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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7일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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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는 이 모든 것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컴퓨터 화면이 한번 깜빡거리는 순간에 상황이 이렇게나 뒤바뀔 수 있고,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고독한 침실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한 사내를 죽음에 이르도록 선고하는 것이 가정의 일상사가 됐다는 점에 더욱 입이 딱 벌어졌다. - p.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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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과 노출의 시대
사회에 나갈 날이 멀지 않은 빈대 병아리 중의 한 마리로써, 가장 섬뜩했던 괴담이었다. 아는 이에게 건너건너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게 정말이야?’를 연발하며, 확인할 길 없는 낭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럴 법 했기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이야긴고 하니, 일부 규모 있는 회사에서는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원 서류와 면접 등의 표면적인 절차 이외의 것도 행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 ‘표면절차 이외의 것’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를테면 아이디를 추적해서 자주 들렀던 인터넷 사이트나 남긴 글, 댓글들 까지도 일일이 찾아본다는 것이다. 무슨 구시대적인 사상검열이냐고 실소할 만한 상당히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실지로 그럴 법한 이야기로 들렸다.
요즘은 뭔가 이슈가 되면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한 신상정보가 쉽게 까발려진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통신망 안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정보가 여과 없이 흘러넘치고 있는 고로 일명 ‘신상 털기’는 그렇게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누구라도 가능하다. 얼마 전에는 한 검색엔진의 모양새를 딴 ‘신상 털기’전문 사이트가 등장해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건 전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간 무자비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렇게까지 일을 몰고 간 뒤에는 인터넷망을 이용한 ‘신상 털기’가 크게 한 몫을 했던 것이다. 개인정보가 그저 심심풀이로 털어지고 까발려 지는 무서운 세상이다.
소통이 쉬워질수록 개인의 사생활은 점점 그 영역이 좁아지고 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의 가치판단은 일단 차치하고, 이러한 세태가 사람들을 어떻게 몰아가고 있는가는 한번 고민해 볼 만한 문제다.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져 버린 타인에 대한 관심과 비정상적인 간섭은 그간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야기해 왔던가. 또,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상 현상에 제 한 몸 내던져 관심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가. 그 관심이란 것은 대부분 악의를 품고 있으며, 개인의 일상을 한낱 가십거리로 여기며 조롱하기에 바쁘고, 그런 관심 속에서라도 화제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병적인 심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과잉행동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상의 관음증과 노출증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오락프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요즘은 리얼을 표방하지 않은 오락프로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의 기호는 명확해 졌다. 각본이 없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배우들의 대처는 날것 그대로 전파를 타고, 그 과정 속에서 배우 개개인의 시시콜콜한 개인사가 헤쳐진다면 더욱 열광한다. 24시간 타인의 삶을 관찰한다는 설정의 프로그램도 공중파에서만 나오지 않는 다 뿐이지, 이미 케이블에서는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으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관음증이 점차 무섭게 현실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개인의 삶이 한낱 일회성의 오락에 지나지 않고, 그 속에서 쇼 아닌 쇼를 벌여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니. 정말 그 끝은 어디며, 그 결과는 무엇일까? 소름 끼치는 세상이다.
<24시간 7일>, 최후의 생존자를 가린다!
아마 그 끝이며 결말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물론 이런 결말이라면 최악 중에 최악이겠지만 말이다. TV 리포터와 뉴스진행자를 오가며 20년 동안 방송계에서 일 해온 짐 브라운이 그간 방송현장에서 쌓은 지식들을 살려 평소 좋아하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편의 스릴러 소설을 내놓았다.
<24시간 7일>은 2백만 달러의 상금과 평생 이루고 싶은 단 한 가지 소원 이라는 부상을 내걸고 벌이는 외딴 섬에서의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들의 섬생활은 방송 내내 24시간 전파를 타고 대중에게 보여지고, 대중은 그들 가운데 탈락자를 선정한다. 쇼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각각이 가진 공포를 이겨내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미션 수행 결과 시청자의 탈락자 투표율을 감해줄 수 있는 안전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소재와 설정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외국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한 바 있다. 다만 끔찍한 것은, <24시간 7일>의 탈락자는 실제로 죽음을 맞는 다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실제상황이라는 점이다.
