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 사월의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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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문학이란 생소한 용어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란 의문부터 들었다.세상에는 정말 사고의 영역이 넓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질 움직임이 보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자연계와 인문계를 나누어 대학입학 전형 때에도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만든 교육제도 안에 갖혀 산 덕분(?)인지 내 안에는 당연스레 자연과학vs인문사회로 구분하는 것이 고착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 프랑스의 과학자는 자연과학과 인문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묶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 신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편견을 말끔히 지운 후 처음 태어난 아이처럼 오직 이 이론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 첫 번째 도전이 과학기술의 자율성을 다시 생각하기였다. 당연히 과학기술이란 어느 일정한 실험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는 누가 어느 나라에서 실험을 하든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립적이며 동시에 정치와 사회, 문화적 구속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아! 그럼에도 한 가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건은 바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교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고 다시는 그런 신의 창조설과 반대되는 개념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억지맹세까지 받고서야 풀어 준 사건...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자연과학이 결코 정치와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준 사건이다. 허나 왜 다들 그 사건을 종교의 탄압으로만 말할 뿐 과학과 정치의 관련성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

 

또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브뤼노 라투르가 상당한 다독가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분야에만 박식할 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금치 못할 정도로 무식(?)한데 반해 브뤼노 라투르는 역사와 인물들,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경제,정치적 현실에 까지 훤히 꿰 뚫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와 화가로 널리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당시 통치자에게 자발적으로 전쟁무기를 개발해 바친 일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을 수 있는 획기적이고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만들어 바쳤다라는 사실은 그들의 명성에 가려 진실을 왜곡한 것이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다빈치의 경우엔 더 심해서 실제 전쟁에 사용되어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고 그 대가로 왕에게 작위와 토지를 하사 받아 신분상승과 경제적 부를 동시에 이루게 된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그렇게 과학자들이 현실에서 대가를 받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과학을 이용한 것을 어이없게도 성스런 이미지로 포장을 하다니...

 

 

과학과 사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역사가 진행될수록 더욱 밀접해진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수록 인간의 행위, 기술의 사용, 과학을 통한 경유, 정치의 침입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물질화는 사회화요, 사회화는 물질화다라고 자신의 주장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이 주장에 대해 나 역시 생각해 보는 것은 현재 정부나 사회기관들이 계획하는 사업 가운데 과학기술과 관계가 없이 오지 행정적으로만 구상이 되는 일이 있을까라는 것이다. 실로 감탄할 만한 주장이다. 의료제도는 물론, 농업정책 역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그의 식견이 대단히 정확하다. 또 하나의 주장은  과학에 대한 우리의 가장 큰 오해는 과학을 단지 '인식의 문제'로만 보는 데 있다이다. 그 이유는 과학이 가진 야누스의 얼굴 때문인데, 과학은 공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진리'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실험실 속에서 의도치 않은 시험과 실험을 거치면서 끝없는 경합과 협상의 과정을 통과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존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학의 탄생과 변형을 '인간'과 '물질'이라는 행위자들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인문학의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라는 명확한 개념설명을 했다.

 

총 다섯 편의 편지형식을 되어 있는 그의 가설과 주장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 동안 나는 왜 과학의 속성들을 당연시 여겼던가이다. 한 번 정도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었고 교수님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을 수도 있었는데 왜 이처럼 가르쳐 주는 대로 받아 적고 외우고 도입하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교욱현실이란 것이 도무지 가르치는 자에게 자신의 색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발설하는 것이 도전이며 반항이며 무례라고 여겨지는 통에 고분고분 교수님 말씀이 다 옳아요, 맞아요 라고만 순응하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뇌가 생각을 못한 채 굳어져 버린 것 같다. 만약 프랑스의 교육처럼 교수와 학생이 동등한 입장에서 학생이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자유롭게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수업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라고 인정을 받는다면 당연시 여김을 받는 많은 학설들이 새롭게 그 진면목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한국 땅에서는 자연과학을 계속하려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방을 메고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을 할 수 있는 풍토가 부럽기만 하고 젊지 않은 이 과학자의 신개념을 어렵지만 진지하게 읽는 동안 내 뇌가 진동을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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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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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출판사에서 나온 함석헌 평전,김대중 자서전, 노자이야기를 다 읽은 것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 노자이야기는하드커버에 두 권의 책이 세트로 되어 있어서 머리에 베고 자도 딱 높이가 좋을 정도였는데 노자란 인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 사람들이 왜 노자를 사상가로서 인정하는가 등도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내가 노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며 말하는 것을 깨닫고는 그만 입이 벌어졌다. 철학이란 그렇게 근본적이며 국경을 넘어 문화와 사회를 지속시키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실 실존인물이면서도 신화가 된 인물에 가깝다. 그래서 그와 제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철학의 핵심이면서도 정작 그의 철학사상에 대해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에피소드처럼 전해 내려오는 독배를 마시며 "악법도 법이다!" 만 시중에 떠 돌아다니며 그의 아내가 무척이나 개념이 없는 악처였다는 소문이며 그가 어떠한 철학사상을 선포하며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는지는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최후와 더불어 그가 생전에 대화법을 통해 제자들에게 어떠한 질문들을 던졌으며 윤리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 등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무지를 깨달았다.

