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1 - 도시의 수도승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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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떨어지는 소(牛)머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림으로 그려도 그렇지! 소의 감은 큰 눈이 정육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한 부분으로 느껴져서 설렁탕 생각이 사라졌다. 영화 식객을 보고 난 후 정작 기억에 생생한 것은 그 맛있는 음식 장면이 아니라 도살장으로 순순히 고독한 마지막 걸음을 옮기던 소(牛)의 슬픈 눈이 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오는 눈물을 해결하느라 무척 곤혹스러웠던 기억과 함께 소를 잡아먹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던 기회였다.



영화 이후 한 동안 베지테리언이란 놀림을 감수하면서도 소고기를 멀리하다가 잊을 만하니 그림으로 다시 보게 되니 놀랄 수밖에!

51화- 24시간의 승부 

에서 나 역시 벽에 누린내가 배어 한 겨울에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냄새가 역하게 나는 그런 설렁탕집을 더 좋아한다.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인에게서 장인정신 같은 그런 믿음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업그레이드 된 설렁탕집과 60년 역사의 구식 설렁탕집을 비교한 이야기는 그래서 훨씬 공감이 컸다. 인테리어를 보고 찾는 집이 아니라 음식맛과 정성을 찾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 그리고 설렁탕 만들기가 정형화 된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축적된 감각과 노하우이기에 스파게티 만들기처럼 6개월 단기완성 종목이 아니란 점도 잘 지적했다.


53화- 도시의 수도승!

제목이 왜 도시의 수도승일까?누구나 음식은 살기 위해 먹는 다기 보다는 즐기기 위해, 좋은 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며 쉬어가는 기분으로 특별히 입에 맞는 맛 집을 찾아다닌다. 나 역시 그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통 사람인데 세상에는 산사의 수도승이나 모델 등 외에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이루어야할 꿈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11편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BODY BUILDER, 그리고 집안의 대들보인 BOXER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졌지만 원래 기획은 둘을 한 형제로 내 보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도시의 수도승의 주인공인 BODY BUILDER 김준호씨를 보니 첫 눈에 근육질의 몸매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신감있는 건강한 웃는 얼굴이었다. 소금기 없는 닭가슴살과 야채로 이루어진 식단을 보면 그의 절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애주가와 애연가라면 술, 담배도 단 번에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아보였다. 대회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외식을 할 때도 먹을 수 없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그 분야에서 우승 트로피를 얻기가 그렇게 끔찍하게 어려운 것인 줄 처음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내세울 근육이라곤 생각도 안 나는 나로서는 ,특히 감자칩의 짠 맛을 즐기는 나에게는 도무지 시도조차 불가능한 것 같다.




54화- 가족에서 BOXER로 나오는 장혁을 보면 그가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는지 아닌 지 보다는 마지막 장면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는 아들을 산동네 골목까지 마중나가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시선이 꽂혀버렸다. 아들이 이겼는지 졌는지 승패에 관심 없이 오직 시합을 준비하느라 체중을 줄이는 통에 못 먹은 아들에게 상처난 입 안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맛 난 음식을 먹이겠다는 그 질기고 애틋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 


‘음식은 사랑이다’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군 입대 후 처음으로 9박 10일 간 100일 휴가를 나온 나에게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해 주셨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친구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이 뛰쳐나가기 바빠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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