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6 - 마지막 김장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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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솜씨 좋은 어머니께서 만드셨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가장 먹기 싫은 것이 있었다. 바로 '김치'이다. 내 식성은 성장한 후로도 별로 변하지 않아서 지금도 김치엔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26화 마지막김장이란 제목을 대했을 땐 ‘아! 바로 나와 같이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들 이야기구나’ 라는 예측을 했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웃음이 나왔다.


무엇보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는 꼭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어야한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올해도 어머니께서는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느 회사에서 한다는 ‘김장투어’의 이야기를 꿈나라 이야기로 여기시고 온 가족을 총 동원해서 우여곡절 끝에 이틀에 걸쳐 김장을 담그셨다.



그래서 나 역시 김치도 잘 안 먹는 내가 김장에 동원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괴롭다. 마지막김장에 등장하는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솟고 바람머리를 한 성질 괴팍한 큰며느리의 모습을 보면 끔찍하게 싫다가도 그냥 편리하게 김치공장에 주문해서 사 먹자는 ‘합리적 주장’을 강단 있게 펼칠 때엔 박수를 보내고 싶은 야릇한 이중성을 느꼈다.



특별히 큰며느리의 모습을 보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지 제가 혼자 결정하고 주변사람들의 의견은 묵살하기 다반사에 서슴없이 명령하고 뜻대로 되지 않았을 시엔 불같이 화내는 모습에서 실제 모델이 분명히 있음을 짐작한다.


그런 여자가 남편의 무단가출에 180도 달라져서 재래시장에 가서 직접 김장재료를 사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여 온 집안 식구들의 김장을 마친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김장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싸우고 틀어지고 감정이 상해서 먼저 집에 가 버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모여 앉아 김치를 담그느라 부족한 마음과 힘을 모으는 모습은 역시 ‘가족’의 질김과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개성 있는 3대의 가족들이 모여서 만드는 김장이라 리얼한 캐릭터까지 등장하고 심리묘사까지 뛰어나서 그 면에서 참 재미있게 보았다. 혹시 허영만작가의 아내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그런데 식객에 등장하는 그림에 자주 ‘황성주생식’이 나오는데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뭣하고 그래도 사실 궁금하다. 허영만작가가 황성주생식을 좋아하는 지…….

작가가 기르는 개 이름이 찰스라는 것은 기억하는데 생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듯 하다. 그래서 개고기는 절대 안 먹는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27화 구룡포이야기는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조금 과장된 것 같다. 포항에서 과메기를 실제로 구워 먹어보았는데 그냥 ‘꽁치구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명태를 말린 황태를 상상하고 꽁치의 변신이 과메기란 상상을 하고 먹어보았더니 많이 실망이 되어 tv에서 아무리 선전을 해도 현직대통령의 제 2의 고향이라 해도 다시 돌아보게 되지는 않는다.



역시 직접 산지에서 경험한 것이 어떤 음식에 대한 인상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아무리 좋게만 얘기한다고 해도 이미 각인된 지식을 지우기엔 좀 더 집중적인 취재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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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그때 꿈이 나를 움직였다 - 청소년을 위한 최정화 교수의 파워 멘토링
최정화 지음 / 다산에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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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을 처음 보고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혹시 내가 만났던 그 외대교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고 직접 만나 본 사람이 쓴 책을 대하는 기분도 꽤 신선해서 즐길만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 재미로 한 번 훑어 볼 요랑으로 시작했지만 내심 점점 이야기 속으로 잡혀 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 간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유학생활의 애환을 닮은 책 들을 보아왔지만 이 번엔 단지 자화자찬 식의 전개와 달랐다.

 

동시통역사로서 교수로서 성공하기 위한 비법을 담은 것도 아니다. 자기 세계 안에 갇혀서 백군 띠를 머리에 두르고 1등을 목표로 밤잠을 안 자며 이겨보겠다고 폼 잡는 한국의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그 너머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산다고 자신을 소개한 외대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99년 이었다.

