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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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비싼 횟집에 가본 사람들은 알거다. 회가 접시에 담겨 나오면, 간혹 생선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어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무채위에 자신의 살점을 드러내 놓고도 질긴 숨을 아가미로 쉬고 있는 생선을 보면서 히히덕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어쩌면 참으로 잔인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책이 그렇다. 이 책은 두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횟감처럼 러시아 혁명의 10일간을 그리고 있다. 살아서 펄펄 뛰는 생생한 기록과 증언과 충실한 관련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번째로, 혁명이 얼마나 잡다한 모든 것들을 제켜내고 잔인하고 무뚝뚝하고 진실하게 생살처럼
진행되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볼세비키들은 단 4-5개월만에 소수파에서 다수파로, 체이카의 한 파벌에서 러시아 민중의 혁명의지를 온전히 실현하는 집권세력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볼세비키인 레닌과 트로츠기의 입장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수병과 민중 군인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써내려간 르뽀이다.

존리드는 미국의 사회주의자 답게 중립적이지 않은 글을 ›㎢鳴?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동안 출판금지의 책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리 중립적이지 않은게 아니다.

권력을 잡게되면 모든것이 용서된다는 관점이나 작가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2월 혁명을 거치고 나서의 8개월 동안의 과정이 10월 혁명을 어떻게 잉태했으며, 누가 민중의 현실적 문제 해결과 민중의 입장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지를 놓고 어떤 경쟁을 벌였고, 민중은 어떤 세력을 선택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부르조아지들과 코사크들, 사회주의 우파들과 장교들의 동맹, 농민들을 대표로 하는 사회혁명당 좌파의 삐짐, 공무원들의 조직적 파업 등등...무수히 많은 교란과 방해공작을 뚫고 러시아의 기층 노동자, 농민, 병사들은 처절하게 싸워나간다.

혁명적 동지애는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수백, 수천번의 회의와 결의 대회를 민중혁명의 승리로 이끄는 원천적 힘이었다.

또한, 그 무수히 많은 회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지도자와 대중들 사이의 광범위한 자유로운 발언과 언론의 공개등을 통해 무력사용이 불가피하지만 단호한 필요성을 요구하는 결정적 순간들을 제외하고 얼마나 많은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 각 정파들이 치열하게 토론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 10일간의 기록이지만, 숨가쁘기도 하고 벅찬 감동으로 혁명을 밀어가는 대중의 인터뷰와 증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 진짜 제대로 된 회 한 접시같은 존리드의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 Ten Days That Shook The World), 러시아 사람들을 절대 우습게 보아서는 안된다.

1917년 10개월의 장엄한 혁명과정과 10일간의 치열했던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전 세계에 희망을 보이겠다는 저들의 꿈은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향해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서 항상 피어날 민중의 꽃 말이다.

지평선 너머에 수도 페트로그라드의 불빛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불모의 평원에 펼쳐진 보석처럼, 낮보다도 밤에 더욱 빛나는 수도 페트로그라의 장엄한 모습이었다.

운전을 하던 늙은 노동자는 한 손에 운전대를 쥐고 다른 손으로 저 멀리 빛나는 수도를 가리키며 환희에 찬 몸짓으로 말했다.

" 내 것입니다!" 그는 빛나는 얼굴로 외쳤다. " 이 순간,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나의 페트로그라드여!"

-276쪽 승리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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