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6 - 두부대결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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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라서 만만한가?

그 긴 역사만큼 어느 음식보다 대단히 재미있는 것이 바로 이 두부다!


음식솜씨가 뛰어나신 어머니께서는 매일 직접 요리를 해 주신다. 재료부터 소신과 까다로움을 갖고 고르시기에 하루걸러 사는 두부도 대기업제품들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강릉초당두부만 꼭 사오셨다. 덕분에 올 봄엔 마트에서 '우수고객'으로 뽑히셔서 온 가족이 강릉의 초당부두공장에 직접 견학을 가게 되는 행운도 누렸다.



정동진에 가면 강릉초당두부의 음식점이 있는데 거기 가서 처음 먹어 본 순두부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순두부를 시켜놓고 당연히 뚝배기에 끓여져 나오는 얼큰한 그 맛, 바로 고춧가루와 바지락도 들어 있고 위에는 계란노른자가 반 쯤 익어가는 상태의 그 순두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 앞에 당도한 순두부는 겉과 속이 모두 흰 눈처럼 하얗기만 했다! 그것도 형태가 반듯하지도 않고 몽글몽글 포도송이가 뭉쳐져 있는 모양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순두부가 몹시 낯설어서 손도 대지 못하고 있자 눈치 빠른 강원도 아줌마가 옆으로 와서 "서울 손님들은 순두부 달래서 가져다 주면 처음엔 다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하지만 우리 강릉에서는 순두부하면 바로 이렇게 뜨거울 때 양념장에 찍어서 먹는 이 하얀 두부를 순두부라고 하지요."



그제야 순두부에도 서울식과 강릉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만들어서 곧 먹는 뜨거운 순두부의 맛은 정말 두부 그 자체가 이렇게 고소하고 씹을수록 자연의 맛이 난다는 것을 처음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식객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음식은 사진으로만 알 수 없고 직접 먹어봐야 그 진 맛을 아는 법인데 이 두부를 위해 직접 새벽에 차를 몰아 강릉까지 가서 견학하고 먹고 만나 본 사람들을 책에 다 실었다는 점에서 현장감이 살아있다.



실제로 강릉 초당마을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나는 책 끝부분에 나오는 음식점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우리 가족이 들어갔던 바로 그 음식점의 내부구조가 그대로 그림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혹시 허영만작가도 우리와 똑 같은 곳에서 두부를 먹지 않았나하는 호기심이 왕성하게 발동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음식의 재료선정과 만드는 방법 등을 자세히 싣는 것은 동아일보에 연재할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망둥어를 다룰 때 등장한 함민복시인, 그 함 시인과의 만남은 이 책이 만화가 아니라 에세이인 줄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리얼하면서 감동을 주었다. 시 한 편 쓴 값을 고작 3만원 밖에 쳐 주지 않는 것에 마음 상하다가도 그 돈을 가지고 기름을 사면 한 겨울 따뜻하게 방을 데울 수 있다며 감사해하는 시인의 가난하면서도 솔직한 태도에 시집을 언제 샀더라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마음 한 편이 찡하게 미안해졌다.


특히 환갑이 넘은 작가와 그 친구들이 캐나다로 '가출여행'을 떠난 것은 무척 흥미롭고 너무나 리얼해서 그 대자연의 진풍경에 대한 동경도 동경이지만 자유를 위해 떠나서 영어도 통하지 않고 매 번 한식을 해 먹으며 외국인들과 불화와 소통을 반복해가는 그 별난 여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역시 가공의 인물과 달리 실존인물은 그 맛부터가 다른 가보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음식 만드는 법은 글쎄.....!!!!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실제사진과 기록물들이 담긴 취재수첩도 무척 현장감과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어 재미있게 보았는데 만화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 무한한 상상력과 어뚱함이 대세였던 어린 시절의 만화와는 경향이 사뭇 달라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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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그림 여행
정지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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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2월 마지막 날 휴일이자 막바지 한 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서 덕수궁 돌담을 따라 생긴 긴 행렬 가운데 어머니와 나도 있었다. 활동적이시며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라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빈센트 반 고흐 전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 간 것이었는데 하필 서울시민들이 다 몰려든 그 날,  덕분에  3시간을 밖에서 보낸 끝에야 겨우 들어간 미술관 안에는 그림을 보려고 줄을 선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고흐의 삶이 비극적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네덜란드의 목사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가 죽은 형의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빈센트로 불려졌다는 것,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빈센트의 생일이자 자신의 첫 아이가 죽은 날을 사택 근처의 교회공동묘지로 어린 빈센트를 데리고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갔던 일화를 그 날 처음 알게 되었다. 유독 비싼 값에 팔리는 고흐의 그림들에 대해 적지 않은 반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별나게 고통스러웠던 화가의 삶만큼 그의 유작들이 별나게 대접을 받는다고 너그럽게 이해하게 된 것은 큰 변화였다.

