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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글을 읽으며 공포를 느끼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호러 비슷한 장르의 소설이 나오면 호기심이 인다. 그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만,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밤잠도 설칠 만큼 공포를 느꼈던 적은 딱 한번 뿐이었다. 오노 후유미의 『악령이 깃든 집』이라고, 조금은 유치하지만 악령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다. 코소리가 있을까봐 답답하게 커튼을 쳐놓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 책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붉은 눈」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읽다가 마지막 두 문단을 읽고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도조 겐야 시리즈와 작가 시리즈로 유명한 미쓰다 신조의 괴기 단편집이다. 8편의 이야기와 작가가 직접 수집했다는 짧은 괴담이 4편 실려 있다. 이야기의 화자는 미쓰다 신조 인 듯 하면서 미쓰다 신조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인물이고, 작가 시리즈에서처럼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있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너무나도 두려운 ‘그것’의 향연이며, 번역서에서는 제일 짜증난다는 애너그램도 가막히게 사용된 정말이지 완벽하게 미쓰다 신조의 책 같은 미쓰다 신조의 책이다. 음?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정리하자면, 작가의 스타일이 정말 집약적으로 농축되어있는 그런 책이구나 싶다.
국내에 번역된 미쓰다 신조의 책들 가운데 - 도조 겐야 시리즈는 물론 다 읽진 못했지만 - 안 읽은걸 제외하고는 『작자미상 - 미스터리작가가 읽는 책』을 가장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을 곧잘 추천하곤 했는데 앞으로는 이 책을 권해야 겠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 잘 읽히고, 단편집이다 보니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좋다. 그리고 단편집이지만 묘하게 연작소설인양 읽히는 점도 재미는 부분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붉은 눈」은 누군가가 작가에게 털어놓는 유년시절의 기억에 대한 것이다. 매혹적인 반 친구에 대한 기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공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앞서 밝혔지만 마지막 두 문단이 정말 압권이다. 「붉은 눈」은 「죽음이 으뜸이다 : 사상학 탐정」이야기와 묘하게 연결되는데, 사상학 탐정 편은 호러와 본격미스터리가 적절히 섞인 이야기이다. 본격미스터리 요소가 짙기로는 「재나방 남자의 공포」가 그렇다. 좀 가벼운 도조 겐야 시리즈 같은 느낌도 있고 개인적으로 8개의 단편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내려다보는 집」과 「뒷골목 상가」는 집에 대한 공포를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여기서도 섬뜩한 ‘그것’이 등장하며, 호러 성향이 짙은 단편들이다. 「괴기 사진작가」는 실제와 허구가 정말 교묘하게 섞여있어 더욱 섬뜩했고, 「한밤중의 전화」나 「맞거울 지옥」은 정말 묘하다.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이야기다. 4편의 기담은 창작이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이야기라고 한다. 각종 이니셜이 나열되는 진짜 괴담인데 믿거나 말거나 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뒷맛이 찝찝하다.
뒤에 구사카 산조의 해설도 읽을 만하다. 해설이지만 어렵지 않고, 미쓰다 신조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내용에, 작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쓰다 신조의 책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알찬 해설로 미쓰다 신조의 소설세계에 빠져들게 될 것 같다. 해설까지 마음에 드는 책이라니. 이런 책이 어째 그리 소리 소문 없이 나왔는지...
호러가 섞인 본격미스터리는 참 묘한 것이다. 호러가 되려면 끝까지 괴이의 정체를 숨기거나 밝히지 말아야 하고, 본격미스터리가 되려면 탐정같이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타나 괴이를 파헤쳐야 한다. 그 두 가지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은데 미쓰다 신조는 그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작가다. 『붉은 눈』은 그런 작가의 능력이 잘 발휘된 책 같다. 굳이 따지자면 호러 성향이 두드러지지만 뭐 이런 조합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제대로 소름 돋게 무섭고 재미있게 읽힌다. 앞으로 미쓰다 신조의 단편집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 단편집으로 또 어느 출판사에서 안 내주려나? 여튼 부담 없이 정말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다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물론 호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