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 마권 잔등 폭풍의 역사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24
최명익 외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평점 :
품절


 

최명익의 「심문」을 읽고







 

  처음 책을 펼쳐들면서 제목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음 무늬라니. 대부분의 작품은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어느 정도는 추측해 보기도 하고, 또 그 추측이 상당 부분 맞을 때도 있는데 이 작품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심리에 관한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정도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말 뿐. 그렇게 읽은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김명일은 3년 전 상처(喪妻)한 화가이다. 그의 어린 딸은 학교 기숙사에 맡기고 그는 신혼 당시 신축해서 살던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의 친구인 이 군(君)을 만나려고 하얼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곳은 여옥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이었다.

여옥은 동경에 유학한 문학 소녀였고 청년 투사 현혁의 연인이었으나 명일이 출입하던 다방의 새 마담으로 오게 되어 그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밤과 낮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여 주관적인 모습과 객관적인 사실이 교차되어 나타나, 명일의 처의 모습과 닮았으나 또 다른 면이 있는 그러한 여인이었다. 여옥은 명일을 사랑하였으나 그가 부인을 못 잊어하는 것을 알고 그녀는 첫정을 주었던 현혁을 찾아 만주로 떠났었다.

명일은 이번 여행에서 여옥을 만날 의도는 없었으나 이 군의 안내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한때 사회주의 운동가로 유명하였던 현혁과 여옥이 동거하고 있으며 둘 다 아편 중독자가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혁은 화를 내며 명일에게 둘 사이에 개입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결국은 아편을 얻기 위해 여옥을 명일에게 양도한다. 그러한 현혁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낀 여옥은 뒷 수습을 명일에게 부탁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열차 안에서 느껴지던 우울한 예감은 그대로 결말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숙명이니 어쩌니 하면서 깔린 복선은 지나치게 드러나 보여서 작위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지나서 바로 그 암울함에 대한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후반부에 가서는 숨을 죽이고 내쳐서 죽 읽어가게 하였다. 여옥이 명일에게 찾아와 자기의 연인 현혁을 함께 만나 달라고 하는 데서부터는 독자인 나도 마치 그들의 게임에 동참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혁이 어떻게 나올까 몹시 궁금하였다. 나는 나름대로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혼자 가늠해 두고 글을 읽어 내려갔다. 현혁이 애절하게 여옥에게 매달리고, 해서 명일은 -어쩌면 여옥과 함께 떠나기를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를- 마음을 다쳐가며 봉변만 당하고 결국 혼자서 돌아서야 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물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작품은 정신적인 허무에 사로잡힌 생활 무능력자이거나 절망적인 인간들이 등장한다.

<처를 때리고>에서의 남수와 같은 유형의 인물로 여옥의 연인 현혁이 나온다. 동시대의 작품에 연이어서 등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주의자로 그 운동의 선봉에 서 있으며, 그것을 이유로 핍박을 받았으며, 그런 후에는 여자의 뒤에서 얹혀 산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 말기의 어둡고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외부세계에의 적극적 참여를 단절당한 지식인들의 자의식과 현실적인 손발 묶임을 암시적으로 대변하는 듯도 하다. 마음과는 다르게 문학 작품에서조차 마음대로 펼쳐 보이거나 고발하지 못하는 작가 자신의 암울하고 답답한 심리를 드러낸 것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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