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시간을 아세요? 베틀북 그림책 49
안느 에르보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베틀북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엄마가 봤을때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것 같은데 의외로 열광할때가 있는걸 보면 엄마 기준에서 책을 고르는건 정말 피해야 할 일이라는걸 새삼 깨닫곤 합니다. 하물며 아이들 의견 무시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여준다는건 더욱 미안한 일이지요. 그렇게 엄마가 좋아하는, 순전히 엄마 취향이었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파란 시간'이라는 단어가, '파란 시간을 아세요?'라는 제목이 좋아서 무작정 펼쳤던 책이였는데 그 내용과 그림에 반해서 더욱 좋아해버리게 된 책입니다.  


"엄마 방이 왜 파란색이지?"
"지금 우리 곁에 파란 시간이 와 있거든. 알지? 장대신발 신고 가로등속에서 사는 파란 시간이 지금 일어난거야."
"아.....태양왕이랑 밤여왕한테 쫓겨난 그 파란 시간?"
"응, 낮과 밤 사이. 바로 지금이 파란 시간이야."

그날 큰 아이가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오기 전까지 아들과 저는 꼭 끌어안고 
물빛의 파란 시간이 검푸른 파란 시간이 될때까지 적막함과 푸르름을 즐겼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있을 수도 있구나, 파란 시간을 완벽하게 온 몸으로 느끼는 아이가 한없이 예뻤던 날, 내가 좋아하는걸 아이와 함께 공유한다는 기쁨에 충만했던 선물같은 날이었습니다.



앙숙이던 태양왕과 밤의 여왕 사이에 장대 다리의 파란 시간이 끼어듭니다.
그러나 태양왕과 밤이 여왕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 파란 시간은 태양왕과 밤의 여왕의 사이, 태양이 저물고 칠흙같은 어둠으로 채워지기 직전바로 그 틈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자신으로 물들이지요. 바로 파란 시간입니다.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시간.
읽던 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채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는 시간.
펼친 책장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시간.

땅거미 질 무렵의 어슴푸레한 시간.
그림자는 빛나고, 땅은 어둡고, 하늘은 아직 밝은 시간.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하늘 끝자락이 붉어지고, 태양은 멀리 어딘가로 자러 가는 시간.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돌아갈 때만 조금 달라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

그런 파란 시간을 정말 아세요?


 - 파란 시간을 아세요? - 본문 중에서 



한낮엔 태양왕을 피해 낡은 가로등속에 숨어 있던 파란 시간은 새벽 공주를 본 후 남몰래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은 새떠오르기 시작하면 다시 숨어버리지요. 
눈물같은 푸른빛의 푸른 시간은 사랑마저도 슬프고 애닮습니다.  



머리는 한 낮의 시간으로 가득하고 심장은 한밤의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파란 시간, 
한 손엔 책을 들고 머리엔 골무를 쓰고 큰 바늘로 옷을 여미고 있는 파란 시간은 장대신발을 신고 조용히 걷기만 합니다. 세상의 파란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물들어 가지요.
해가 지고 어둠이 시작되기 바로 전 푸르스름한 그 때, 동이 트기 바로 직전의 푸르스름한 그때의 세상의 빛과 정적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저에게 '파란 시간'이라는 표현은 곧장 하나의 고유 명사로 박혀버렸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시간을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또 아련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 읽어줄 책을 고르면서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내 눈높이를 버리자 라는 마음입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엄마이다 보니 골라놓은 그림책들이 엄마가 좋아하는 성향으로 흐를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좋은걸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혼자만의 욕심때문에 미안한줄 알면서도 '엄마가 좋아하니 너희들도 한번 봐줘라'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의인화된 시간을 아이가 얼마만큼의 감성으로 받아들였을까요.  
아이들은 어른의 기준으로 속단하면  안 될 정도로 그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아이와 꼭 끌어안고 오후 늦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적이 있습니다. 
큰 아이는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고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 
막 여섯시를 향해 가는 고즈넉한 그 시간에 아이와 저의 공간은 온통 파란색이었어요.
눈을 뜨고 공간을 둘러보던 아이가 제 품에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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