 
어문학과학생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졸업 후 진로로 통번역을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어 관심도 없었던 내가 최정화교수의 세미나에 간 것은 순전히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그 쾌청한 날씨 속에서도 역시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에 기대를 갖고 집중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럽에 갔던 것이 복이었는지 화근이 되었는지 나는 대학시절 내내 죽어있는 오래된 옛 것만 낡은 노트에 적어 와서 대충 읊고 나가버리는 전공 교수님들에 대해 진절머리가 날 대로 나 있었던 차에 대학원은 적어도 진정한 연구를 한다는 서구권으로 갈 희망에 날마다 밤을 새우던 시절이었다.

 


그 세미나에서도 영어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나가 주제였는데 정작 최교수는 그 요란스런 플래카드에 씌여있는 주제를 한 참 벗어난 자신이 다녀보고 만나 본 세계의 다양함과 재미, 충격 등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역시 이 책에서도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을 무지개색으로 넓게 쫙 펼쳐놓았다. 우리와 다른 문화와 역사, 가치관을 갖고 있는 동,서유럽의 여러 나라들, 동양권과 이집트까지 최교수가 갖다 온 문명권과 도시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해서 part3(너의 꿈을 펼칠 세계무대를 상상하라)에 가서는 부러움과 탄식에 마음이 상할 지경이었다.

 

많은 유명인들을 만난 것은 그다지 부럽지는 않았다. 반기문총장이나 토니 블레어총리, 마에스트로 정명훈, 김연아선수, 가수 비 등 직접 식사를 함께 하며 장시간 함께 앉아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눌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배움의 기회로 인식할 뿐, 하지만 일 년에 런던을 서너 번 이상 오간다는 사실은 분명히 '특혜'에 가까운 일이다. 내 주변엔 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갖다 온 한 노교수가 늘상 그 옛날의 미국이야기로 주변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 본인이야 일생에 한 번 그 자유롭던 유학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커서이겠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금 한 참 지나간 옛날의 미국 이야기는 더 이상 아무런 효과도 의미도 없는 한 개인의 '추억'일 뿐이다.

 

반면 최교수의 이야기는 불과 몇 달 전의 영국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적시성이 뛰어나고 현실성을 느낄 수 있어서 큰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특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그가 몹시도 부러운 것이다.

 

최교수가 주장하는 영어를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는 직업 상 하는 빈 말이 아니란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최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했을 당시 나는 이런 질문은 대략 이러했다. " 영어에 대해 관심도 있고 리스닝은 잘 할 수 있는데 스피킹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한다고 하는데 왜 영어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그의 대답은 지금도 기억이 남는다." 학생은 정말 말에 대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군요! 이것은 립 서비스(lip service) 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학생같은 사람은 영어를 수업이나 교재에 매달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영어문화권에서 온 사람과 접촉해서 말을 하는 기회를 늘리면 훨씬 빨리 영어를 한국어처럼 논리적으로 하고 싶은 의도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예요, 그리고 학생의 목소리가 참 좋군요!"

 
그 대답은 영문학과 교수 한 분과 많은 학생들 앞에서 나에게 한 공식적인 '칭찬'이었기 때문에 타과 학생에게 이토록 진지하며 친절하게 답변을 하는 최교수에게 관심이 쏠린 것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질문을 한 내게 관심이 쏟아져서 가뜩이나 숫기가 없는 나는 주변이 의식되어 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느라 긴장이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도 여전히 밝고 긍정적으로 학생의 대답에 최선을 다 해 길을 인도하는 최교수를 발견했다.

 
영어를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이유는 세상에 주목을 받는 인물들이 자신의 모국어 외에 서너 개의 외국어를 어느 수준 이상 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통역'을 하게 되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언어는 연구해야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꾸 연습해서 나의 생각, 의사, 감정 등을 상대방에게 가장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도구'라는 점에 갖은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앞으로는 한 가지의 직업으로 정년퇴직을 할 수 있는 느린 세상이 아니라 적어도 일생동안 3가지 정도의 직업을 바꿔가며 살아야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점도 통찰력 있는 주장이다.