 

또한, 앞 선 의식을 가진 연구하는 철학자를 정권에 대한 위험인물로 낙인 찍어 감옥에 가두어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아버리고 결국엔 칠순을 바라보는 약한 노인을 끝내 죽여야만 안심을 했던 당시 그리스의 저급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권력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로서는 남의 나라 일이니 그 정도지만  플라톤은 스승을 사법살인한 그들에 대한 분노가 평생토록 남았고 그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려야 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이런 사상가들과 신화 때문에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정치적, 사회적 수준이 당연히 높은 국가라고만 생각해왔는데 플라톤의 눈으로 바라 본 그리스의 권력자들은 참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며 오직 현재의 안일함을 추구해서 결코 시민의 의식이 깨이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생길까 불안했던 것이다. 몇 몇 소수의 권력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영원토록 시민을 지배하며 특권층으로 살기만을 추구하는 동안 권력이나 경제력과는 전혀 무관한 이상가를 죽였던 것이다. 그 점에 심한 아픔을 느낀다. 내가 태어나 사는 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인물,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거나 올곧은 인품을 지닌 분들은 근현대사를 통해 도무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로마제국이란 어마어마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나사렛 촌놈으로 살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한 청년을 나무 십자가에 달아 사형을 집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하는 이 책-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해 찌질하다 못해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노철학자도 목수출신의 청년까지도 없애버려야만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이 세상의 집권자들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함께 그가 평소에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가르침 등만 실었다면 생각보다는 이해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나 플라톤은 당시의 그리스의 부패한 권력집단의 탐욕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을 했기 때문에 당시가 아닌, 현재의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에 대입해 보게 만드는 것이다. 책의 저자는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모든 것을 기록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고 따르던 스승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죽음이 역사에 묻혀버리는 것이 가슴 아파서 이토록 자세히 기록했던 것인데 후대의 사람들에게 역사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것일까!

 

철학이 그래서 무섭다.

몰랐을 때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을 때에는 많은 이들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죽인 살인자와도 밥을 먹고 머리를 조아릴 수가 있지만 일단 생각이 깨이기 시작하면 도저히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 있는 한 도덕성이 결여 된 힘만 센 권력자 앞에 목이 날아간다 해도 뻣뻣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랬다. 그가 사형을 당하기 전 주변에서는 수 없는 회유와 타협을 권유했다. 외국으로 추방을 당하는 선에서 목숨만은 부지하자는 그의 추종자들의 말을 모두 거절했다.유죄를 인정하는 타협을 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각이 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사형선고를 앞 두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자 국가에 대해 누릴 것을 다 누렸으면서 이제 와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을 어기고 사회를 뒤엎는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는 장면은 참 어렵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이런 경우에도 해당이 되는가를 묻고 싶다! 죽음을 택하는 결단의 근거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고뇌와 갈등을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치인들의 몫이라고만, 그리고 예수와 같은 성인만이 고민할 몫이라고만 여겼는데 소크라테스의 최후변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이돈과 향연은 그 보다는 덜 심각하고 가벼우면서 안정적인 분위기라 읽는데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악한 국가권력 앞에서 깨어 있는 선각자가 순순히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미해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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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펀펀 투데이 (교재 + MP3 CD 1장) - SBS 라디오 DJ 김영철의 펀펀한 영어 회화 시트콤
김영철.조혜정.제니퍼 옥 지음 / 두앤비컨텐츠(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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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중에 SBS의 김영철의 유머를 자주 듣곤 한다. 자연히 그가 하는 경상도 억양의 서툰 영어가 귀에 잘도 들리고 사투리면 어떠랴 말만 통하면 됐지, 게다가 재미까지 있으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그래서 개그맨 중에서도 유독 영어에 목숨을 건 김영철의 책이라 쉬울 줄 알고 만만히 여기며 집어 들었다. 그런데 낯 선 단어들도 몇 개씩 눈에 띄고 공인영어점수가 상위권인 내가 모르는 생활영어들이 많았다.

