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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1 :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나에겐 참 평범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30여 년 이상 영어를 가르치시다가 그 일을 그만 두신 후엔 각종 잡지와 신문, 그리고 단행본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버리려고 내 놓은 헌 책들을 부지런히 집 안으로 가져다가 위로, 옆으로 누이며 쌓아 놓기를 좋아하시는 통에 어른들은 무척 괴로워하셨지만 나에겐 보물섬, 소년중앙, 새벗, 어깨동무 등 볼수록 재미난 만화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나 역시 책을 한 번 구입하면 다 보고 난 뒤에도 절대 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남들은 이제 책 좀 사지말고 빌려다보라는 둥, 다 본 책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든가 아니면 시립도서관 등에 기증하라고 하지만 세상 사에 별다른 욕심이 없는 나에게 유독 책 욕심만큼은 있는지 아직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만화를 읽을 때는 갈등이 시작된다. 하지만 내 보물상자격인 사과박스엔 조석의 마음의 소리,허영만의 식객 시리즈와 함께 부자사전, 그리고 꼴1,2까지 잘 보관되어 있어서 언제든 다시 생각나면 꺼내볼 수 있다. 만화라도 어찌 그리 쉽게 버리라고 하는 지…….도무지 모를 소리다!
하지만 꼴은 예전의 타짜와 달리 허영만이 직접 글과 그림까지 모조리 맡아서 낸 책이라 그런지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많았다. 물론 관상쟁이들의 족집게 수준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소 정확성이 떨어지고 설명부분에서도 두루뭉수리하게 사물에 빗대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읽는 사람 맘대로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서 세밀하고 나름 근거가 탄탄하고 정확한 관상이론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단순한 총론격인 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예전에 읽어보았던 관상학책을 보면 수십 년 간 그 일에 종사해 오면서 만나 본 사람들을 토대로 하여 이른 바 대성할 상의 특징을 기관별로 뽑아서 정리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마가 얼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그 모양, 머리털의 분포부터 광대의 위치와 크기, 콧대의 높이와 콧망울의 모양, 콧구멍의 크기 등 무척 자세하게 실었고 변변한 그림도 없이 문자로만 된 묘사가 어찌나 뛰어난 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그 이론을 접할 수가 있었는데 꼴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이미 성공한 몇 몇 인물들을 각각의 예로 들어서 이른 바 '귀상'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현 대통령인 이명박씨의 경우 쌍꺼풀 없이 거의 감길 듯한 눈이 강한 파워를 나타내고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에게 리더로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식의 상식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펼쳐놓았다. 아무래도 책을 편집하던 시기가 대통령선거 즈음이어서 당시 유력한 여당후보의 당선을 미리 염두에 두어 두고 썼기이 이런 끼워 맞추기 식의 결과론 적인 글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신뢰감 있고 시대가 바뀌어 다시 읽어보아도 이 말이 참말이 구나를 느낄 수 있는 진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관상에 대해 단순한 재미와 호기심으로 한 번 가볍게 읽어보기엔 흥미롭지만 저자 스스로가 내린 관상에 대한 정의가 '사람은 그 타고난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노력으로 관상이든 운명이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객관적이며 공정한 중립의 자세를 지키며 보여주었다면 훨씬 그 가치가 높아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간 익힌 인간의 얼굴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채 몇 분이 안 되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일 것이란 예측과 판단을 내리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단순히 내 일이 잘 안 풀리는데 혹시 그것이 타고난 운명 탓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관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기 보다는 업무상 만나야 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위장을 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그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 까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를 맞이해야만 잘못된 선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어책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관상학책은 많아도 역시 글로써만은 충분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었기에 그림과 함께 내용까지 충실한 관상지식을 얻고자 했었는데 나의 실질적인 관상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는 꼴1,2를 다 읽고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니, 책으로 관상을 배우겠다는 것 자체가 실은 무리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 간 사람을 만나보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다 알기엔 불가능하다는 인간의 얼굴의 비밀, 오직 신의 영역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