  아마도 최교수는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서 급변하는 선진국의 사회상을 국내에만 머물고 있는 나보다는 훨씬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지 감만 잡은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확신에 찬 근거를 들수 있는 것이리라!

 

20대에 파리로 출발 하루 전 비행기표를 어머니께 빼앗겨 꿈을 접을 위험을 통과,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파리의 통번역대학원 입학시험도 못 치르고 번역학부에 들어가서 입학시험자격을 얻느라 고생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실화이기 때문에 현재의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한 교수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가 모험과도 같은 그 미약한 출발을 어떻게 용기를 갖고 대처했는지, 그 역경의 고비마다 건널 수 있게 해 준 꿈이 무엇이었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사는 것에 목을 매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이미 남들보다 너무 뒤쳐져 있다고 좌절하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삶의 너무 많은 짐에 눌려있다고 주저앉아 있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도 꿈은 갖을 수 있고 그 꿈을 갖는 자에게 문은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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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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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음식일까?    

 

 

어릴 때부터 시작된 만화사랑이 어른이 되어서도 쭈욱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허영만작가의 공이 큰 것 같다. '부자사전'이나 '꼴' 처럼 주제가 실생활에 밀접한 현실성을 갖고 있으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만화에 '타짜'처럼 특이한 인물과 환경을 소재로 한 시리즈물을 많이 내어 마니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주제로 현재 까지 스무 권이 넘는 연재만화를 낸 다는 것은 그 시도부터가 대하소설을 쓰는 것처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독자로서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또, 전문 요리사도 아닌 허영만작가가 과연 얼마나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려줄 지도 기대 반 걱정 반 이었다.   

  

 

그런데 이 대장정의 1권 시작을 다름 아닌 '어머니의 쌀‘로 여는 것을 보며 재미로 읽는 만화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열심, 우리 것의 가치를 후대에게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눈치 채게 되었다. 맛 기행 같은 흥미위주의 가벼운 이야기를 지양하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리의 산물들의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보여주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말이다.


나의 증조부께서는 일제 말기에 대단히 큰 농지를 소유하고 계셨다. 40년 대 일제의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제의 지독한 수탈정책의 일환인 공출을 더 내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해서 죽을 만큼 끔찍한 태형을 당하셨고 그들의 본보기로 증조부께서는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돌아가셨다. 당시 인근의 소작농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린 아기들부터 굶어 죽어나가는 비참한 형편이었다고 했다.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같은 민족의 것을 더 뜯어내어 이민족  일제의 군량미로 보내라는 명령에 맞설 수 있었던 증조부의 ‘대쪽같은 정신’은 지금 내게도 흐르고 있어서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을 쥔 자들이 강요하는 불의한 일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2003년 가을에 나온 이 ‘맛의 대결’은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우리 쌀에 대한 진한 애증의 감정을 잘 그렸다. 죽겠다고 쌀농사 지어 놓으면 외국에서 대량 수입된 쌀들에 밀려 제 값을 못 받으니 정말 죽을 맛이지만 20여 년이 지나서도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찾아 온 입양아가 어머니가 헤어질 때 주머니에 넣어 주었던 그 쌀(올게미쌀)  맛을 찾아 묻고 또 묻고 해서 고향과 부모를 만나는 바로 근본이기에 결코 그 눈물로 씨를 뿌리는 농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의 마음을 매우 잘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또, 작가 자신이 서울생활 38년이 넘었으면서도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며 즐기는 것을 잘 나타낸 ‘고추장굴비’ 편을 보면서 대갓집에서나 저장음식으로 놓고 먹는다던 그 고급음식을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시골음식으로 향수를 덧 입혀 그렸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릴 적 잘 살았다는 그가 무척 부러웠다. 굴비구이는 자주 먹어보았지만 고추장굴비는 아직......

마지막 편인 밥상의 주인에서는 일본 미식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상 그득하게 나온 한정식에 대해 ‘가짓수만 맞추었지 음식에 개성이 없다’는 바로 그 대사는 평소 내가 가슴 속으로 울분을 토하며 느끼는 불만 그 자체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 되었나 역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역시 근본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는데 바로, 밥이었다.  



