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노비 계급은 1801년(순조 1년), 공노비를 해방하라는 순조의 명령에 의해 양인 계급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리고 1886년(고종 23년), 고종은 노비 세습제를 폐지하여 신분제 폐지에 대한 초석을 다졌고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의 신분제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렇게 현재, 표면적인 신분제도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갈아만든 천국>은 타고난 재능으로 기득권층이 되고자 하는 무한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비극과 희망을 담은 책이다. <갈아만든 천국>은 마법에 재능을 가진 마법사들이 등장과 함께 마력 등급이 성공의 기준, 척도가 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타고난 마력으로 주변인들의 시기와 질투, 기대와 동경을 받으며 살아온 무한의 이야기와 그의 역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한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작품은 연작소설과 같은 구조 덕에 잘못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또한 마법 능력과 역장이라는 주요 메타포를 통해 두 소재가 현실의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해 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심너울 작가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판타지가 가미된 사회파 소설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이다.
<이번 한번은 살려드립니다>는 전작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오해받아 진짜 살인청부 의뢰를 받게 된 핀레이가 무사히 사건을 마무리한 후, 발생한 문제로 인해 또 한 번 대위기에 놓이게 되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오해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무사히 마무리한 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소설 작가 핀레이. 하지만 다크 웹 커뮤니티에 전남편 스티븐을 죽여달라는 익명의 살인청부 의뢰 글이 올라오면서 핀레이의 일상은 또 한 번 뒤틀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아가기 위해 온갖 트집을 잡는 스티븐이 죽도록 밉지만 아이들의 아빠가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는 핀레이. 과연 그녀는 스티븐을 구하고 스티븐의 청부살인을 의뢰한 익명의 누군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
서윤빈 작가의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OTT 서비스처럼 장기 임플란트 구독 서비스가 제공되어 이론적으론 영생이 가능해진 한국에서 구독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의 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유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장기 임플란트가 구독 서비스라는 매력적인 상황 설정과 영생이 가능한 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들의 곁을 지키는 유온의 담담함이 이 책의 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수족관>은 아카리라는 소녀를 만난 소년 류이치가 겪게 되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다.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귀갓길에 탄 버스에서 아카리에게 지갑을 도둑맞은 류이치. 이 사건을 시작으로 아카리라는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 류이치는 결국 아카리의 수족관에 발을 들이게 된다. 과연 류이치가 도착한 아카리의 수족관은 어떤 곳일까?가랑비에 옷 젖듯 정신 차린 순간, 두 인물의 감정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이 작품은 매 장면의 색채와 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인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당장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어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서사와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매년 여름, 곱씹을 작품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자신을 백조라 여기며 백조 무리 속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미운 오리 새끼처럼 가족 또는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의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고 천대받는 대상, 즉 무리 속 이질적인 존재를 '블랙 쉽'이라 지칭한다.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따돌리는 건 옳지 못한 일이지만 만약 그 존재가 위험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면, 하얀 양들을 모두 잡아먹을 존재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하얀 양의 탈을 쓴 위험한 다섯 블랙 쉽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권세가의 딸들로 구성되어 있는 독서모임 '바벨의 모임' 멤버들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엮어놓은 연작소설로 어딘가 뒤틀려버린 블랙 쉽들의 섬뜩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연 하얀 양의 탈을 쓴 블랙 쉽들의 축연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마지막 이야기<덧없는 양들의 만찬>까지 읽어야 비로소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재미있는 구성을 가진 이 작품은 현실이란 탈을 쓴 몽상가들의 음습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장편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읽기엔 부담스러우나 완성도 문제로 단편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은 꺼려지는 독자들이 읽기에 알맞은 작품으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스릴러 입문적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