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품격]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전에 박물관학 관련 책을 읽다가 새삼 놀란 것이 있는데, 어떤 학자는 박물관에 근무하는 전문 인력을 100여 가지의 직종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곳의 기능이나 역할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한가 싶었다. 물론 이 분류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포함된다. 박물관 전문직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큐레이터에서부터 매표소의 직원, 박물관 환경미화원 까지 포함하여 셈한 숫자이니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숫자도 아니었던 것이다.

 

무지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일종의 편견이었을 지도 모른다. 왜 특정한 업종에 대해서는 특정한 직업만 한정적으로 떠올리게 되지 않던가? 학교하면 선생님, 병원 하면 의사, 박물관 하면 학예사, 법원하면 검사, 공항 하면 항공기 기장이나 승무원 같이. 사회는 좀 더 복잡, 다양하고 아주 세세한 부분들 까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 많은데 말이다. 대게의 사람들은 3D로 분류되는 고된 직업이나 돈 안 되고 뽄데 안 나는 한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고, 어떤 일이든 그 안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형태는 조금 다를 지라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은 더 좋고 더 편하고 더 많이 벌고 더 출세하는 화려한 직업을 선호하는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리라.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본인조차 어떠한 보람도, 의미도, 의욕도 가질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이런 저런 시끌벅적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주인공의 개과천선(?) 아니 어떤 의미로는 환골탈태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성공(혹은 성장?)스토리는 얼마나 대견하고 감동스러운가? 이 이야기는 공항이 아닌 수많은 직장에서 ‘아포양’일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주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그것은 부드러운 일침이고 별로 따뜻하지만은 않은 위로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세상의 모든 ‘아포양’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책이랄까? 그런데, 아포양이 뭐냐고?

 

아포양은 아포양이지, 뭐.

아포양은 세상을 가르쳐주지 않아. 아포양은 하늘을 날지 않아.

아포양에게서는 돈 냄새가 나지 않아.

아포양은 화를 내. 아포양은 웃어. 아포양은 달려.

아포양은 공항에 있어.

 

뭐 그렇단다. 아포양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있겠지만 번역자도 적절한 말로 대체하지 못한 것을 보니(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참 설명하기 애매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포양’은 공항에 내근하며 고객들의 각종 민원업무를 해결하는 일을 전담하는 인력에 대한 조롱 섞인 별칭이다. 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 화려하지도 않고 일도 고된데다가 돈도 못 벌고 별로 출세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포양은 공항의 한직이다. 항공사 계열의 여행사에 근무하는 엔도 게이타는 잘나가는 기획부서 직원이었지만 새로 온 과장 대리를 두둔했다가 과장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나리타공항 민원업무 처리 담당으로 좌천되고 만다.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까지 차이고 한창 실적을 올려 출셋길을 열어야 할 시기에 익숙하지도 않은 일을 떠맡게 되어 버린 것이다. 늘 무기력한 엔도에게 선배 아포양 이마이즈미는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를 볼 때마다 ‘즐기고 있어?’ ‘엔도, 웃어! 웃으라니까?’ 같은 시답지 않은 말이나 건네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지고, 고객들의 불평불만은 각양각색이고, 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중재도 해야 하고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엔도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도 늘상 바쁘다. 그런 와중에도 유난히 눈에 밟히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연애도 해야겠고 일도 해야 하는 엔도는 그야말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수많은 사건을 겪고 또 해결하면서 엔도는 점차 아포양이라는 일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떠맡겨진 일에 늘 무기력했던 엔도가 진정한 아포양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뻔 한 플롯에 낯간지러운 감동코드를 버무린 그저 그런 이야기로 비취지기 쉽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디테일에 있다. 저자가 공항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공항 전문직 종사자들의 양태에 대해서나 그들간에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서나, 공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사건사고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었던 배일에 쌓여있는 그들의 일상과 고충과 애환이 다소 코믹하게, 간간히 감동스럽게 그려져 있다. 그 속에서 출세 지향적이었던 엔도가 절대로 원치 않았던 업무에 좌절했다가 점차 본인의 일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비로소 일에서 어떤 만족감을 얻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그것이 퍽 감동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곡해일지도 모르고 감정과잉일수도 있겠지만 아포양과 엔도로 대표되는 고되고 초라할 지도 모를 수많은 직업들과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되어 조금 찡해지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아포양과 이 책의 초반 어느 페이지쯤을 견디고 있을 엔도들을 떠올리며, 조금 오버해서 외치고 싶었다. 소심하게 종이 위에서 외쳐본다. 힘내요, 아포양! 그대는 참 멋진 일을 하는 군요.

 

 

아, 그리고 이 책 후속편이 있다. 나리타공항 근무 2년차가 된 엔도가 신입 교육도 맡게 되면서 더욱 골치 아파졌다나 뭐라나. 공항은 여전히 사건사고로 떠들썩하고 거기에 보태듯 신입은 제멋대로 굴고, 사랑의 라이벌 까지 등장한단다. 제목은 [연애의 품격]이라는데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제목을 정말 기가 막히게 지었다. 원제는 아포양이지만 공항의 품격이 오히려 딱 들어맞고 읽고 나서 좀 더 와 닿는 무언가가 있더라. 2권은 대놓고 연애의 품격이라니, 어떤 골치 아프고 애타는 일이 엔도를 기다리고 있을지! 책장도 쉽게 술술 넘어가고 대단한 몰입도를 가진 책이었으니 2권도 적잖이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