같은 쌀로 해도 얼마나 불리고 물을 붓고 뜸을 들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밥맛이 난다는 그 대목에서 크게 고개가 끄덕여졌기 때문이다.

쌀로 시작해서 밥으로 맺는 이 맛의 대결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농민들이 ‘쌀! 쌀! 쌀!’ 하는 지 조금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증조부께서 유난히 쌀을 아끼셔서 그런지 나는 밥이 참 좋다! 고급 한정식집에 갈 기회가 생기면 항상 돌솥밥을 주문한다. 막 지어 온 그 한 그릇 안에 은행과 밤, 수삼, 대추 등이 들어 맛이 훌륭하지만 그 밥맛에 따라 그 집 음식의 맛을 대충은 짐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허영만은 음식의 기본을 제대로 아는, 고수 중의 고수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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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1 - 도시의 수도승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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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떨어지는 소(牛)머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림으로 그려도 그렇지! 소의 감은 큰 눈이 정육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한 부분으로 느껴져서 설렁탕 생각이 사라졌다. 영화 식객을 보고 난 후 정작 기억에 생생한 것은 그 맛있는 음식 장면이 아니라 도살장으로 순순히 고독한 마지막 걸음을 옮기던 소(牛)의 슬픈 눈이 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오는 눈물을 해결하느라 무척 곤혹스러웠던 기억과 함께 소를 잡아먹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던 기회였다.



영화 이후 한 동안 베지테리언이란 놀림을 감수하면서도 소고기를 멀리하다가 잊을 만하니 그림으로 다시 보게 되니 놀랄 수밖에!

51화- 24시간의 승부 

에서 나 역시 벽에 누린내가 배어 한 겨울에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냄새가 역하게 나는 그런 설렁탕집을 더 좋아한다.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인에게서 장인정신 같은 그런 믿음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업그레이드 된 설렁탕집과 60년 역사의 구식 설렁탕집을 비교한 이야기는 그래서 훨씬 공감이 컸다. 인테리어를 보고 찾는 집이 아니라 음식맛과 정성을 찾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 그리고 설렁탕 만들기가 정형화 된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축적된 감각과 노하우이기에 스파게티 만들기처럼 6개월 단기완성 종목이 아니란 점도 잘 지적했다.


53화- 도시의 수도승!

제목이 왜 도시의 수도승일까?누구나 음식은 살기 위해 먹는 다기 보다는 즐기기 위해, 좋은 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며 쉬어가는 기분으로 특별히 입에 맞는 맛 집을 찾아다닌다. 나 역시 그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통 사람인데 세상에는 산사의 수도승이나 모델 등 외에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이루어야할 꿈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11편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BODY BUILDER, 그리고 집안의 대들보인 BOXER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졌지만 원래 기획은 둘을 한 형제로 내 보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도시의 수도승의 주인공인 BODY BUILDER 김준호씨를 보니 첫 눈에 근육질의 몸매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신감있는 건강한 웃는 얼굴이었다. 소금기 없는 닭가슴살과 야채로 이루어진 식단을 보면 그의 절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애주가와 애연가라면 술, 담배도 단 번에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아보였다. 대회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외식을 할 때도 먹을 수 없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그 분야에서 우승 트로피를 얻기가 그렇게 끔찍하게 어려운 것인 줄 처음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내세울 근육이라곤 생각도 안 나는 나로서는 ,특히 감자칩의 짠 맛을 즐기는 나에게는 도무지 시도조차 불가능한 것 같다.




54화- 가족에서 BOXER로 나오는 장혁을 보면 그가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는지 아닌 지 보다는 마지막 장면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는 아들을 산동네 골목까지 마중나가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시선이 꽂혀버렸다. 아들이 이겼는지 졌는지 승패에 관심 없이 오직 시합을 준비하느라 체중을 줄이는 통에 못 먹은 아들에게 상처난 입 안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맛 난 음식을 먹이겠다는 그 질기고 애틋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 


‘음식은 사랑이다’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군 입대 후 처음으로 9박 10일 간 100일 휴가를 나온 나에게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해 주셨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친구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이 뛰쳐나가기 바빠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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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21 - 가자미식해를 아십니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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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프로그램 중 유난히 음식프로그램이나 맛 기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물론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싶은 본능에 가까운 식욕 때문이긴 하지만 식객을 보면서 자꾸만 가슴 깊이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먹어치우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사랑과 추억이 담긴 따뜻한 매개체라는 것이라는 것을!