28세의 다나 커스틴은 심각한 근육퇴행위축증을 앓고 있는 딸을 둔 미혼모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매일 각종 아르바이트에 치여 사는 그녀지만 그녀는 항상 딸이 걱정뿐이다. 그녀의 딸은 잘 버텨주고 있지만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평생의 소원은 스위스에서 행해지고 있는 근육퇴행위축증 임상실험에 딸이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24시간 7일>에 참가하게 된다. 뒤늦게 충원되어 설렜던 것도 잠시,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진행자와 스태프들의 피부가 끓어오르더니 카메라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간다.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에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컨트롤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지금 이 순간부터 진정한 리얼리티 쇼가 되었다. <24시간 7일>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너희들 인생의 종점에 온 것을 환영한다.” 쇼의 출연자들은 한순간에 사람을 죽이는 정체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하루하루 백신을 투여 받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진행자와 스태프들은 그들의 멀지 않은 미래였던 것. 출연자들은 백신을 건 쇼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목숨을 건 진짜 쇼가 시작된 것이다.
<24시간 7일>의 대참사는 쇼가 진행되는 바사섬 곳곳에 설치된 수백 대의 카메라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야 이 엄청난 사태를 진압하고자 고심한다. 하지만 쇼의 진행자와 스태프를 한순간에 살해한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섬에 고립된 피해자들을 섣불리 구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군함도 헬기도 섬 가까이 가면 무슨 이유에선지 파괴되어 버린다. 이 모든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 각지, 세계 각지로 모두 중계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 방송조차 중단시킬 수도 없다. 유래 없는 끔찍한 테러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4시간 7일>은 단번에 엄청난 열풍을 몰고 온다. 사람들은 날로 이 끔찍한 리얼리티 쇼에 열광하고 집중한다. 사람들은 제 할 일도 잊은 채 오직 24시간 섬에 고립된 출연자들을 관찰하는데 열을 올리고, 이런 사람들의 집단적 이상 집중은 도를 넘어 사람을 죽이는 투표에도 거리낌 없이 참여하기에 이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참가자들을 투표를 통해 한명씩 죽어간다. 그 모든 것들이 중계되면서 날이 더 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한 표를 행사한다. 쇼가 벌어지고 있는 섬에서나, 쇼를 시청하는 본토에서나 <24시간 7일>은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것이다.
<24시간 7일>사태는 섬에 고립된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쇼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속수무책으로 범국민적 테러를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과연 이런 엄청나고 치밀한 계획을 실행시킨 [컨트롤]의 정체는 무엇일까? 섬에 고립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까?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지금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24시간 7일>은 죽음 직전에 놓은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과 쇼를 지배하는 컨트롤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출연자들의 대립 그리고 그것이 실제 상황임을 인지하면서도 점차 자극적인 쇼를 관람하듯 안방에서 살인을 종용하는 대중의 심리를 다양하고 실감나게 그려냈다. 살아남으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조하려는 움직임, 컨트롤의 실체를 파헤쳐가는 과정 등은 훌륭한 긴장요소로 작용하며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했다. 순간순간 공간을 옮겨가며 진행되는 드라마틱한 구성은 빠른 이야기전개에 스릴감을 더했다.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든 괜찮은 소설이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당연한 심리가 상당히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세상이 너무 영화 같아서 그런가, 가끔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우습지 않게 벌어지고 거기에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이지경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라는 말 자체도 자극적인 것인데 자극적인 것이 숫제 널려다 보니 이제는 ‘더 자극적인’ 실제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유투브에 올라오는 폭력적인 또는 음란한, 엽기적인, 패륜적인 영상들이 심심찮게 화제가 되고 있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삶을 해킹한다. 너무 쉽게 알 수 있게 되는 까닭일까, 우리는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본다. 쉽게 말하고, 쉽게 욕하고, 쉽게 비웃고. 누군가의 현실이 한순간 누군가의 가십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존엄은, 누군가의 인권은, 누군가의 가치는 순간 휴지조각만도 못한 것이 되어버리는 거다.
리얼이 언제부터 한낱 오락꺼리로 전락해 버렸을까. 리얼리티와 대중의 왜곡된 관심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엽기적인 시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 후기에서 짐 브라운이 밝혔듯이, 리얼리티 쇼는 점차 더 자극적으로 변모해 갈 것이고, 사회적으로 성행하는 관음증은 심리적 사회적으로 앞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타인의 현실이 오락이 되는 순간, <24시간 7일>의 악몽은 사실 단순한 소설의 소재로 치부하기에는 나름의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결말이 있지만, 그런 현실이라면 결말이 있을까? 내용도 스릴이 넘치지만 작가 후기로 불현 듯 깨닫게 되는 현실이 더 소름 돋는 책이다.
멍하니 자판을 두들기다가 드는 생각. 저기 저 웹캠 너머로 누군가가 멍청한 얼굴로 자판을 두드리는 내 얼굴을 감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참 생각할수록 소름 돋는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