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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와 제목 때문에 관심이 갔고,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이미 유명한 앨리스 먼로의 책이라 그녀의 매력을 느껴보고자 선택했던 책이었다.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주인공이 여성이 될 수도 있고, 남성이 될 수도 있지만, 그녀의 소설 속에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이라는 존재는 거의 여성이었다. 이것이 여류작가이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견이겠지. 하지만 여성의 삶은 남성의 그것보다 애잔하고,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강건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집의 대표격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이라는 내용의 소설은 한 소녀가 두 남녀 사이에서 거짓으로 연애편지를 써 주다가 실제로 이 둘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그런 잔잔한 내용이다. 다소 엉뚱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물흐르듯 두 남녀가 만나 한 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져들고, 위기를 극복하는 그런 극적이고 드라마적인 내용이 아니라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되어버렸네?.. 라는 생각이 드는 인생의 잔잔한 터닝 포인트를 잡아내는 느낌이랄까..?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런 터닝 포인트는 존재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들 때에도 각자만이 기억하는 어떤 포인트가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포인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많았다. 평범하게 살던 인물들이 어느날 옛 남자친구를 만난다거나, 엉뚱한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조우하게 된다거나, 그런 경험을 하면서 잔잔한 수면같았던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경험같은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자신의 남편을 못 알아보면서 다른 마을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허탈하게도 그 남자를 데려오자 다시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아직은 노년이 아니라 확 공감되기 보다는 병에 대한 두려움만 키워지는 느낌이었지만,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의 소재들은 참으로 평범하면서도 한번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소재의 선택이 앨리스 먼로의 작가로서의 재능이 아닌가 싶었다. 누구나 꿈꾸는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들을 통해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의 흐름을 짚어내어 주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의 방향은 평범함 속에서 작은 일탈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내 삶을 통째로 흔들 변화를 욕망하는 것 보단 너무 많은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 작은 마음의 떨림, 작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현대인의 실질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그런 욕망의 실현도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올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앨리스 먼로는 소설 속에서 해답을 제시해준다. 무엇이 되었든,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이다. 어떤 욕망이 찾아와 그 욕망에 따라 살든 살지 않든, 인생은 잔잔한 것이며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겪어내야 할 갈등과 외로움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