 

특히 102- 호떡은 거창하고 대단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줄 곳 물리지 않게 먹어도 먹어도 즐거운 간식인지라 무엇보다도 관심이 지대했었는데 어뚱하게도 여러 가지 색다른 호떡을 소개하기는커녕 호떡믹스로 만드는 방법과 이스트로 발효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 부분이 소개되어 신선함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서울역을 근거지로 하는 노숙자들의 생생하다 못해 다소 거칠고 낙오된 삶을 뉴스나 신문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렸다는 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 역시 일요일 새벽에 급한 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횡당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한 무리의 할아버지와 몇 몇 할머니들을 보고서 기사에게 저 분들은 이 새벽에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역시 우리나라의 택시기사는 정치부터 동네소문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며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인데 워낙 급하게 앞만 보고 신호를 무시하고 다니는 통에 자신들도 사고를 낼 뻔해서 오히려 피하고 싶은 심정이라 했다. 내가 본 노숙인의 무리

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걷느라 무리에서 뒤쳐져서 헐레벌떡 급하게 걷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분들이 일명 ‘짤짤이’를 하려고 그렇게 새벽부터 급하게 길을 다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는 것이 힘이 들어도 큰 실패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스스로 일할 의욕이 다 바닥이 난 것이 무엇보다 괴롭다는 그들이 강북의 덕수교회 근처와 강남의 잠실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매연을 맡으며 걸어서 다니기엔 상상만해도 벅찬 일인데 그 몇 백 원을 받기 위해 그토록 빠른 걸음으로 가랑이가 아파올 정도로 걷는 다는 것이 이 추운 겨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브리지센터에서 철식판에 받은 고봉밥을 먹는 장면도 그리고 저 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밖에서 하루하루를 어찌 살아가야할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을 작은 희망을 붙잡고 살려하는 모습까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만화가 웃음을 주어야하는데 식객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대신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스쳐지나가는 이웃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때 마지막 먹었던 그 호떡에 대한 기억 때문에 서울역을 못 떠나고 호떡장사가 된 꼬맹이를 보고 있으면 한 인간에게 어머니란 존재의 크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가슴 찡하게 만드는 식객, 너무하는 것 아닌가!

 

105- 아! 서해안 은 역시 노인들만 남은 태안 앞바다에 매일처럼 반복되는 기름제거 작업 속에 터지는 주민들의 울분과 한 숨이 압권이었다. '바다에 기름을 푼 놈은 다 어딜가고 왜 우리가 여기서 매일 이 짓을 해야하는겨!'라는 대사는 삶의 터전을 망친 삼성중공업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우리 현실은 늘 힘 센 가해자가 약한 피해자에게 너무나 뻔뻔스럽고 태연스럽게 배짱을 부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정말 대대적인 종교단체와 정치인들의 자원봉사가 오히려 피고름이 찬 곪을 상처에 '빨간약' 한 번 슬쩍 발라주고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는 기만행위같아 만화로 이런 숨겨진 면을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태안주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내 눈에 들어 온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은 머리부터 온 몸을 새까만 끈적인는 기름으로 덮어 쓴 새 한 마리가 간신히 눈만 뜨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가여운 그 그림이었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접하는 세상이 언제 오려나! 얼마짜리 새인가를 묻지 않고 짧은 생을 작은 물고기나 잡아 먹으며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언제나 줄 수 있으려나! 

 

식객21은 가볍고 읽으면 곧 잊을 감각적인 찰나적인 소재를 버리고 보면서 가슴으로 '우리 제대로 살고 있는 것 맞는가!' 라는 의심에 잠기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21권은 감동의 식객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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