그만큼 캔버스와 물감으로 표현한 유화들, 혹은 목탄화, 연필뎃생 등이 섬세한 언어적 필치로 다시 보게 되는 계기는 바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해서, 그들이 살고 간 인생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백석

이토록 짧은 시 한 수를 읽는 동안 읽을 때마다 가슴이 울리며 눈이 저려옮을 느끼는 것은 웬일일까! 구구절절 가슴을 찌르고 또 눈앞을 침침하게 만드는 이 지독한 진리 앞에 그 간 막혔던 숨구멍, 귓구멍, 목구멍이 한꺼번에 열린 듯 한 당혹감과 처절함이 아파오는 목구멍과 함께 뒹군다.

독설가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삶 역시 생명력 있는 무희의 춤과 달리 자신은 완전히 시력을 잃고 암흑 속에서 외롭게 오랫동안 살다 갔다. 시력을 잃은 화가라니! 참으로 하늘이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아닌가! 인생을 알면 알수록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생을 살다가는 인간에 대해 깊은 애통함이 솟아 오른다. 

모두 스물일곱 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이 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얼마 전에 읽었던 고흐와 테오 간의 서신을 묶어 책으로 낸 것처럼 화가의 인생과 함께 놓치고 간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리라 짐작을 했다.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좁은 범주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4장에 걸쳐 각각 7인의 화가들을 분류했다.
목차란의 작은 제목들도 한결같이 시(詩)였다.


                그림 속에 스며있는 사랑의 빛




                     고통을 이겨내 맑은 분노




                           슬픔을 건너온 풍경




               세상을 향해 터뜨린 꿈의 꽃망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 계절에 어울릴 법한 낭만과 아름다움을 향한 관심에 이끌려 책을 선택했건만 아뿔싸! 저자인 정지인시인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회분석가였다.


첫 장에 소개 된 김남주 시인과 김호석 화가의 이야기는 70-80 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육신이 만신창이가 될 만큼 가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그 맑고 영롱한 정신만큼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은 곧은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시집의 제목-솔직히 말하자와 그 표지그림에 잘 나타나있다. 김남주 시인의 초상을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나로서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생각과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또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화가가 중심이 된 책이란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모두가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의 산물을 모은 책이다.

권력자의 강압에 의해 검은 테이프로 입이 막히고 손발엔 굵은 포승줄로 묶여도 누구는 붓을 들어 시를 쓰고 누구는 그림을 그려 세상에 남겨 놓았다. 후세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구와 어떻게 싸우다가 갔는지를 왜곡된 역사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신념을 지키며 목숨을 버린 그들이 있었다. 왜 몰랐을까? 그림은 곧 예술이며 예술은 아름답고 창의적인 것이라고만 배워서 였을까! 어린 시절 형이 그린 그림을 고스란히 베껴서 교내 그림그리기대회에서 상을 타 왔을 때의 그 아련한 부끄러움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처럼 너무나 무지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화려한 색감과 입체적인 구도,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 있으면 눈이 멈추고 심장이 고정되는 감동을 주는 명화들에 대한 기대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바뀌었다. '무엇을 겪었던 것일까?,무엇을 전해주고 싶었을까?,무엇을 남겨주려 이토록 오해와 편견이 판을 치는 세상에 대고 끝까지 주린 배를 잡고 너무나 가난해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못 한 벌 사 주지 못한 채 이별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까지도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일까?'

노인이 된 모습으로 자신의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 있는 모네와 허연 수염과 지팡이를 쥔 손이지만 눈 빛 만큼은 강렬하고 힘 찬 젊은이의 것인 르누아르와 마음 넓이가 대서양만큼은 됨 직한 일리야 레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은 저기까지 어떻게 버티며 갔을까?'가 자연스럽게 묻고 싶어진다. 사람관계에서 가장 추하고 풀지 못할 매듭이 자꾸만 더해가는 삶이 부담스럽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공부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허탈감이 안개처럼 무겁게 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오직 탐욕과 속임수와 분쟁을 수치심도 없이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제 멋대로 행하다가 뉘우침도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태반일터, 하필 내가 왜 이런 가망 없는 인간을 붙잡고 내 인생을 갉아먹으면서 그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줘야 하는가!

