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기소하다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 홍민경.최지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 현대사에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징역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 그당시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5.18특별법)까지 제정했는데, 위헌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범죄혐의사실에 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였다. 헌법재판소는 9인중 5인이 한정위헌의견을 냈지만 6인을 넘지 못해 합헌 결정을 내렸고, 개인들의 신뢰이익과 법률상이익(공소시효)보다 올바른 헌정질서 정립이라는 공익이 더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여기 세계대통령이라 불리는 미 대통령을 기소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도발적인 책 한권이 나왔다. 저자가 분통해 하는 것은 9.11테러의 발생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 9.11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인 빈라덴에 대한 체포를 방관하거나 포기한 점, 그리고 부시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자국병사 4천명, 이라크 국민과 병사 포함 10만명의 인명이 사망하고, 천문학적인 돈이 사용된 점. 더욱이 이런 사태에도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직무를 해태하고 자신의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고민하는 흔적 하나 없다는 점이다.

< 우리 법규와 비교 적용한다면 >

핵심은 부시에게 이라크에서 사망한 자국병사 4천명(속인주의)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인데, 문제는 직접 살인 행위를 하지 않았는 점과 이라크 침공에 대한 의회승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 블리오시 검사는 대위책임법과 방조이론(p95)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영미법상 살인죄 성립을 위한 살인의 고의문제도 암묵적 살의를 인정하거나, 중죄모살법(p108)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 법규와 비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저자가 말하는 중죄모살법은 중죄를 저지르는 동안 살인이 일어나면 살인죄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우리 형법상으로는 결과적가중범과 같은 범죄로 기본 범죄에 대한 고의가 있으면 중한 결과에 대해 예견가능하면 범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폭행,상해,강간중 살인의 결과가 발생하면 폭행(상해,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 또한 '암묵적 살의'는 우리 형법상 '미필적 고의'처럼 살인에 대한 명확한 고의는 없더라도 살인발생의 위험을 진지하게 고려, 감수했다면 인정하는 경우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재임중 내란,외환죄가 아닌 경우외에는 형사상 소추를 받을 수는 없다(84조). 그러나 이 헌법규정은 재직중 형사상 불소추특권을 주는 것일뿐, 재직중 범죄행위를 "퇴직후에는" 소추하는 것은 가능하다. 저자 역시 상원이 유죄판결을 내려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거나 퇴임시점(2009.1.20)에서 기소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우리와 같이 재임중 형사소추는 면책되고 있다.

그렇다면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 형법 34조1항에 규정된 '간접정범'의 논리를 적용하여 실제행위자(군인)의 범죄행위에 대한 의사지배가 인정되면 정범과 같은 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우리 대법원은 공모공동정범이론으로 공모를 같이한 경우, 실행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분담실행한 행위에 공동정범의 책임을 묻고있기도 하다.

의회가 승인한 경우, 우리 형법상 피해자의 승낙(24조)처럼 위법성조각사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살인죄는 승락할 수 있는 법익에 해당하지도 않고, 피해자가 사기등 하자있는 의사에 의해 하게 된 승낙은 승낙의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다. 이라크 침공이 정당방위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리 형법 21조의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예방적 차원, 즉 장래의 침해의 위험은 정당방위의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 이 책이 주는 교훈 >

이러한 법 논리 구성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도 어느정도 짐작 하겠지만, 미국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저자인 블리오시 검사는 부시에게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으로 부시 자신이 평생 도덕적 책임을 안고 살라는 압박처럼 보인다.

지도자의 권력은 대단한 것이고,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한 것이다. 그것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사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직도 미국 대선에서 이라크 철수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고, 역사상 어떤 평가를 받을 지는 알 수 없지만, 21세기에도 이러한 전쟁이 되풀이 된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지도자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는가가 중요한 대목이다. 더불어 앞으로 미국이 제대로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로 리더쉽을 갖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미국민이 갖고 있는 승리만을 원하는 오만과 마음자세도 바꿔야 할 것이다. 진정한 힘과 존경은 남에 대한 관용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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