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3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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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들에 비해 형제가 많은 나는, 아니 우리는 대부분의 물건을 공유하면서 자랐다. 옷을 물려 입고, 가방을 돌려쓰고, 욕실용품이나 위생용품 같은 자잘한 소비성 생필품들은 물론 하다못해 주전부리마저도 같은 것을 소비했다. 엄마는 장을 보면 디자인 보다는 용량에 신경을 썼고, 우리는 그냥 있는 대로, 주는 대로 군말 없이 썼다. 우리들 중에 누구도 유별나게 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기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문제로 말을 보태는 것은 투정으로 부리는 것이고,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그런 무난한 사람이 좋은 사람인줄, 어른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겉으로만 그렇다는 거다. 내면에서는 고집하고 싶은 것, 특별히 좋아하는 것, 절대로 뺏기기 싫은 것 같은 짙은 마음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을 뿐인 거다. 왜 좋고 싫은 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을 보면 좋은 의미로든 안 좋은 의미로든 아이 같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나는 항상 어른스럽고 싶었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투정 부리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싫었다. 철없는 애라고 여겨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라라가 책장에 깊숙이 숨겨둔 만화책 박스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장면이 나왔을 때, 휙휙 넘기던 책장을 잠시 멈췄다. 엄마도 모르고 소꿉친구도 몰랐으면 하는 우라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중으로 만들어진 책장 안쪽 깊은 곳에 있다.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싸매놓은 마음이 어떤 건지 왠지 알 것 같았다.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드러냈을 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가 말이다.

 

나는 우라라의 태도가 이해가 갔지만(그냥 저 나이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내심 안쓰럽고 뜨끔할 정도였다) 온갖 덕후들이 난무하는 요즘을 사는 사람들은 좀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덕질하기 좋은 세상이고 덕질이 곧 개성인 시절이니까 말이다. 너도 나도 개성을 뽐내고 있는데 왜 혼자서면 눈치를 보고 있을까 싶었겠다. 반면에 이치노이 할머니는 좀 더 대담했다.

 

예정에 없이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그저 예쁜 그림에 홀려 집어든 BL 만화책은 그녀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된다. 남편과 사별하고 낡은 집에서 서예교실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의 일상은 파도 없는 바다처럼 단조롭기만 했다. 그런 일상에 끼어든 만화책의 위력은 엄청났다. 친구가 생겼고, 날짜를 꼽아 기다리는 일이 생겼고, 젊을 때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됐다. 연재주기로 인생의 남은 날을 헤아려 보고 한권의 연재물이라도 더 보기 위해 무병장수를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녀의 일상은 물론 그녀 자신도 크게 변화한다.

 

만화가 이치노이 할머니의 일상을 변화시켰듯이, 우라라도 이치노이 할머니를 만나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전보다 시야가 넓어졌고, 항상 타인에게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듯한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고 감정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특히 소꿉친구 츠무구와의 관계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 만화를 그리겠다는 마음을 먹고 창작자이자 판매자로서 이벤트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막연하게 남들보다 뒤쳐져 있다고 느끼며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아이가 한발 앞으로 내딛는 모양세라서 뭔가 찡했다. 뒷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다뤄질 것 같지만.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해서 순수하게 그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여서 순수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고, 철없다고 매도하기도 했었다. 좋아하는 마음 한끝에는 쓸데없이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항상 공존했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성격 탓인가 싶어서 스스로에게 짜증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데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거리낄 것이 없을까 싶은 것이다. 이 만화에서 마치 이치노이 할머니와 우라라가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막연하게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음이 있을 줄 알았지만 다음은 없다는 걸아는 사람의 차이일까?

 

우라라가 이치노이 할머니와의 회동 후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나이면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오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아무 때나 지금 해도 괜찮은 거구나 싶어서’. 어쩌면 성격이 그렇다느니, 어릴 때부터 그래와서 그렇다느니 하는 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냥 막연하게 다음을 기약하며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한다는 네글자는 영영 미래의 어느 날에 두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내뱉어지지 못한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이내 흩어져 버릴 때 까지 그냥 그렇게 무디게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보고 싶어지는 이야기다. 우라라와 이치노이 할머니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나는, 그 둘처럼 무언가를 강력하게 덕질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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