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이유 없이 갑자기 누군가의 앞에 나타나 한사람의 인생을 한껏 휘저어 놓고 유유히 사라질 뿐이다. 불행에 치인 사람은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게 되는데, 문제는 불행으로 인한 내상을 입는 사람이 비단 불행을 직접 맞닥들인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 사람의 행복한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감,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 등 모든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들이 불행을 당한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생겨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주변에서 불행의 꼬리를 밟아버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꽤 위험하다. 그런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심한 경우 소리 없이 곪아 올라서 결국 해체할 수도 없는 시한폭탄처럼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만난 불행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조용히 몸을 불리며 또 다른 비극의 씨앗으로 잉태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요리코가 죽었다. 이제 막 열일곱이 됐을 뿐인데, 살해당했다."

 

  요리코가 살해당했다. 요리코는 우리 부부의 유일한 희망이고 행복이었다. 그런 요리코가 죽어버렸다. 경찰은 요리코 사건을 연쇄강간살인사건으로 결론지어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어딘가 무성의하다. 정말 요리코가 그런 강간살인마 따위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당한 것일까? 경찰의 수사에 의문을 품은 나는 독자적으로 조사를 펼친 끝에 요리코 사건이 정치적인 이유로 은폐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진범이 누구인지도……. 요리코를 죽게 만든 그에게 꼭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다. 내 딸을 죽인 남자를 단죄하기는 했지만 차가운 땅에 홀로 묻혀있는 어리고 여린 딸을 생각하니 괴로워서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혼자 남게 될 아내 우미에가 걱정되지만 나는 자결해서 딸의 곁으로 가려고 한다. 딸 요리코를 위해.

 

  여기까지가 한 남성을 살해하고 자결을 시도한 니시우라 교수가 남긴 수기의 내용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사건에 참여하게 된 추리소설 작가 겸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니시우라 교수가 남긴 수기의 모순을 발견하고 니시우라 교수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탐문에 들어가는데. 죽음을 앞두고 쓴 고백록에 거짓이 담길 수 있을까? 하지만 수기를 읽으면서 느껴졌던 위화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사건에는 분명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또 그 진실을 숨기려 한 사람의 의도는?

 

"그렇다. 당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린타로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니시우라 교수가 남긴 수기는 그의 살인과정을 담고 있다. 그가 어떤 이유로 범인을 특정하게 됐고,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했는지 적혀 있는데 내용만 본다면 아주 명료하다. 수기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운 딸을 잃은 슬픔과 범죄인 줄 알면서도 기어코 살인을 실행에 옮겨야 했던 애끓는 부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아내 우미에에 대한 미안함과 요리코와 우미에 둘 다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지만 결국은 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결정을 아내에게 전하는 부분은 신파극이 따로 없다. 아버지는 딸을 욕보인 남자를 제 손으로 벌했다. 결과는 명백한 범죄이지만 그 이유는 부정이었다. 충분히 동정 받을 만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수기의 내용이 전부 신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니시우라가 특정한 범인이 정말 요리코를 살해한 범인이 맞는지 확신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니시우라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범인을 확신한 부분은 니시우라와 살해된 남자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다. 물론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생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서와도 같은 기록에 거짓을 섞어 넣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호소에 가려져 묻혀버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조그마한 단서를 시작으로 수기의 본질을 파헤치는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행보를 쫓다 보면 요리코 사건을 다양한 각도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수기에 적힌 사람들의 이야기로 하나 둘씩 드러나는 그날 사건의 전말은 반전을 더하며 충격적인 결말로 이끈다. 한 가정에 불어 닥친 불행과 그 속에서 싹튼 비극의 씨앗이 만개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마음의 균열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나약한지 또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본격 소설로 트릭과 미스터리에 충실하고 몰입도가 좋은 책이다.

 

 

**쓸데없는 덧붙이기.

 

☆ 이 책을 읽기 전에 스포를 당했다. 아주 결정적인 단어를 들어버린 터라 책에 손이 잘 안 갔는데 어느 순간 아주 빠져들어 읽었다. 잘 읽히는 문체인 것 같다. 나랑 궁합이 맞는 작가인 듯.

 

☆ p. 202 ‘이언이 죽고 난 뒤 활동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싱글 <러브 윌 티어 어스 아파트 Love Will Tear Us Apart>......’ /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아아~ 가 갑자기 귀에 울려 퍼진 부분.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부분인데 읽다가 풉! 했다. - ‘아’ 다르고 ‘어’ 다르다 - 를 절실하게 느낀 부분. 내가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아파트’라고 써야 되는 건가? ‘어파트’라고 쓰면 안되는 거였나?

 

☆ (스포주의) p. 199 '..... 때문에 두 사람의 목숨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 요 부분 좀 걸렸다. 순간 ‘세 사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 부분 스포일러 일지도!!) 고개를 갸웃 갸웃. 그것도 의사가 이런 대사를 쳐서 의아했다. 일본이랑 이쪽이랑은 고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서가 다른 걸까?

 

☆ 뒤에 붙은 <작가에게 온 편지>에 대해서. 『요리코를 위해』에 대한 평론인 줄 알았다만 그보다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고집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에 대한 글이었다. 말 그대로 노리즈키 린타로 씨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은 ‘본격 미스터리물’이라는 틀에만 묶어두기에는 아깝다. ‘본격’의 틀을 벗어나서 더 좋은 책을 써 주세용~ 이었는데. 작가에 대해 그리고 『요리코를 위해』가 포함되는 비극 3부작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좋은 글이었지만 구태여 이 책 뒤에 실려 있으니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 글을 쓴 이는 노리즈키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명탐정’이라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장치가 등장시켜서 베려버린다, 결국 본격물의 규칙을 지키려고 더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작품들을 베리고 있다는 건데 읽으면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여 했다. 그 글을 쓴 필자의 ‘본격’물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고스란히 읽혀져서 불편했다. 그 필자의 말을 빌자면 이 책 또한 좋은 미스터리 소설일 뻔 했지만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면서 격을 팍 깎아 먹었다는 소린데 글쎄. 나는 본격물에 대한 편견도 없고 그렇다고 격하게 애정하는 편도 아니지만 이 책은 꽤 재미있고 괜찮았는데 말이다. 참 미스터리한 평론가의 글 붙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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