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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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출판사에서 나온 함석헌 평전,김대중 자서전, 노자이야기를 다 읽은 것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 노자이야기는하드커버에 두 권의 책이 세트로 되어 있어서 머리에 베고 자도 딱 높이가 좋을 정도였는데 노자란 인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 사람들이 왜 노자를 사상가로서 인정하는가 등도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내가 노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며 말하는 것을 깨닫고는 그만 입이 벌어졌다. 철학이란 그렇게 근본적이며 국경을 넘어 문화와 사회를 지속시키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실 실존인물이면서도 신화가 된 인물에 가깝다. 그래서 그와 제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철학의 핵심이면서도 정작 그의 철학사상에 대해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에피소드처럼 전해 내려오는 독배를 마시며 "악법도 법이다!" 만 시중에 떠 돌아다니며 그의 아내가 무척이나 개념이 없는 악처였다는 소문이며 그가 어떠한 철학사상을 선포하며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는지는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최후와 더불어 그가 생전에 대화법을 통해 제자들에게 어떠한 질문들을 던졌으며 윤리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 등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무지를 깨달았다.

 

또한, 앞 선 의식을 가진 연구하는 철학자를 정권에 대한 위험인물로 낙인 찍어 감옥에 가두어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아버리고 결국엔 칠순을 바라보는 약한 노인을 끝내 죽여야만 안심을 했던 당시 그리스의 저급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권력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로서는 남의 나라 일이니 그 정도지만  플라톤은 스승을 사법살인한 그들에 대한 분노가 평생토록 남았고 그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려야 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이런 사상가들과 신화 때문에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정치적, 사회적 수준이 당연히 높은 국가라고만 생각해왔는데 플라톤의 눈으로 바라 본 그리스의 권력자들은 참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며 오직 현재의 안일함을 추구해서 결코 시민의 의식이 깨이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생길까 불안했던 것이다. 몇 몇 소수의 권력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영원토록 시민을 지배하며 특권층으로 살기만을 추구하는 동안 권력이나 경제력과는 전혀 무관한 이상가를 죽였던 것이다. 그 점에 심한 아픔을 느낀다. 내가 태어나 사는 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인물,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거나 올곧은 인품을 지닌 분들은 근현대사를 통해 도무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로마제국이란 어마어마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나사렛 촌놈으로 살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한 청년을 나무 십자가에 달아 사형을 집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하는 이 책-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해 찌질하다 못해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노철학자도 목수출신의 청년까지도 없애버려야만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이 세상의 집권자들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함께 그가 평소에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가르침 등만 실었다면 생각보다는 이해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나 플라톤은 당시의 그리스의 부패한 권력집단의 탐욕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을 했기 때문에 당시가 아닌, 현재의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에 대입해 보게 만드는 것이다. 책의 저자는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모든 것을 기록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고 따르던 스승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죽음이 역사에 묻혀버리는 것이 가슴 아파서 이토록 자세히 기록했던 것인데 후대의 사람들에게 역사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것일까!

 

철학이 그래서 무섭다.

몰랐을 때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을 때에는 많은 이들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죽인 살인자와도 밥을 먹고 머리를 조아릴 수가 있지만 일단 생각이 깨이기 시작하면 도저히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 있는 한 도덕성이 결여 된 힘만 센 권력자 앞에 목이 날아간다 해도 뻣뻣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랬다. 그가 사형을 당하기 전 주변에서는 수 없는 회유와 타협을 권유했다. 외국으로 추방을 당하는 선에서 목숨만은 부지하자는 그의 추종자들의 말을 모두 거절했다.유죄를 인정하는 타협을 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각이 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사형선고를 앞 두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자 국가에 대해 누릴 것을 다 누렸으면서 이제 와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을 어기고 사회를 뒤엎는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는 장면은 참 어렵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이런 경우에도 해당이 되는가를 묻고 싶다! 죽음을 택하는 결단의 근거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고뇌와 갈등을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치인들의 몫이라고만, 그리고 예수와 같은 성인만이 고민할 몫이라고만 여겼는데 소크라테스의 최후변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이돈과 향연은 그 보다는 덜 심각하고 가벼우면서 안정적인 분위기라 읽는데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악한 국가권력 앞에서 깨어 있는 선각자가 순순히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미해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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