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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신벌인가? 제의적
살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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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현 다로 군 하미 지방에서 벌어진 '신남 연쇄살인사건'에 대하여
이것은 ‘미즈치’라는 신을 모시는 하미 지방에서
벌어진 불가해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즈치라는 것은 물의 신으로 아마도 용의 모습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미 지방은 개척촌으로
논농사를 주로 하는데,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을 다스리기 위해 하미 지방의 4개의 마을에서는 각각 신사를 꾸며 물의
신인 미즈치님을 모신다. 각각의 신사에서는 돌아가면서 가뭄이나 폭우 때 증의(기우제-祈雨祭)나 감의(기청제-祈晴祭)를 위해 특별한 의식을
집행한다. 그 의식이란 바로 미즈치님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진신호(호수)에 신남이 공물을 바치는 것. 신남 역할은 의식을 주관하는 신사의
신관이 담당하며 다른 마을 신사의 신관들과 차기 신관들 까지 모두 참석하여 의식을 참관한다.
고요하고 탁 트인 호수 위에 의식을 위한 쪽배가
띄워지고, 미즈치님을 모시는 신사의 사람들이 쪽배를 바라본다. 호수 위에는 오직 의식을 집행하는 신남과 노 젓는 사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문득 쪽배가 흔들리고, 미츠지님에게 공물을 바치던 신남은 결국엔 피살된 채 발견된다. 모두가 지켜보던 호수 위에서 신남은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된 것일까?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거 미즈치님에게 올리는 제의를 담당했던 신남들이 하나 둘씩 살해된 채로 발견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밀실 살인이 등장하는,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로 읽는 도조 겐야 시리즈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 후로 쭉 미쓰다 신조의 팬이 돼 버렸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열심히 사 모았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유독 이 도조 겐야 시리즈만큼은 잘 안 읽게 되더라. 아무래도 작가 시리즈나 여타 단편집들
보다 유독 스케일이 크고 호흡이 긴 이야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도 무려 6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넉넉한
페이지를 자랑한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도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구성이 참신해서인지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한 번에 읽었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읽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초반이 아무리 지루한 책이라도 후반부에 가서는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므로 갈수록
읽기에 속도가 붙기 마련인데 이 책은 유독 그러질 못했다. 20번째 장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며칠을 그냥 흘려보낼 정도로 긴장감 없는 독서였다.
어째서인고 하니,
우선은,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중반부에 가서야
일어난다. 전반부 300페이지 가량에서는 사건이 벌어지는 하미 지방의 독특한 이력에 대한 소개와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앞부분만
놓고 보자면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호러소설에 가깝다. 미쓰다 신조가 즐겨 사용하는 지시대명사를 활용한 현란한 (호러)스킬이 발동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완벽한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건 되레 흥을 깨뜨리거든요. 결국 분위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괴기 환상 계열 작품은
괴물이나 마물이 출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만 조성하면 9할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이 인용은 미쓰다 신조의 최근 국내 번역출간작인
괴기단편집 『붉은 눈』에 나오는 이야기중 ‘미쓰다 신조’의 대사이다. 이 대사야 말로 『미즈치...』의 전반부 300페이지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스산하고 음산한 것이 무언가 벌어질 듯 말 듯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거다. 근데 그런 분위기가 300페이지나
계속되니 질리고 지루해 진다. 그렇다고 책을 던저버릴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책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되더라.
드디어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난 뒤에는 얼마간의 긴장감이 유지되지만 그마저도 금세 시들해 진다. 범인이 금세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엉성하거나
내가 추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미즈치...』에서 다루는 살인사건은 호수 위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사건이다. 호수 위를 밀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호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 관람자가 된다. 웬만한 인물들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알리바이가 명백히 확인이 되는 상황이니 그 사람들을 제하고, 적당히 비중이 있으면서 살인 동기가 있을 만한 인물을 추리자면 추릴 것도 없이 한
명 남는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그 인물을 떠올린다면 모든 상황이 설명이 된다. 작중에 도조 겐야는 거의 마지막까지 헤매고 또 헤매지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독자는 헤맬 일이 없다.
물론 미쓰다
신조는 그렇게 만만한 작가가 아니므로 비장의 마지막 반전을 준비해 두지만 글쎄. 기발한 트릭이라기엔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고 몇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어찌됐든 뭐 그렇게 된 일이라고 하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뿐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까지는
아니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리하게 특수한 상황을 설정한 결과인지 범인 잡기는 다소 싱겁게 돼 버렸지만 그것만 제하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읽는 재미는 충분히 있다. 그중 백미는 하미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과 기우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고 미즈치님에게
올리는 제의의 원형에 대해 추리해내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기괴한 외눈 광, 죄인 광 이야기는 기발하고 섬뜩하기 까지 하다.
미쓰다 신조는 이
책으로 무려 제10회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본격미스터리로서 잘 써진 책이라고 인정받았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읽어볼 가치는 충분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전작인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이 더 나았다. 그게 조금 아쉽다. 아직 읽지 않은 도조 겐야 시리즈 가운데 『잘린
머리...』보다 더 큰 재미를 안겨줄 책을 만나고 싶다. 얼른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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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많은 명사들이 나오는데 그게 다 비슷비슷해서 읽는데 어지간히 헛갈렸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보다. 한
글자 차이로 엉뚱한 이름이 쓰였다거나 오타가 난 부분들이 조금 보였다.
406쪽
- 위에서 7번째 줄; 대머리 수내 -> 대머리 사내
415쪽
- 밑에서 4번째 줄; 미즈치 가 -> 미즈시 가
595쪽
- 위에서 12번째 줄; 겐지는 -> 겐야는 (주인공 이름이...)
599쪽
- 밑에서 8번째 줄; 스이바 류지 -> 스이바 류마
류마, 류조, 류지,
미즈시, 미즈치 등등... 헛갈릴 만하지만 편집자가 헛갈리면 독자는 더더욱 헛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