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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딱히 삶에 회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활동들의 치사함과 아니꼬움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지는
게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고통과 불안과 분노와 고독, 미움과 시기와 질투, 수치를 묵묵히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런 불편한 감정들과 불안한 생각들은 숨이 끊어질 때 까지 계속 되는 걸까?
어떤 종교의 신은 인간은 모두 나름의 쓰임이 있어서 태어난다고
한다는데,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대단한 사명은커녕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움직이는 이유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살아가는 것이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므로 그냥 저냥 살아는 가는데 말이다, 사는 게 본디 그렇게 치사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은
‘행복’이라고 부르더라.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는커녕 사명 같은 거창한 것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저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 말이다. 행복.
이 행복의 형태는 개인의 경험과 취향과 성품에 따라 실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은, 그래도 가장 단순하고 공통된 형태는 돈이다. 지금의 세상은 돈으로 대다수의 것들이 해결된다. 돈만 있으면 수없이 가질 수 있고,
부릴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너무도 간편하게 이것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이 쉽게 해결 되니 그 돈 이라는 것을 누구나 원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이라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런데, 그 평범한 일상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야 돈이라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더 대단하고 간절하겠는가? 이를테면 아무리 못나고 모자란 사람에게도 가족이나 친구나 애인이 있다.
그들과의 추억이 있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 그런데 전혀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 친구, 애인과 고향은 전쟁 중 폭격으로 산산조각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니 좋은 추억이나 기억이 있을 리도 없다. 오직 홀로된 몸땡이 하나와 최소한의 삶을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올 리 없다. 그래서 그녀는 돈이 정말 간절하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래서 그녀가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누리게 해줄 돈 말이다.
힐데가르트 마이스너. 34세. 프리랜서 번역가.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외모뿐이다. 그녀는 매주 신문 광고란을 뒤지며 그녀의 행복 없는 인생을 구제해줄 돈 많은 남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의 조건에 딱 걸맞은 공고를 보게 된다. 인생의 반쪽을 찾는 억만장자의 청혼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앞에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솔직하게 편지를 쓴다. 억만장자와의 결혼으로 그녀는 이제까지의 구질구질한
삶에 작별을 고하고, 결혼으로 얻게 될 막대한 부로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행복해 질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속물이다. 한탕주의에 찌들어있고 대단한 몽상가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 된 데는 그녀의 불행했고, 여전히 불행하고, 앞으로도 불행할 것 같은 삶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행동력이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명확히 알 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움직인다. 그녀를 욕할 수 있다. 한심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 안의 어느 부분은 그녀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너무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까? 그녀에게 조력자가 나타난다.
억만장자의 신부 찾기 공고에 편지를 보낸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안톤 코르프. 억만장자의 유능한 비서이다. 괴팍한 억만장자를 보필하길
수십 년, 그의 젊은 시절을 온통 그 억만장자에게 바쳤건만 가족이 없는 억만장자의 유서에 안톤 코르프의 몫은 아주 적었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계획을 짰다. 괴팍한 억만장자에게 신부를 만들어 주자. 늙은 억만장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 신부가
생긴다면 억만장자의 재산은 모두 그 신부의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여자가 그 대단한 행운을 거머쥐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자신이 그 여자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여자는 자신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줄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을 말이다.
힐데가르트와 안톤의 계획은 빈틈없이 착착 진행되어 간다. 결혼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힐데가르트와 자신의 몫을 분명히 챙기고 싶은 안톤은 좋은 파트너가 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지나친 행운은
불운을 몰고 오는 법이다.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게 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앞일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다. 우리들 또한 앞일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치사스러운 삶이 어디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생의 이유도, 존재의 목적도 모른다. 다만 살아질
뿐이다. 그 방향도 끝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값싼
행복이라도 손에 쥐어줄 돈을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바라고, 욕망하고, 행운을 기대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절대로 내 마음같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징그럽게 바라고 또 바란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일까? 저 한심한 속물일까? 아니면
우리일까? 앞을 모르고 그저 살아가야 하는 모든 것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