 

일단, 읽기용 영어와 회화용 영어 단어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문장을 고지식하게 해석하면 실용문이 의도하는 바와 전혀 다른 뜻이 되어 버리는 것에 어리둥절해졌다. 감각을 키우기 위해 라디오를 좀 더 자주 들었다. 그리고 잠들 기 전에 CD를 틀어 놓고 잤다.처음엔 반복적인 표현만 외울 수 있었는데 주말에 책을 보니 그 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듣는다는 것! 그래서 읽는 것보다 먼저 자주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회화의 중요성에 대해 날로 심각하게 느껴가면서 실제 영미권이 아닌,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을 상대할 때에도 간단한 영어, 그 중에서도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유용한 표현은 핸드폰에 저장을 해 두고 혼자 있을 때에 나 차를 타고 갈 때 입으로 연습을 했다. 김영철의 펀펀 투데이를 통해 익힌 표현들도 핸드폰에 저장을 해서 입을 열어 연습을 하는 편이다. 설정된 상황에 따라 자주 쓰이고 연달아 나오는 표현들이 많아서 실제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말해 보았더니 나더러 영어를 잘 한다며 다른 직원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는 것을 느꼈다.

 

특히 김영철의 펀펀에서 연습한 것은 농담이었는데 시커먼 가봉에서 온 바이어를 웃게 만들었더니 대표님이 나를 다르게 쳐다 보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영어는 확실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발음이 네이티브처럼 정확하고 멋지지 않아도 어순에 맞고 표현하고자 노력할 때 그 의미와 말하는 이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전달이 된다. 영어가 좋은 이유는 반드시 딱 한 개의 정확한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못해도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쉬운 여러 가지 단어를 사용해서 의미를 전달하는데 참 좋다는 점이다. 하지만 2013년을 사는 지금 자주 사용하는 유머는 내가 그 나라에서 날아온지 얼마 안 되었다면 모를까 모조리 생으로 외워야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노력들, 타지에 계약을 맺기 위해 날아 온 비즈니스맨들을 상대할 때 잠시 그들에게 그들이 익숙한 농담을 던져주면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계약서에 싸인만 하도록 몰아댈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잠시 쉬어갈 갈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참 세련되게 보였던 것 같다.

 

펀펀 투데이가 좋은 이유가 상대가 영미권에서 온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통용된다는데에 있다. 그만큼 대중화되고 쉬우면서 두루 사용하기에 무난한 표현들을 많이 수록했다. CD의 경우에도 내용이 결코 헐렁하지 않다. 책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귀로만 들을 때에 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서 연습을 시켜준다는 점도 장점이고 발음을 또박또박 천천히 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반복해서 듣다보면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그 점은 회화를 하는 사람에게는 넘어서야 할 장애이니 크게 겁내지 않아도 좋다.

 

상황별 에피소드라는 형식이 스토리가 있어서 하나의 표현을 완벽하게 외우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상대방이 쓰는 영어 가운데 내가 들었던 표현들이 종종 튀어 나오는 것을 듣고서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지각을 했을 때 둘러댈 수 있는 표현이 요긴하고 전화를 연결 받았을 때 저 쪽에서 영어로 hellow로 시작하며 이야기를 할 때에 잠시 당황은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들을 수 있도록 훈련이 된다는 점이 크게 만족스럽다. 책이 아무리 좋아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지겠으나 4단계의 구성의 과정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연습을 하게 된다는 점이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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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함께한 수학 일기
알렉산더 즈본킨 지음, 박병하 옮김 / 양철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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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무렵 어설프게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이후 난 아파트 벽에 써 있는 56동 ,38동 등의 숫자를 읽는 아이가 되었고 그것을 신기하게 여긴 동네 어른들이 저것은 몇 동이냐고 손가락으로 물으면 정확하게 읽어서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에서 '수학신동'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것이 당시에 103동 127동 등 숫자 100이 넘어가는 것을 돌을 갓 지난 아기가 읽는 것을 처음 본 어른들의 놀라움 덕분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아기보다 더 뛰어난(?)아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된 부분이 바로 논리적 사고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선행학습이 목표가 아니라 실제 자신의 아이들에게 수학이란 학문으로 이끌어 주면서 일어났던 일,갈등이 있는 그대로 다 나와 있기에 관심이 생겼고 읽는 재미가 컸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는 듯 너무나 그 정신과 실생활에서의 수학적 감각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작은 슈퍼마켓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장을 보실 때에도 카운터에 도착하면 계산원이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내게 "이게 총 얼마지?" 하고 물으시면 나는 조금 전 어머니와 돌아다니면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으면서 본 가격을 재빨리 더하기나 곱셈을 해서 계산원보다 빨리 대답을 했다. 그러면 거의 동시에 계산을 마친 계산원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고 나는 별 것 아닌데 사람들이 알아주니 우쭐거리는 기분에 하루가 즐거웠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나에게 실생활 속에서 수학, 덧셈이나 뺄셈, 곱셈 등을 이용해서 계산하는 즐거움과 효율성을 직접 느끼게 하셨다. 그리고 가족들과 동그란 케이크를 나누어 먹을 때에도 제일 어린 나에게 칼을 쥐어 주며 가족이 2개 씩 먹을 수 있게 나눠 볼 수 있냐며 기회를 주셨고 자전거 바퀴가 서로 크기가 다른데 왜 똑같이 굴러갈까라는 정말 생각해도 또 생각하게 되는 문제도 내 주셨다.   