끝도 없는 질문과 불만으로 터질 것 같은 머리가 렘브란트에 이르러서 구멍이 나 버린 것 같다. 젊은 시절의 풍요롭고 전도양양했던 천재의 몰락과 함께 쏟아지는 배신과 멸시, 그리고 온 갓 비웃음을  피할 겨를도 없이 고스란히 몸으로 다 받을 수밖에 없었던 렘브란트, 그는 비로소 인간의 야만스럽고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얼굴의 실체를 보게 되고 사람들은 그의 곁을 모두 떠나버렸지만 그는 깊어지고 더 단단해졌다. 그 강함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안과 분노, 노여움에 대해서도 좌시하지 않고 싸워 이겨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근엄하고 강인한 남성스러움 대신 푸근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렘브란트를 천재라고 하는 이유를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도하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면서 확인했다. 이 그림이 이 책 가운데 있는 그림 중 가장 내 마음 속 깊이, 내 영혼을 울리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명을 다 한 노(老)예언자는 혼자서 어느 동굴 깊숙한 곳에 힘없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 팔에 기대어 있지만 그의 정수리엔 가장 빛나는 지혜의 빛이 쏟아져들어온다. 그 얼굴, 예루살렘의 패망을 자신의 입으로 전해야했을 그 괴로운 사명을 다 마친 선지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눈물 같다.

이 세상에는 왜 이토록 어려운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일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하셔도 될 일을 어린아이로 출발해서 노인으로 저무는, 필경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유약한 인간에게 맡기신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언제까지 해야 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백석의 시(詩)처럼

하늘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 속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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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필요해 웅진 푸른교실 9
박정애 지음, 김진화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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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주고 받으면 사진 한 장 찍고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만개한 꽃다발이 아니라 집에 놓아두고 계속해서 물을 주고 분 갈이를 해주며 때로는 그 시든 잎사귀를 거둬가며 커가는 모습을 주욱 지켜보고픈, 참으로 드문 이야기이다.

동화작가란 참으로 관찰력이 뛰어나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반듯하게 마름질 하고 싶어하는 못 말리는 족속이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구조가 치밀하면서도 심리묘사가 섬세해 아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세상을 보는 듯 했다. 읽다보니 어찌나 현실성이 강한 지 내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학교에는 그만 다니자고,차라리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 주마 하고 싶어졌다.

1인칭 주인공시점의 동화는 만큼이나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책 전반이 상황설명이나 주변정리를 위한 죽어있는 지문으로 채워지기보다 호수초등학교 3학년 3반 3번 조은애라는 눈에 띄지도 않는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아이들의 언어로 직설적이면서도 강하며 단문으로 살아있게 담아냈다.

 

그에 반해 은애의 어머니나 담임선생 같은 어른들의 말은 솔직하게 말해도 될 것을 참으로 그럴듯하게 돌려가며 포장되듯 긴 대사라 어른들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를 잘 보여주었다.



녀석의 갈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특히 이런 갈등이 어린아이 시절에 한 번 겪고 끝나버리는 홍역 같은 일회성 질병이 아니라는 점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아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회의 오래된 구조적 악습과 인간 내면의 약자에게 이유 없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횡포를 즐기는 죄성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이십 년, 삽십 년, 길게는 노인이 되어서도 그와 비슷한 부조리한 세상을 지속적으로 맛 볼 것을 생각하면 뭐라 선뜻 잔뜩 위축되고 어깨를 못 펴는 아이 앞에서 어른스런, 전문가다운, 그럴듯한 조언을 한다는 것은 녀석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애의 갈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 가지는 집 안에서 엄마와의 갈등이다. 녀석의 엄마는 보통의 제 새끼만 싸고돌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기에 급급한 보통의 엄마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나는 못 먹고 못 입는 한이 있어도 내 새끼가 원한다면 과도한 지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거리낌 없이 행하는 엄마들과 달리 은애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많다. 녀석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몸에 맞지도 않은 헐렁한 헌 옷을 싸게 사다가 반복된 설득과 강요를 통해 아이에게 입히는 엄마이다. 아이가 그 일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강요에 대해 억압된, 소화되지 못한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을 생활화한다는 원칙을 우선순위에 두는, 실용적인 사고방식에 투철한 엄마이다.




