 없어도 충분히 잔혹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설정의 진가가 드러난다. 미아즈마는 이미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일탈과 분노의 씨앗을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킬 뿐이었다. 누구나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을 품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나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스스로 이성의 고삐를 죄는 능력일 것이다. 고야의 유명한 작품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에서 모티프를 따온 제목처럼, 이 소설에서 정말로 무서운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피해자인 양 굴며, 끝내 자신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인간의 비겁함이었다.
😶🌫️
장르소설답게 후반부의 전개는 거침없고 빠르다.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전과 긴박한 몸싸움이 이어지며, 주인공 무영은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의 공포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나니 운전대를 잡을 때 마음가짐을 사뭇 다르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도로 위에서 무례하거나 위협적인 운전자를 마주할 때 "저 사람 혹시 미아즈마?"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부터 내 안의 이성을 잘 깨워두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면의 괴물이라는 고전적인 화두를 한국의 도로 위로 끌어올려 오싹한 생활 밀착형 공포로 완성해 낸 매력적인 스릴러 작품이었다!!
* 이 책은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잠들면눈뜬다 #김종일 #황금가지 #서평단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