 

 

반복적인 어머니와의 이 생활 속 경험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산수책을 받았을 때에도 어렵거나 낯 선 느낌대신 얼른 도전해 보고 싶고 풀어보고 싶도록 나를 능동적인 아이로 만들었다.왜냐하면 나는 훨씬 어렸을 때부터 늘 어머니께 질문을 받아왔고 어머니는 내가 틀린 답을 내 놓아도 야단을 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언제나 힌트를 주시며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셨기에 나는 산수라는 것은 틀려도 별로 창피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것처럼 자꾸 생각해 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문제를 내는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있으니 언제나 퀴즈를 풀듯 게임을 하듯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즐거운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지루한 사칙연산이 빼곡히 찬 학습지형태의 문제집을 들이밀었다면 어땠을까? 빈칸을 채우는 문제에서부터 한 줄짜리 연산의 정답을 기입해야 하는 그런 문제들을 보여주었다면 아마 수학적 재능을 가진 아이라 할지라도 그 지루함과 '내가 왜 이런 재미없는 문제를 풀어야하지?" 라는 가슴 속 항변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서 수학이 알려주는 개념과 이론, 공식을 도입하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생활을 재미있으면서 유용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 편리함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마치 컴퓨터를 이용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 스스로가 컴퓨터에 손이 가듯이 말이다. 편리하고 재미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의 재미,

이 책은 그 수학의 재미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가장 어려워 하는 기하학을 도입하면서도 꼭 빨리 정답을 맞추라는 식의 흐름이 아니라 두 건물 사이에 놓인 다리 위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은 몇 가지가 되는가 식의 문제가 나온다. 길은 딱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곡선으로 갈 수도 있고 직선으로 갈 수도 있고 최단거리로 갈 수도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학교에서점수에 따라 서열을 가리기 위해 단 하나의 답만이 나오는 문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다 풀도록 채근질하는 것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경쟁해야만 하는 과목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뇌가 발달해 가는 과목이 바로 수학이다. 그래서 수학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고 기계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성장하면서 크 격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수학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이다. 그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음악이나 체육 등 당장 학습효과가 멋진 연주실력이나 기량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과목들을 가르치기 보다 쏟아 부은 시간에 비해 눈에 보이는 효과가 미미한 수학이란 기이한 과목을 가르친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수학은 생각하는 힘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개 그것도 겹쳐서 일어난다. 그 때마다 누군가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누군가 더 똑똑한 사람에게 기대어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자신 앞에 닥친 일을 자신이 바로 해결해야 하기에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할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길고 복잡해서 중간이 포기하기가 쉽다. 그것이 우리가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매우 닮았다. 가정이나 이론들을 겹쳐서 낸 문제들 앞에 그 복잡한 사슬을 하나 둘 씩 헤치고 마침내 답을 찾아내는 그 인내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이 수학이나 인생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부모가 세상에 없어도 자식에게 스스로 사고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며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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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그물을 올려라 - 어부 일과 사람 5
백남호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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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만화 식객의 매력에 푹 빠져서 처음 한 두권 사서 읽던 것이 어느새 이십 여 권이 훌쩍 넘어버렸다. 가장 큰 특징은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할뿐더러 시시하다고 여겼던 일상의 먹거리들을 아주 섬세하고도 귀하게 다루는 태도에 있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간추려서 독자에게 알려주는 성실함에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전혀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을 것 같았던 '평범한 일상'의 비범함을 일깨워 준 것에 있었다. 그래서 직업에 대해 알려주는 시리즈인 ‘영차 영차 그물을 올려라!’를 보니 첫 장부터 식객이 떠오른 것이었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털모자로 무장한 채 새벽 시커먼 바다로 출항하는 모습에서는 바다란 어떤 곳일까란 기대감과 호기심보다도 정말 두렵고도 거대한 자연의 힘이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안전하고 흔들림 없이 반듯반듯하게 구역이 나뉘어진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 온 아이와 나는 바다란 낯설고 어려운 곳이었다.