역사상 아무리 고결하고 높은 신념도 한 인간의 존엄과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헌 옷을 억지로 입어야하는 녀석의 마음이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우리 집은 가난해서' 등으로 시들어 가고 있음은 물론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어른들의 세계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유행이 한 참 지난 구식 옷을 입고 초라하게 쭈뼛쭈뼛 서 있는 녀석의 생명력이 심각하게 훼손을 당한 것이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높은 인기와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오지희와의 갈등이다.


나도 질세라 오지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2학년 때 선생님 같았으면 벌써 일렀을 거다. 그 선생님은 내 말을 잘 들어주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선생님은 오지희를 예뻐하신다. 오지희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도 좋아하신다. 내가 오지희 흉을 보면 분명히 나를 혼내실 거다.

문종수는 오지희가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하는 멍청한 녀석이다. 내가 자기한테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내 발을 밟는 걸 보면 오지희한테 무슨 명령을 받았을 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왜곡시킨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알고 있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녀석의 눈에 비친 세계는 이미 공정함, 정의 등이 상실 된 세상이다. 오직 절대권력자인 담임선생이 누굴 더 총애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결정될 뿐이지 개별 사건마다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정확하게 판단해주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롭고 정의로운 재판장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또한, 그 세상에는 강한 자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쥐새끼와도 같은 하수인이 있어서 쌍방 간의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공격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하는 참으로 눈물나는 세상이다.

 

내 짝꿍 박하은마저 의자를 통로 쪽으로 옮겨 앉았다. 가슴이 아팠다. 샤프심 같은 걸로 심장을 콕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오지희가 박하은에게 친한 척을 했다.

 박하은만 통로 쪽으로 옮겨 놓았던 의자를 내 옆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가슴이 살짝 따뜻해졌다. 그런데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왜 그래? 이 옮는 건 무섭고 조폭은 안 무서워, 앙?" 나도 모르게 눈망울이 구르고 눈초리가 올라갔다. 조폭처럼. 입도 막 씰룩거렸다. 조폭처럼.

내가 왜 이러지? 진짜 조폭이 다 됐나?




30여 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사전에 미리 짠 계획대로 그 중 가장 예쁜 아이를 사이에 두고 일부러 "너는 얼굴이 너무 커!, 너는 못 생겼어" 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머지 아이들에게 하도록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다. 아무리 내적으로 건강하고 단단한 자신감에 차 있어 보였던 아이도 그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꾸만 들을수록 웃음을 잃어갔고 30여 분이 흐른 후엔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정말 못 생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만큼 사람의 말의 힘은 그 위력이 대단한 것이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말의 영향력을 조폭이라고 놀림을 받은 은애가 실제 조폭처럼 거칠고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을 스스로 보며 갈등하는 장면은 가장 큰 위기인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종이 접기도, 책 읽기도. 텔fp비전 보는 것도 다 그냥 그렇다. 하다 보면 자꾸 딴 생각이 난다. 내가 진짜로 지질해 보이나? 내가? 내가? 내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것과 달리 문제해결방법은 다소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던 은애가 자신의 모습을 바꿔보려 하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한국의 아주머니들과 같이 머리모양을 바꾸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달고 명품 옷으로 치장하여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본질과는 한 참 거리가 먼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 만큼 아이들 역시 심각하게 병들어 있음을 느꼈다. 도무지 눈에 보이는 것, 남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 나의 노력이 아닌 물질의 힘을 빌려 단 숨에 바꿀 수 있는 것들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피상적인 것으로 자신을 바꾸려는 은애에게 은애의 이모가 알려 준 방법은 자신감을 갖어라,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친구에게 주어라, 칭찬을 많이 해라, 내가 먼저 다가가라 등 그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보다 앞서 은애가 속해 있는 사회가 얼마나 혼탁하며 부조리하며 일그러진 곳이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오지희가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며 외모가 잘나서인데 반해 조은애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남이 입던 헌 옷을 입고 다니며 키가 작고 어른들을 흉내 내지 않은, 평범한 아이라는 것이다. 과연 전자가 흠모를 받기에 합당하고 후자가 멸시와 따돌림을 받을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서양의 아이들과 달리 한국의 아이들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엉터리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고 소외시키는 부당한 세력 앞에 너무나 쉽게 그 모든 원인을 자기 자신으로 돌리며 굴복한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며 자신을 인기와 세력이 있는 그들의 모습처럼 바꾸려 시도한다. 이럴 때,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그 부실한 엉터리 잣대부터 바꿔야하지 않을까? 라고 물어주는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힘에 의해 세상을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조악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바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로서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명과 높은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옳은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특히 혼잣말이 열 살짜리 아이의 심리가 있는 그대로 강하게 가슴에 전해졌다. '심심하다, 심심해. 그렇다고 숙제는 하기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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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1 :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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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참 평범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30여 년 이상 영어를 가르치시다가 그 일을 그만 두신 후엔 각종 잡지와 신문, 그리고 단행본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버리려고 내 놓은 헌 책들을 부지런히 집 안으로 가져다가 위로, 옆으로 누이며 쌓아 놓기를 좋아하시는 통에 어른들은 무척 괴로워하셨지만 나에겐 보물섬, 소년중앙, 새벗, 어깨동무 등 볼수록 재미난 만화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나 역시 책을 한 번 구입하면 다 보고 난 뒤에도 절대 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남들은 이제 책 좀 사지말고 빌려다보라는 둥, 다 본 책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든가 아니면 시립도서관 등에 기증하라고 하지만 세상 사에 별다른 욕심이 없는 나에게 유독 책 욕심만큼은 있는지 아직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만화를 읽을 때는 갈등이 시작된다. 하지만 내 보물상자격인 사과박스엔 조석의 마음의 소리,허영만의 식객 시리즈와  함께 부자사전, 그리고 꼴1,2까지 잘 보관되어 있어서 언제든 다시 생각나면 꺼내볼 수 있다. 만화라도 어찌 그리 쉽게 버리라고 하는 지…….도무지 모를 소리다!


