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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에게든 도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개개인에겐 자신만의 드라마가 있다. 일을 하면서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연애에 있어서도 말이다. 여기에 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여자들이다. 그래서 앨리스 먼로가 여성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작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여성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아픔을 같이 겪으면서
살아가는 동료애와 같이 여성을 바라보는 애잔함을 이 책을 보면서 느꼈다. 런어웨이, 라는 제목의 단편처럼 이 책 속의 여인들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사건을 겪거나, 흔들리는 사건들을 맞이해서 그것에 대처해 나간다. 그저 런어웨이, 란 말처럼 뛰쳐 나가버리고 싶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삶의 불안정성과 도피에 대한 달콤함, 그리고 두려움이 이 책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졌다.
책은 크게 8개의 단편들로 구성된다. 런어웨이, 우연, 머지않아, 침묵, 열정, 허물 , 반전, 힘이 그것이다. 런어웨이가 그나마 가장 덜
형이상학적인 제목인 것 같다. 나머지는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각각은 단편이지만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떤
단편에서 그녀는 사랑에 빠지고, 어떤 단편에서 그녀는 딸을 낳아 기르면서 딸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방황하고, 뒤이은 단편에서 그 딸의
방황에 가슴아파 하기도 한다. 한 여자에서 어머니가 될 때까지 여인의 삶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웠고 변화가 많았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일들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네 삶은 평범하지만 늘 변화한다. 그 변화의 중심엔 늘 터닝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여
올바른 일에서 시작된 좋은 계기일 수도 있고, 나중에 후회하게 만드는 자신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 책엔 그런 터닝
포인트들이 있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통째로 뒤흔들 수 있을 만한 그런 터닝포인트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고민과 절망이 남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 선택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각각의 책은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네 명의 남녀가 차를 타고 어두운 밤 도로를 달리며 절망에
빠져있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단편에서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엇이길래? 라는 궁금증에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결말을 열어두고 있는 단편들도
있다.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