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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ㅣ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평점 :
노조키메. ‘엿보는 눈’ 혹은 ‘엿보는 여자’ 라는 뜻이다. 어째서 번역하지 않고 생소한 일본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왔나 했더니, 이게 일종의 고유명사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 제목들처럼 요괴의 이름이니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적은 것.
교고쿠 나츠히코처럼 실제로 문헌에 존재하는 요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아니고, 미쓰다 신조가 교묘하게 창조해낸 요괴인데 좀 독특한 면이 있다. 이 요괴는 대략 6~7세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표지를 참고 하시라. 심지어 예쁘장하기까지 하다.) 특별히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고 그저 지켜본다. 지독하게 지켜본다. 문틈이나 벽장 속에서, 오후에 그늘진 창문 아래에서, 도저히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공간에서도 두 눈을 희번덕대며 지켜보는 것이다. 그게 무슨 공포의 소재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인지 어쩐지, 노조키메의 시선을 받은 사람은 사고를 당하거나 죽게 된다는 규칙이 있다. 지역성이 강한 요괴로 몇 가지 금기사항만 따른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한번 씌이게 되면 답이 없다. 끈질긴 시선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죽게 된다.
뭐 그런 설정이고, 이야기는 이렇다.
편집자 시절 공포물 기획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미쓰다 신조는 그쪽 세계에 대한 무한한 관심으로 기담과 괴담을 여럿 수집해 놓았는데, 이는 작가로 전업한 이후에 요긴한 소재가 되었다. 이때 수집한 괴담이 첫 번째 - 엿보는 저택의 괴이. 작가로 전업한 이후에 호러와 미스터리의 장르적 융합이라는 목표를 위해 자료를 모으던 시절, 빙의물 신앙에 대해 취재를 하다가 얻은 원고가 두 번째 - 종말저택의 흉사. 이 두 원고가 묘하게 연결된다고 느낀 미쓰다 신조는 두 원고를 묶어 한권의 책으로 출판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노조키메』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전형적인 괴담의 플롯을 따른다. 젊은 남녀가 아르바이트로 외딴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는데, 관리인이 신신당부한 금기를 어기고 괴이를 맞닥뜨리게 된다.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여서 ‘무언가’에 씌이게 된다는 이야기. 괴담답게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밝혀지는 것 없이 ‘그건 뭐였을까?’하면서 끝난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저택의 흉사’에서 비로소 ‘그것’의 정체에 대한 단서들이 던져진다. 두 번째 원고는 어느 민속학자의 봉인된 기록으로, 민속학자는 끝끝내 그 원고가 세상에 공개되길 꺼려했으나 결국은 작가에게 전달된다.
그 원고의 내용은 이렇다.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는 민속학을 공부하던 학생시절 불의의 사고로 친우를 잃는다. 그의 명복을 빌어주고자 친구의 본가를 찾아가는데, 친구의 본가는 독특한 사연이 있는 곳이었다. 지역의 2대 지주이면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며, 이방인 살해 전설의 장본인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일족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일족은 노조키메, 즉 엿보는 눈의 앙화를 받게 되어 재앙을 피하기 위해 혼례나 상례와 같은 집안의 큰일에서부터 평소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면에서 기묘하고도 기괴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일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 노조키메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그 노조키메는 첫 번째 원고의 ‘그것’과 같은 요괴이다. 종말저택이라고 불리는 친구의 본가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괴이가 끊이질 않고 줄초상이 이어진다. 그 모든 현상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이자와 소이치는 그때의 경험을 원고로 남긴다.
마지막으로 두 원고와 원고를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서로 작가 미쓰다 신조의 추리가 이어진다. 첫 번째 원고에서 금기를 범하고 괴이를 겪게 되는 학생들 에게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었던 것인지, 두 번째 원고에서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겪게 되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실체는 무엇인지, 어째서 종말저택에서는 계속해서 흉사가 이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아주 명쾌한 해설이 이어진다.
『일곱 명의 술래잡기』때와는 다르게 호러의 소재이자 괴이의 정체인 ‘노조키메’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인지 『일곱 명의 술래잡기』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추리도 명쾌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은 게, 간과하기 쉬운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되짚어주는데 그 한 가지가 무서운 연출에 가려진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준다. 미쓰다 신조가 단편에서나 장편에서나 누군가의 ‘수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때 자주 쓰는 트릭이 있는데 그것이 두 번째 원고 ‘종말저택의 흉사’에서도 쓰였다. 이것도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봐야 할지 어떨지. 글을 읽는 사람은 글을 쓴 작가의 시점으로 글을 읽는다. 글을 쓴 이가 본 것만 볼 수 있고, 글을 쓴 이가 들은 것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글을 쓴 이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다각도로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진실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행간을 읽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행간을 읽으면 미쓰다 신조의 트릭을 간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쓰면 혹시나 스포일러가 될 수 도 있어서 꺼려지지만 적어본다. 작가의 다른 책인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에서 「슈자쿠의 괴물」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이게 좀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비슷하느냐? 그냥 비슷하다. 둘 다 읽어본 사람은 아마 동의 할 듯싶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호러로, 두 번째 이야기는 본격미스터리로, 또 그 두이야기를 아주 절묘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그야말로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이다. 그저 지켜볼 뿐인 어린 아이의 시선이 어떻게 호러가 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시선에 민감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 혼자 앉아서 딴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나를 보는 눈과 마주친다.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한 감정이 크게 느껴진다면 그게 시선공포증인 것이고. 나는 좀 놀랐다. 이런 소재로 공포물을 써냈다는 것이 참신하지 않은가? ‘숟가락 살인마’ 이후로 꽤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은 ‘숟가락 살인마’처럼 발랄하지 않다. 때때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 책장의 빈 공간에서 시선이 느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