하지만 꼴은 예전의 타짜와 달리 허영만이 직접 글과 그림까지 모조리 맡아서 낸 책이라 그런지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많았다. 물론 관상쟁이들의 족집게 수준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소 정확성이 떨어지고 설명부분에서도 두루뭉수리하게 사물에 빗대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읽는 사람 맘대로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서 세밀하고 나름 근거가 탄탄하고 정확한 관상이론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단순한 총론격인 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예전에 읽어보았던 관상학책을 보면 수십 년 간 그 일에 종사해 오면서 만나 본 사람들을 토대로 하여 이른 바 대성할 상의 특징을 기관별로 뽑아서 정리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이마가 얼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그 모양, 머리털의 분포부터 광대의 위치와 크기, 콧대의 높이와 콧망울의 모양, 콧구멍의 크기 등 무척 자세하게 실었고 변변한 그림도 없이 문자로만 된 묘사가 어찌나 뛰어난 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그 이론을 접할 수가 있었는데 꼴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이미 성공한 몇 몇 인물들을 각각의 예로 들어서 이른 바 '귀상'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현 대통령인 이명박씨의 경우 쌍꺼풀 없이 거의 감길 듯한 눈이 강한 파워를 나타내고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에게 리더로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식의 상식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펼쳐놓았다. 아무래도 책을 편집하던 시기가 대통령선거 즈음이어서 당시 유력한 여당후보의 당선을 미리 염두에 두어 두고 썼기이 이런 끼워 맞추기 식의 결과론 적인 글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신뢰감 있고 시대가 바뀌어 다시 읽어보아도 이 말이 참말이 구나를 느낄 수 있는 진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관상에 대해 단순한 재미와 호기심으로 한 번 가볍게 읽어보기엔 흥미롭지만 저자 스스로가 내린 관상에 대한 정의가 '사람은 그 타고난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노력으로 관상이든 운명이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객관적이며 공정한 중립의 자세를 지키며 보여주었다면 훨씬 그 가치가 높아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간 익힌 인간의 얼굴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채 몇 분이 안 되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일 것이란 예측과 판단을 내리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단순히 내 일이 잘 안 풀리는데 혹시 그것이 타고난 운명 탓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관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기 보다는 업무상 만나야 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위장을 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그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 까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를 맞이해야만 잘못된 선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어책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관상학책은 많아도 역시 글로써만은 충분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었기에 그림과 함께 내용까지 충실한 관상지식을 얻고자 했었는데 나의 실질적인 관상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는 꼴1,2를 다 읽고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니, 책으로 관상을 배우겠다는 것 자체가 실은 무리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 간 사람을 만나보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다 알기엔 불가능하다는 인간의 얼굴의 비밀, 오직 신의 영역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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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헤엄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5
레오 리오니 지음,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으뜸 헤엄이는 레오 리오니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얼마 전에 지각대장 존을 보면서 요즘 그림책엔 삽화대신 미술관에서나 봄 직한 작품 수준의 그림이 들어있다는 것을 새롭게 접하고 놀라긴 했지만 바다를 무대로 한 이 책 속 그림 또한 매우 큰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이란 버나뎃 로제티슈스탁이 글을 쓰고 캐롤라인 제인 처치가 그림을 그려 전 세계적으로 유아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처럼 전체적으로 선이 명확하고 둥글둥글해서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전혀 빗나가고 말았다.