특히 바다의 이미지가 여름철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콘도미니엄과 알록달록하고 비치파라솔, 화려한 수영복을 입은 인파로 북적이는 휴가지로 고착화된 아이에게는 더더욱 바다라는 곳에 대한 소개가 첫 장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를 느끼게 하였다.



바다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잘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그림이었다. 배로 사십 분을 더 가서 어제 쳐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릴 때 도루묵이 얼마나 걸렸을까 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은 그림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실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단순히 도루묵을 많이 잡고 적게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물에 걸린 도루묵을 배 위로 끌어당길 때의 어부들의 그 가장으로서의 묵직한 책임감과 거칠고 사나운 바람과 파도와의 한판승을 의지적으로 인내하고 있는 모습은 바다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기때문이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바다는 언제나 휴양지-노는 곳이었는데 이 책 영차영차 그물을 올려라를 보면서 바다가 이렇게 다른 곳이었다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바닷가에 며칠 머물면서 입에는 여전히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빨고 다니고 근처로 이동하려고 해도 여전히 자동차에 의존해서 다니는 아이에게 속이 안 보이는 시커먼 바다 위에 작은 배를 타고 그 몇 배나 되는 무거운 그물을 어부아저씨들 몇 명이 달라붙어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짜 바다의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망망대해에서 본 육지와 마을의 새벽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불빛이 점점이 모여져 있어 더 멀고도 작게 보이던 그 육지의 모습은 정말 낮에 본 세상과는 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웅장하고 거친 바다에서 부는 된바람에 비하면 육지는 참 오밀조밀하고 살랑살랑 부는 간들바람같이 느껴졌다.



바닷가의 아침풍경 또한 이채로웠다. 서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어부들에게서 교양이나 예의대신 살 냄새가 났고 일찍부터 서둘러 도루묵을 사러 나온 아주머니들의 수다소리 높은 경매장 풍경은 화기애애함을 넘어 활기참과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일을 마치고 부두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아가며 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는 찌개와 도루묵구이의 맛이 어떨까도 궁금했는데 그림으로만 보아도 끝내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선을 벌여 놓은 좌판을 구경하면서 우리의 바다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니 놀랍기만 했다. 바다의 오염문제에 대해 아무리 귀로 많이 들었어도 관심 밖이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많은 물고기들을, 단순히 식용생선으로서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서의 다양한 어종들의 물고기들을 보니 바다가 물고기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소중해졌다.



바다에서 도루묵을 잡는 어부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모습을 통해 어촌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다라는 공간을 자주 접해보지 못한 채 그저 여름에 해수욕이나 며칠 다녀오면서 색색의 튜브와 수영복을 입은 도시사람들만 실컷 구경하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진짜 바다는 우리가 미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할 만큼 수 많은 바다생물들이 사는 터전이고 또한 거기서 나고 자라서 바다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사람들이 주인으로서 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진호에서 바다를 향해 그물을 던지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크고 무겁고 막대한 그물을 매일 던지는 어부들이 바다에 갖고 있는 꿈과 희망, 그리고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한대로 거두워지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날은 아무리 노력해도 빈 그물을 거둘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계절에 따라 어떤 날엔 날이 흐려서 바다에 나가지 못한 날이 나간 날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매일매일이 얼마나 긴장되고 불안하고 힘이 들었을까! 그래서 이런 변덕스러운 바다의 성질을 보면서 삶은 단순히 예쁘고 위용있게 장한 것이 아니라 못나고 위험하며 무섭기까지 한 것이 진짜 삶이라는 진리를 배웠다.

처음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에 대해서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배우는 것 정도를 기대했었는데 정작 책을 덮을 때에는 바다, 그리고 어부의 생활을 통해서 진짜 바다를 보았고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헤쳐나가야할 인생의 망망대해까지 조금 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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