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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엔 드라마같이 얽히고 섥힌 일들이 존재한다. 비밀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밝혀지기도 하고, 수백년이 지난 뒤에 전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마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비밀도 많을 것이다. 그런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수많은 탐험가들이 오지를 탐방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천산 수도원의 벽에 적혀져있는 글자들의 비밀을 타고 시작된다. 저자는 말한다. 과연 이 비밀이 밝혀지기를 바랬던 것인가, 아닌가, 우연하게 밝혀지는 진실이 필연인가 우연인가 하는 것을 말이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저자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천산 수도원의 비밀이 필연인지 우연인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저자의 필력이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슴 속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죄의식은 죄를 지은 것과 안 지은 것, 그리고 중죄인가 아닌가 여부에 관계없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의 전체 인생을 바꿀 만큼 강한 것임을 이 책의 등장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큰 죄를 지었어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 하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평생 죄의식 속에 시달리면서 살 수도 있다. 자신의 자녀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납치되어 살해됐다면, 자기가 왜 그 날따라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죄의식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격인 후는 자신이 아끼던 연희가 박중위에게 겁탈 당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라면을 먹느라 연희를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연희를 팔아넘긴 것은 후의 아버지였다. 후는 이 일로 평생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그녀를 혈육의 정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게 될 때에도 늘 연희를 범하는 것 같은 죄의식에 시달리는 것이다. 실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마음 은연중에 남아있는 죄스러운 생각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식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 때문에 잃었다 생각해서 평생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나타날 때 마다 같은 죄의식에 시달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겠는가. 결국 그 죄의식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벌하며 살아가게 된다. 죄를 씻으며 살아가면서 언젠간 자신의 죄의식을 벗을 수 있을까? 책은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없었던 것 처럼 잊고 살 수는 없지만, 마치 잊은 것 처럼 삶의 매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