왜냐하면 단순히 형태 잘 잡힌 알록달록한 회화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판화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감자와 고구마도장으로 여기저기 쿵쿵 찍어 모양이 겹쳐지고 다양한 색깔이 섞여서 자유롭고 신비한 바다의 경이로움을 매우 잘 표현한 것이 가슴을 넓히고 생명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어딘지 꽉 짜여지고 체계적으로 완벽해서 세련미가 돋보이는 어른들의 세상과는 딴 판인 어설픈 아이의 솜씨가 묻어나는 흙과 같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말 리오니 혼자서 만든 작품일까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어떻게 그토록 아이들의 순수함과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함을 어른이 되어서도 잃어버리지 않고 누릴 수 있눈 것일까!


주인공 으뜸 헤엄이는 길이 1cm도 채 될까말까한 검은 점과 같은 작은  물고기이다. 친구들이 한꺼번에 다랑어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건이 터졌을 때 뛰어난 헤엄솜씨 덕분에 혼자서만 살아남았다. 생명은 구했지만 그 넓은 바다 속에서 가도가도 늘 혼자일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구경하는 외로운 검은 점 헤엄이와 달리 바다는 무지개빛 해파리와 물지게를 지고 가는 것처럼 통통한 가재, 그리고 이름모를 물고기 3마리는 몸통과 지느러미의 색깔이 오묘하게 물감이 번지고 섞여서 참으로 아름답고 신선했다. 특히 뱀장어는 처음 보는 나에게는 갈치로 오해를 받았는데 수묵채색화를 보듯 그 기법이 매우 독특한 동양적인 그림이라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으뜸 헤엄이는 기능적인 헤엄만 잘 치는 것이 아니라 무척 용감한 아이다. 마침내 끝 없는 바다를 여행하다가 자신과 꼭 같은 모양을 한 물고기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모두 빨강색인 반면 헤엄이 자신만 검정색임에도 전혀 움츠러들거나 그들과 다르다고 따로 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속에 들어가서 자신이 먼저 보고 온 놀랍고 신비로운 거대한 바다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싶어서 함께 놀고 구경다니자며 그 작은 물고기떼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에서 흡사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의 땅 이집트로부터 탈출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게 했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지도자 모세를 보는 것 같았다.

강자에게 빌붙거나 그 비위를 맞추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자유를 선택한 점이 역시 동양권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늘 부럽고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한다. 세상의 주인은 힘 센 권력자나 일부 귀족층이 아니라 작고 힘없어 보이는 일반 대중의 것임을 일찍부터 깨달은 서구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그 속에서도 느꼈기 때문이다.

 

 헤엄이는 늘 숨어지내고 피해다니기만 하는 그 작은 물고기들의 마음을 움직여 덩치가 큰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워 자신들이 이 넓고 아름다운 바다를 마음껏 누릴 권리와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기에 ,특히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어보이는 약자들이라 하더라도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면 어떤 독재적 횡포와도 맞서 싸울만큼 강해진다는 것을 커다란 빨간색 물고기 안에 검은 눈동자로 잘 표현하였다. 


으뜸 헤엄이는 스토리 중심이 아니다. 보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중심이다. 각 페이지마다의 글과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녀석이 즐거워하고 만져보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반응을 보였다. 분명 활자화 된 문자가 전해주는 메시지보다 훨씬 크고 강한 그림이 주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어른들이 보기에도 다양한 생각과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벽에 걸어두고 남들에게 자랑은 할 수 없지만 혼탁한 내면이 밝고 맑아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정한 명작이 전해주는 생명력이 흘러넘치리라 확신한다. 다만 끝맺음이 조금 비약적이긴 하지만 자유를 향해 용감하게 맞선다는 주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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