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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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황금가지 #서평단

멸종 위기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안쓰럽도록 홀쭉해진 북극곰을 위한 캠페인에 한번쯤은 참여해 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블롭 피쉬가 멸종 위기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긴코원숭이, 혹은 이름 모를 박쥐는?

독쑤기미 서평단을 신청할 때 생각났던 현상이다.

외모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멸종위기 동물들은 보호와 관심을 받을 확률이 높지만

못생기거나 사소한 동물들, 가령 곤충류나 박쥐, 물고기 등은 멸종이 진행중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 책 표지에는 못생긴 물고기 한마리가 떡하니 있다.

그렇기에 더 읽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SF 블랙 코미디 장르로

배경은 '멸종 산업'이 득세하는 세계.

이 멸종 산업에 자본주의 세계의 논리가 강하게 들어 있어 나는 이 소설이 '경제 스릴러' 같기도 했다.

개발 과정에서 어떤 생물을 멸종시켜야 한다면, '멸종 크레딧'을 제출하면 된다.

그리고 그 '멸종 크레딧'은 사고 팔 수 있다.

비슷한 개념은 현재 현실세계에도 있다.

'탄소배출권'

탄소 배출권을 살짝 비틀면 - 내게 탄소 배출권이 있고, 또 더 사올 수 있다면 나는 탄소를 필요에 따라 원하는만큼 배출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내가 개발을 하려는데 그 지역에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 내게는 이미 확보한 멸종 크레딧이 있다. 그 동물을 멸종시킬 수 있는가?

그냥 좀... 박쥐나.. 새나... 뭐 곤충인데?

아 팬더는 좀 - 팬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곤란하다.


일단 재밌다,

일이 이렇게 해결되나 하면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인다.

그리고 눈 앞에 급급했던 것들 뒤로 거시적인 자본 시장이 펼쳐진다.

- 얽힌 개인, 기업, 정부가 이렇게 나타난다고? 시장 조작에 음모론자들도?

등장인물들도 흥미롭다.

생명과 동물에 진심으로 진심인 사람은 없다.

모두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어딘가 하나씩 비틀려 있다.

헬야드와 함께 독쑤기미를 찾아나선 과학자 카린조차도

'복수'를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독쑤기미가 동물을 대표해서 인간에게 복수를 하길 바라는 것 같다.

일종의 자학적 감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155p. 인간이 지금까지 빚진 것의 극히 일부라도 피로서 대가를 치르려면, 인간에 의해 멸종 위기에 몰린 종, 멸종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실제로 이해하는 종, 복수를 원하는 종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선한 사람이 곤란하면 답답한데

이 소설은

그레 이 녀석 어떻게 빠져나가나 보자 하면서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하지만 않은 사람이 '나' 일수도 있다. 나야말로 환경에 관심 많다고 해놓고 돌아보면 - 왜 관심 많았을까...?

초반에 흘려둔 복선들이 뒤로 갈수록 하나씩 풀리는 구성도 탄탄하다.

에필로그까지가 포함해 읽어야 완성되어서 결국 '아!'를 외치고 말았다.

작품은 단순 경고를 넘어 우리에게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묻는다.


주인공 헬야드는 '멸종 산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다.

'멸종'의 개념이 바뀐다는 것.

- 실제 동물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의 데이터가 남아 있는한, 멸종이 아니다!

33p. 사람의 뇌를 스캔하는 것은 언젠가 그 사람을 뭔가 썩지 않는 새로운 형태로 되살릴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빛집박쥐나 민다리 도마뱀의 뇌를 스캔하는 것은 그 종 전체가 멸종한 후에도 스캔 데이터가 존재하면 법적 또는 규제적 맥락에서 그 종이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고 편하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사랑의 행위이고 후자는 핑겟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 제도가 발표되면 멸종 크레딧의 가격이 하락 할 것이라 예상하며

자신이 속한 기업의 크레딧을 몰래 팔아버리고, 후에 가격이 하락했을 때 다시 사들일 생각으로

공매도를 한다. 어찌됐든 기업이 필요로 하는 크레딧 갯수는 보존될 것이니 횡령이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멸종위기종의 데이터가 보존되어 있는 바이오 뱅크들이 해킹으로 인해

모든 자료가 날아갔다.

= 멸종 크레딧 비용이 폭등한다.

= 헬야드는 망했다.

게다가 독쑤기미 멸종을 위해 확보해두었던 13크레딧이었는데 (지능이 있는 생물은 크레딧 비용이 더 비싸다)

독쑤기미는 지능이 높았고,

어처구니없게도 방금 서식지가 파괴되었다.

이제 헬야드가 할 일은 독쑤기미를 찾아내 멸종이 아님을 밝히고, 크레딧을 쓸 일을 없애는 것이다. 들키기 전까지.


헬야드는 어쩌다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가?

그는 미식가인데

환경 파괴로 이제 '진짜 음식'을 즐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와인을 마시고 싶어도 포도 산지가 기후 온난화로 더 이상 포도가 익지 않고

초밥을 먹고 싶어도 생선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진짜 음식을 먹고 싶으면 어마어마한 거금을 내야 한다.

기술적으로 흉내낸 음식들은 맛이 없다. 너무 맛 없어서 음식 맛을 잊게 만드는 약을 복용할 정도.

이 부분이 정말 스릴러라고 느껴진 것이, 이 현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초콜릿이나 커피 원두가격이 폭등했다. 앞으로는 커피를 못마실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즐기란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이 소설은 가능한 미래 일들을 적절히 섞어

독자를 웃음과 불편함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도록 만든다.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은

당연히 동물을 보호해야 하며, 생물 다양성은 중요하고, 파괴하는 이들은 악인이라며

당위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등장인물들도 끊임없이 자본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토론한다.

독자는 어느 편을 들지 강요받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게 만든다.

바꿔말하면 생명이 소중하단 당위성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요즘 세태를 비꼬는 것 같다.

질문이 계속 생겨, 독서 모임 도서 선정에도 좋을 듯 하다.

140p. 인간들이 이름조차 모르는 생물들의 멸종이 왜 나쁜 일인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문적인 주장이 있었지만, 그런 주장은 항상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이론적으로 따지면 모든 생물종은 생태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므로 어떤 종을 제거하면 예측할 수 없는 연쇄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제거된 곤충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다른 수십 종의 곤충이 그 자리를 기꺼이 채울 것이다.


읽는 동안 웃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원한다면, 즐겁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80p. 우리는 파괴를 멈추지 않잖아요. 우리에게는 가망이 없어요. 동물들이 한 번은 이겨야 해요.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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