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갈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특히 이런 갈등이 어린아이 시절에 한 번 겪고 끝나버리는 홍역 같은 일회성 질병이 아니라는 점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아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회의 오래된 구조적 악습과 인간 내면의 약자에게 이유 없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횡포를 즐기는 죄성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이십 년, 삽십 년, 길게는 노인이 되어서도 그와 비슷한 부조리한 세상을 지속적으로 맛 볼 것을 생각하면 뭐라 선뜻 잔뜩 위축되고 어깨를 못 펴는 아이 앞에서 어른스런, 전문가다운, 그럴듯한 조언을 한다는 것은 녀석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애의 갈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 가지는 집 안에서 엄마와의 갈등이다. 녀석의 엄마는 보통의 제 새끼만 싸고돌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기에 급급한 보통의 엄마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나는 못 먹고 못 입는 한이 있어도 내 새끼가 원한다면 과도한 지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거리낌 없이 행하는 엄마들과 달리 은애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많다. 녀석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몸에 맞지도 않은 헐렁한 헌 옷을 싸게 사다가 반복된 설득과 강요를 통해 아이에게 입히는 엄마이다. 아이가 그 일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강요에 대해 억압된, 소화되지 못한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을 생활화한다는 원칙을 우선순위에 두는, 실용적인 사고방식에 투철한 엄마이다.
역사상 아무리 고결하고 높은 신념도 한 인간의 존엄과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헌 옷을 억지로 입어야하는 녀석의 마음이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우리 집은 가난해서' 등으로 시들어 가고 있음은 물론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어른들의 세계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유행이 한 참 지난 구식 옷을 입고 초라하게 쭈뼛쭈뼛 서 있는 녀석의 생명력이 심각하게 훼손을 당한 것이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높은 인기와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오지희와의 갈등이다.
나도 질세라 오지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2학년 때 선생님 같았으면 벌써 일렀을 거다. 그 선생님은 내 말을 잘 들어주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선생님은 오지희를 예뻐하신다. 오지희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도 좋아하신다. 내가 오지희 흉을 보면 분명히 나를 혼내실 거다.
문종수는 오지희가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하는 멍청한 녀석이다. 내가 자기한테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내 발을 밟는 걸 보면 오지희한테 무슨 명령을 받았을 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왜곡시킨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알고 있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녀석의 눈에 비친 세계는 이미 공정함, 정의 등이 상실 된 세상이다. 오직 절대권력자인 담임선생이 누굴 더 총애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결정될 뿐이지 개별 사건마다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정확하게 판단해주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롭고 정의로운 재판장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또한, 그 세상에는 강한 자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쥐새끼와도 같은 하수인이 있어서 쌍방 간의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공격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하는 참으로 눈물나는 세상이다.
내 짝꿍 박하은마저 의자를 통로 쪽으로 옮겨 앉았다. 가슴이 아팠다. 샤프심 같은 걸로 심장을 콕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오지희가 박하은에게 친한 척을 했다.
박하은만 통로 쪽으로 옮겨 놓았던 의자를 내 옆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가슴이 살짝 따뜻해졌다. 그런데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왜 그래? 이 옮는 건 무섭고 조폭은 안 무서워, 앙?" 나도 모르게 눈망울이 구르고 눈초리가 올라갔다. 조폭처럼. 입도 막 씰룩거렸다. 조폭처럼.
내가 왜 이러지? 진짜 조폭이 다 됐나?
30여 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사전에 미리 짠 계획대로 그 중 가장 예쁜 아이를 사이에 두고 일부러 "너는 얼굴이 너무 커!, 너는 못 생겼어" 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머지 아이들에게 하도록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다. 아무리 내적으로 건강하고 단단한 자신감에 차 있어 보였던 아이도 그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꾸만 들을수록 웃음을 잃어갔고 30여 분이 흐른 후엔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정말 못 생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만큼 사람의 말의 힘은 그 위력이 대단한 것이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말의 영향력을 조폭이라고 놀림을 받은 은애가 실제 조폭처럼 거칠고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을 스스로 보며 갈등하는 장면은 가장 큰 위기인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종이 접기도, 책 읽기도. 텔fp비전 보는 것도 다 그냥 그렇다. 하다 보면 자꾸 딴 생각이 난다. 내가 진짜로 지질해 보이나? 내가? 내가? 내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것과 달리 문제해결방법은 다소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던 은애가 자신의 모습을 바꿔보려 하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한국의 아주머니들과 같이 머리모양을 바꾸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달고 명품 옷으로 치장하여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본질과는 한 참 거리가 먼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 만큼 아이들 역시 심각하게 병들어 있음을 느꼈다. 도무지 눈에 보이는 것, 남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 나의 노력이 아닌 물질의 힘을 빌려 단 숨에 바꿀 수 있는 것들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피상적인 것으로 자신을 바꾸려는 은애에게 은애의 이모가 알려 준 방법은 자신감을 갖어라,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친구에게 주어라, 칭찬을 많이 해라, 내가 먼저 다가가라 등 그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보다 앞서 은애가 속해 있는 사회가 얼마나 혼탁하며 부조리하며 일그러진 곳이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오지희가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며 외모가 잘나서인데 반해 조은애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남이 입던 헌 옷을 입고 다니며 키가 작고 어른들을 흉내 내지 않은, 평범한 아이라는 것이다. 과연 전자가 흠모를 받기에 합당하고 후자가 멸시와 따돌림을 받을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서양의 아이들과 달리 한국의 아이들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엉터리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고 소외시키는 부당한 세력 앞에 너무나 쉽게 그 모든 원인을 자기 자신으로 돌리며 굴복한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며 자신을 인기와 세력이 있는 그들의 모습처럼 바꾸려 시도한다. 이럴 때,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그 부실한 엉터리 잣대부터 바꿔야하지 않을까? 라고 물어주는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힘에 의해 세상을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조악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바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로서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명과 높은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옳은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