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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예쁜 분홍색의 책. 손에 쏙 들어오는 이 책은 보자마자 왠지 마음에 들었다. 달고 차가운, 이라는 제목까지..
달콤한 디저트같은 내용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가니 과연, 작가가 얼마나 꿀맛같이 글을 잘 쓰는지.
작가의 꿀발린 어휘력에 감탄하면서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풋풋한 20살들의 연애가 참 이쁘다.
반항적인 그들의 속내도 뭔가 아련히 이해가 간다. 나도 저랬었지..
음? 근데 점점 이야기가 나를 옥죄어온다. 반항기다운 그들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들의 결말은 참으로 쓰고 차가웠다.
달고 차가운 건 누구였을까? 소심한 재수생이었던 강지용의 첫사랑.. 늘 달고 차갑고 또 따듯하다고 느꼈던 민신혜.
이들의 사랑과 배신이 뭔가 가슴을 미어오게 만든다.
강지용은 한국사회의 중산층을 대표하는 가정의 둘째 아들이다. 첫째형은 의대에 다니고 있고.. 실패란 부끄러운 것이며 서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지 늘 전전긍긍하는 어머니를 두고 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고위급 공무원인 아버지도 늘 둘쨰가 생각만큼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벌레 쳐다보듯 한다.(그렇게 주인공은 느끼고 있다) 이런 감정은 비슷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특히 사춘기엔 그런 걸 크게 느끼다가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곤 한다. 어머니 아버지도 인간이고, 그들의 미숙한 교육 방식까지 껴안으려면 도대체 몇 살이 되어야 하는걸까.. 하지만 지용은 신혜를 만남으로써 크게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신혜는 지용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소녀이다. 같은 재수 학원생이긴 하지만, 친구의 이름을 빌려서 한달만 수강하는 중이다. 어렸을 적부터 이기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성폭력을 당하며 살아와야했고, 그런 그녀가 기댈만한 곳은 이 세상에 없었다. 아이였지만 어른들의 더러운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았고, 스스로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에게 지용의 처지는 부럽기도 하고, 그런 환경 아래에서 투덜거리고 괴로워하는 지용이 안타깝기도 한 신혜, 하지만 그를 온전히 안아주고 위로해 줄 만한 따듯하고 달고 , 또 차가운 무엇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용은 모든 것을 준다. 자신의 마음,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 까지..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는 그에게서 집착과 아집의 단면을 보았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어머니를 죽이고 싶게 증오하는 욕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신혜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러니 투성이인 그의 신념.
이 책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그의 이기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후기에서 이 책에 대한 평을 하신 분이 <죄와 벌>의 주인공과 이 책의 주인공을 비교했다. 죄와 벌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 부분이 빠졌기 때문에 이렇게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탁월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더 씁쓸했던 것은, 이 세상엔 이렇게 회개가 빠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이 배웠으면, 돈이 많으면 자신의 생각이 전부 옳은 것인 줄 알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20살에만 이렇다면 좋을텐데. 나이가 들면서 겸손해지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