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1 - 가자미식해를 아십니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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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프로그램 중 유난히 음식프로그램이나 맛 기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물론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싶은 본능에 가까운 식욕 때문이긴 하지만 식객을 보면서 자꾸만 가슴 깊이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먹어치우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사랑과 추억이 담긴 따뜻한 매개체라는 것이라는 것을!

 

특히 102- 호떡은 거창하고 대단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줄 곳 물리지 않게 먹어도 먹어도 즐거운 간식인지라 무엇보다도 관심이 지대했었는데 어뚱하게도 여러 가지 색다른 호떡을 소개하기는커녕 호떡믹스로 만드는 방법과 이스트로 발효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 부분이 소개되어 신선함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서울역을 근거지로 하는 노숙자들의 생생하다 못해 다소 거칠고 낙오된 삶을 뉴스나 신문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렸다는 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 역시 일요일 새벽에 급한 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횡당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한 무리의 할아버지와 몇 몇 할머니들을 보고서 기사에게 저 분들은 이 새벽에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역시 우리나라의 택시기사는 정치부터 동네소문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며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인데 워낙 급하게 앞만 보고 신호를 무시하고 다니는 통에 자신들도 사고를 낼 뻔해서 오히려 피하고 싶은 심정이라 했다. 내가 본 노숙인의 무리

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걷느라 무리에서 뒤쳐져서 헐레벌떡 급하게 걷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분들이 일명 ‘짤짤이’를 하려고 그렇게 새벽부터 급하게 길을 다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는 것이 힘이 들어도 큰 실패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스스로 일할 의욕이 다 바닥이 난 것이 무엇보다 괴롭다는 그들이 강북의 덕수교회 근처와 강남의 잠실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매연을 맡으며 걸어서 다니기엔 상상만해도 벅찬 일인데 그 몇 백 원을 받기 위해 그토록 빠른 걸음으로 가랑이가 아파올 정도로 걷는 다는 것이 이 추운 겨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브리지센터에서 철식판에 받은 고봉밥을 먹는 장면도 그리고 저 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밖에서 하루하루를 어찌 살아가야할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을 작은 희망을 붙잡고 살려하는 모습까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만화가 웃음을 주어야하는데 식객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대신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스쳐지나가는 이웃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때 마지막 먹었던 그 호떡에 대한 기억 때문에 서울역을 못 떠나고 호떡장사가 된 꼬맹이를 보고 있으면 한 인간에게 어머니란 존재의 크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가슴 찡하게 만드는 식객, 너무하는 것 아닌가!

 

105- 아! 서해안 은 역시 노인들만 남은 태안 앞바다에 매일처럼 반복되는 기름제거 작업 속에 터지는 주민들의 울분과 한 숨이 압권이었다. '바다에 기름을 푼 놈은 다 어딜가고 왜 우리가 여기서 매일 이 짓을 해야하는겨!'라는 대사는 삶의 터전을 망친 삼성중공업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우리 현실은 늘 힘 센 가해자가 약한 피해자에게 너무나 뻔뻔스럽고 태연스럽게 배짱을 부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정말 대대적인 종교단체와 정치인들의 자원봉사가 오히려 피고름이 찬 곪을 상처에 '빨간약' 한 번 슬쩍 발라주고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는 기만행위같아 만화로 이런 숨겨진 면을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태안주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내 눈에 들어 온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은 머리부터 온 몸을 새까만 끈적인는 기름으로 덮어 쓴 새 한 마리가 간신히 눈만 뜨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가여운 그 그림이었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접하는 세상이 언제 오려나! 얼마짜리 새인가를 묻지 않고 짧은 생을 작은 물고기나 잡아 먹으며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언제나 줄 수 있으려나! 

 

식객21은 가볍고 읽으면 곧 잊을 감각적인 찰나적인 소재를 버리고 보면서 가슴으로 '우리 제대로 살고 있는 것 맞는가!' 라는 의심에 잠기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21권은 감동의 식객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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