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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기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호러, 괴기 단편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담’이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나인지라 출간 직후 일찍이 구해서 읽었건만. 불편하고 또 불편해서 이리 저리 던져놓기만 하다가 겨우 다 읽었다. 솔직히 다 못 읽을 줄 알았는데 스스로도 놀랍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사고를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인체 변형이나 훼손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과 일종의 공포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묘하게 매혹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를테면, 로드킬을 당해서 처참하게 깔려 있는 동물의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되는 그런 심리 같은 게 아닐까?
딱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여하튼 미리 경고하건데 이 책은 참으로 불편하다. 이런 걸 잘 못 보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경고딱지를 붙여주고 싶을 정도.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편집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따서 『안구기담』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키타니 유이 시리즈’라고 부르고 싶다. 사키타니 유이 라는 여성이 매 이야기마다 주, 조연으로 출연한다. 그렇다고 각각의 단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각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유이’라는 인물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또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외모에 대한 묘사를 보면 비슷한 용모를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격은 또 다르다. 도저히 같은 인물일 수가 없는 결말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까지 읽어버리고 나면 ‘그녀들’은 결국 한 사람인 것만 같다.
단편집의 순서문제나 같은 이름의 여성이 등장하는 설정이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 나는 이렇게 읽었다. 다음은 순전히 나의 상상이다.
첫 번째 단편 「재생」에서 묘사한 사키타니 유이는 아주 독특한 존재다. 신체가 훼손되고 절단되더라도 깨끗하게 재생되는, 그야말로 이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인물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특별함에 매혹된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사키타니 유이는 일본 공포만화 작가로 아주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이토 준지의 만화 ‘토미에’를 연상시킨다. 토미에는 아름다운 외모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악녀 중의 악녀로, 그녀 또한 인체가 무한 재생되는 아주 무서운 능력을 지녔다. 소설 속의 유이의 경우는 잘려나가거나 훼손된 신체의 행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그녀의 능력이 토미에의 그것과 같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 토미에와 사랑에 빠진 남자들을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훼손해 버리고 만다. 소설속의 ‘나’도 토미에를 사랑한 남자들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되며, 유이와 사랑에 빠진 것만으로 ‘나’의 결말은 토미에의 남자들처럼 처참하다.
그렇다는 언질은 눈을 씻고 어디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음만은, 만약 유이 또한 토미에처럼 재생은 물론이고 잘려진 신체가 무한 증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잘려지고 훼손된 유이의 ‘신체’가 또 다른 사키타니 유이가 되었다고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두 번째 단편 「요부코 연못의 괴어」 유이는 괴이한 일을 겪게 되는 ‘나’의 부인이다. 기묘한 연못에서 낚아 올린 괴어가 끊임없이 무언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부인인 유이는 무언가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그것’에 묘한 애착을 갖는다. 심지어는 ‘그것’에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같다.
세 번째 단편 「특별요리」에서 유이는 비밀스러운 회원제 식당의 아름다운 오너다. 악식을 하는 ‘나’에게 그 식당은 천국 같은 곳이다. 유이가 권하는 궁극의 악식에 매료당한 나는 엄청난 선택을 하게 된다.
네 번째 단편 「생일 선물」에서 유이는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여학생이다. 생일이란 아주 특별한 날이다. 19살의 내가 죽고 20살의 내가 되는, 말하자면 새로 태어나는 날인 것이다. 스무 살 생일에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된 유이는 집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 일은 너무도 멋진 일이라고 유이는 생각한다.
다섯 번째 단편 「철교」에서 유이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이제까지 단편의 누구보다도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비현실적인 존재인 것만 같다.
여섯 번째 단편 「인형」에서 유이는 ‘나’의 천진한 여동생이다.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괴이는 유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왠지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것만 같다.
마지막 단편 「안구기담」에서 유이는 입양아다. 축복받은 기적을 경험했다.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기적은 첫 번째 단편 「재생」의 유이가 경험한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사키타니 유이가 토미에처럼 재생은 물론이고 무한 증식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각각 단편의 유이들은 각각 다른 존재이자 결국은 동일인이다. 본체에서 상실되어진 어딘가의 일부분이 또 다른 유이로 재생 했다. 그런데 그 유이들은 태생이 그러해서 인지 어쩐지, ‘상실’과 ‘재생’이라는 법칙에 갇히게 되고 마는 것 같다. 그 법칙이라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사람에게 까지도 영향을 끼쳐 버리게 되는 것이다. 토미에가 결국 주위사람들을 모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처럼. 뭐 사키타니 유이의 경우는 그 정도로 악독하지는 않지만.
악식을 소재로 한 「특별요리」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바로 그렇다.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가 ‘상실’이라면 섭취한 음식은 결국 양분이 되어 몸속 어딘가로 전해져 다른 무언가가 되니 ‘재생’되는 셈이다. 유이의 음식점에 매료된 ‘나’는 결국 궁극의 악식을 경험하기에 이르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나’를 부추기는 게 음식점의 여주인인 유이다. 유이의 부추김으로 「특별요리」의 나는 「재생」에서의 유이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결과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유이가 재생, 즉 증식한다는 명백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가 「생일선물」이다. 자세히 적으면 스포가 되니 여기까지. 「인형」에서 괴이를 겪는 이는 유이의 주변인인 오빠다. 하지만 그가 개와의 산책에서 주워온 괴이한 인형으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이야기들 또한 결국에는 ‘내’가 사라지고 ‘내’가 재생된다는 이야기로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단편인 「안구기담」에서 유이에게 보내진 원고보다도 소름 돋는 것이 바로 유이에게 벌어진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원고의 내용 가운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유년시절 유이의 신체에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급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이는 유이의 양부모가 그녀에게 직접 전한 이야기이므로 분명하게 벌어진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이야기인 「재생」에서의 유이와 같은 일을 겪은 셈이다. 고로 이 ‘유이들’은 동일 인물이자 각자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작가가 처음에 “그녀들에게”라고 적은 것을 보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니 결과는 왠지 토미에가 되어 버린 충격의 단편집! 『안구기담』내마대로 a. k. a 사키타니 유이 시리즈!!
뭐 어디까지나 나의 망상이고, 고어 물을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 한 책이다. 단편집으로서 독특한 설정, 뻔하지 않은 전개, 적절한 빨간색(?)이 어우러진 괜찮은 소설이다. 다만, 비위가 약한 사람은 읽는 게 좀 괴로울 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은, 악식이란 무엇인가, 궁극의 악식은 어떤 모습일까 등 악식에 대한 모든 것을 집요하게 파헤친 듯 한 단편 「특별요리」를 김밥을 먹으며 읽었던 나는,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건만 아직까지도 김밥을 못 먹고 있다. 이 책을 뭐 먹으면서 읽지 말 것이며 가능하다면 읽어주세요. 한밤중에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