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디스토피아 배경의 소설은 첫째가 14살이 되면 조용한 전쟁을 위한 캠프로 보내야 한다는 암담한 규율을 정말 딱 11살 메기의 시선에서 순진하게 그린다. 저 규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첫째는 용감하고 우월하다는 프로파간다까지도.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반 정도 읽을 때까지 그 조용한 전쟁이 과연 누구와의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적'이라고 표현하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적'의 존재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한 번쯤 궁금할법한 사항이지만 11살 아이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저 규율을 위한 선전이 갉아먹은 제 존재감과 둘째이기에 받는 무시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둘째이기 때문이 아니라 11살 아이답게 메기의 관심은 제 앞에 나타난 또래 방랑자 아이에게 옮겨간다.책을 읽기 전에는 첫째를 더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그저 저 사회의 통념 쯤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거의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수준의 프로파간다라 놀랐다. 단순히 의무를 부여하는 수준이 아닌 첫째는 영웅이며 특별하고 용감하다는 식으로 태생적으로 주어진 자리를 신성시함으로서 이성으로 거부할 수 없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첫째가 아닌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함으로서 그 체제와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앤드루 솔즈베리의 첫째들에 대한 칙령은 마을을 지배하는 종교로 작용한다. 맹목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아마 이 이야기 속의 조용한 전쟁에서 '적'의 존재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을지 모른다. 종교에 의문은 허용되지 않는다.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통 어린 나이로 설정되는 주인공이 저지르는 실수들과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에 필터링 없는 응원을 던질 수 있다는 부분이 크다. 애들은 그렇게 자라니까. 물론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인 것도 있고.그렇지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성장소설이기 때문 보다는 여성 작가가 쓴 티가 나는 소설이라는 점이 더 컸다.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에서 중요한 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성캐릭터다. 주인공인 메기는 물론이고 마을 밖의 길을 알고 있는 사람도 방랑자 우나고, 차를 운전할 줄 알고 마을에서 둘째인 메기에게 관심이 갈 수 있게 주목시키는 사람도 린디다. 남성캐릭터는 악역이거나 주인공인 메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줄 뿐이다. 혹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제정신을 채 차리지도 못하거나. 물론 이 점이 너무 몰아주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게 또 여성의 시선에서 쓴 소설 읽는 재미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