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인의 바다》를 읽는 동안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이해인 수녀는 따뜻하고 맑은 시를 쓰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책 속에는 아직 젊고 서툴고 흔들리는 수도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 책은 1976년 종신서원 전후에 기록한 일기와 묵상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부산 광안리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사색했던 시간들이 담겨 있다. 거창한 사건이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민들레에 대한 기도였다.

“당신 외엔 가진 것이 없는 아주 작은 민들레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무엇을 그렇게 많이 가지려고 애쓰며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민들레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어디서든 피어나고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씨앗을 보낸다. 이해인 수녀는 그런 민들레처럼 살아가고 싶어 했다. 나 역시 더 높아지고 더 커지는 삶보다 내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수녀는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여행은 단순히 먼 곳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다. 산과 들, 이웃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읽으면서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 여행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해인 수녀의 솔직함이었다. 어느 수녀가 자신을 느리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처받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실 누구나 비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그 겸손함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옥상에 올라가 바라본 풍경을 적어 놓은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얀 도라지꽃, 멀리 보이는 바다, 뛰노는 아이들, 수박을 흥정하는 사람들, 오래된 간판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의 시선이 닿는 순간 하나의 시가 된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포도 이야기는 이 책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저도 당신 안에서 익어 가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포도는 하루아침에 익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며 천천히 익어 가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익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의 바다》는 조용한 책이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깊은 힘이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고 있던 순수함과 감사함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책이었다.

가끔 삶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 마음이 시끄러울 때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이다. 민들레처럼 소박하게, 포도처럼 천천히 익어 가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남겨 준 아름다운 산문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대화 -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침묵의 대화>는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책이다. 우리는 기도를 무엇인가를 구하는 행위로 생각하지만, 이 책은 기도를 ‘내려놓음’으로 정의한다. 나를 붙잡고 있던 욕망과 불안,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도 조용히 놓아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무의식적 행동 동기와의 투쟁”이라는 문장은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산다고 믿지만, 사실은 비교와 욕망, 불안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거짓 자아의 만족은 잠시뿐이다”라는 문장은 내가 추구해 온 성장 속에도 ‘보여지고 싶은 나’가 섞여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관상 기도는 무언가를 이루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다. 실제로 침묵 속에 앉아보니 내 안에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소음이 가득했다. 그때 기도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내 안의 소음을 줄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이 책은 관상 기도를 치유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억눌린 감정과 상처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흘러가도록 돕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해가 아닌 직관으로, 머리가 아닌 존재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결국 책은 나에게 말한다. 나아지려고 애쓰기보다, 이미 충분한 존재로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기도는 관계이며, 신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아주 조용한 침묵 속에 있다.

"그리스도교 금욕의 핵심은 무의식적 행동 동기와의 투쟁이다.", "거짓 자아가 원하는 바를 획듯하면서 생기는 만족은 그게 무엇이든 잠시뿐이다.", - P2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은 모든 이를 무한히 염려하시고, 언제나 현존하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아이가 들어야 할 말은 바로 이것이다." - P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하지 않아도 참 괜찮은 어른
이서원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문득 겁이 날 때가 있어요. 


훌륭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친 제게 이 책은 말해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참 괜찮다"고 말이죠. 🌿


가장 마음에 남았던 구절은 "인생은 때로 해석학이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같은 상황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루한 노동’이 될 수도, ‘즐거운 서울 구경’이 될 수도 있다는 택시 기사님의 말씀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결국 좋은 어른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즐겁게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오늘부터 저도 제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한뼘 자랐네요 


#완벽하지않아도참괜찮은어른 #마디북 #이서원 #어른공부 #책추천 #독서기록 #북스타그램 #마음치유 #인생문장 #나답게살기 #힐링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지도 - 크게 생각할 줄 아는 어린 철학자들의
제마 엘윈 해리스 엮음, 김희정 옮김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의 끝없는 "왜요?" 질문에 말문이 막힌 적 있으신가요? 

어른들도 답하기 어려운 세상의 본질적인 질문 94가지를 담은 책, **<생각의 지도>**를 읽어봤어요. 과학, 철학, 경제를 넘나들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명쾌하고 따뜻하게 답해주는 책입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시간'조차도 빅행이 만들었다는 사실! 로 아이들과 토론을 해 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왜 돈을 사용하나요?"

피자 한 판을 사기 위해 물건을 맞바꾸는 복잡한 세상 대신, 우리 모두가 '가치 있다'고 합의한 약속이 바로 돈이라는 점! 돈에 대해 설명할때 딱 좋은 책이었어요. 


"우리는 왜 영원히 살 수 없나요?"

이 철학적 질문은 항상 아이들이 고전을 읽으면 하는 질문이에요.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지구는 금세 누울 자리조차 없는 붐비는 집이 되고 말 거예요. 유한한 삶이 주는 소중함을 생각하게 합니다.”라는 말로 아이들과 토론하게 좋았어요. 


아이와 함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각의 도구' 같은 책이에요. 호기심 많은 아이를 둔 부모님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


#생각의지도 #어린이철학 #reda #북스타그램 #초등추천도서 #질문하는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나를 멈춰 세우는 순간이 있다.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 책이었다. 시편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시편을 ‘아는 것’과 ‘다시 만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 마음에 걸린 것은 ‘거룩함’에 대한 설명이었다. 거룩함이란 황홀함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따로 떼어놓은 것’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말 앞에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거룩함을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시편의 거룩함은 세상과 단절된 신비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쉽게 소비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구별된 존재였다. 그 순간, 내 삶 속에서도 조용히 따로 떼어놓아야 할 시간과 마음이 떠올랐다.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고,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순간들 말이다.


책을 더 읽어가며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야훼’라는 이름이었다. 시편의 하느님은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억압받는 백성을 위해 개입하신 인격적인 존재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시편의 기도는 멀리 있는 신에게 던지는 외침이 아니라,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분께 건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시편의 언어는 때로는 원망처럼, 때로는 탄식처럼, 또 어떤 순간에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솔직하다. 그 모든 언어를 허락하시는 분이 바로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또렷해졌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해석은 내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영광은 높은 곳에서 번쩍이는 빛이 아니라, 세상 안에 머무르며 드러나는 현존이었다. 하느님의 영광은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한가운데 체류한다. 슬픔 속에서도, 불안 속에서도, 기도의 언어가 멈추지 않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계신다.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다시 기도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시편은 믿는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내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그리고 언어를 끝까지 듣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어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