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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이 제일 좋아하는 맛 ㅣ 사계절 웃는 코끼리 17
오주영 지음, 김고은 그림 / 사계절 / 2015년 7월
평점 :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항상 즐겁게 보고 있는 사계절 웃는 코끼리. 책도 얇고 삽화도 많아서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딱 좋은 것 같다.
그 중에 17권. 거인이 제일 좋아하는 맛? 그게 뭘까? 제목도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표지부터 참 인상적이다. 컵에는 아이들이 잔뜩 담겨있고 웬 아줌마 한명이 커다란 손에 달랑달랑 들려있다. 그 아줌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도 제각각...
글을 쓰신 오주영 선생님은 이 이야기 속 조 선생님처럼 서투른 걸 감추려고 마음을 꽁꽁 닫아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말 걸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쓰셨다고 한다.
호두는 오늘도 어김없이 조 선생님의 새하얀 새치를 뽑고, 예쁘게 땋은 보리의 머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힘껏 잡아당겨 조 선생님한테 혼나고 만다.
조 선생님은 호두 같은 말썽딱지가 제일 싫었고, 나머지 아이들이 다음으로 싫다. 한마디로 아이는 다 싫다.
“애들은 늘 선생님 옆에서 윙윙대며 거추장스럽게 굴었어요. 틈을 노려 따끔하게 무는데도 도가 텄지요.”
‘이 성가신 녀석들을 바람이 휙 쓸어가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바람이 불어 닥쳐 선생님과 아이들을 휘감아 들어올렸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떨어진 곳은 거인의 무릎 위. 그런데 이 거인은 사람을 먹는게 아닌가!? 거인이 조선생님을 들어 올려 먹으려 하자, 선생님은 자신은 맛이 없다고 조그만 놈들을 먹으라고 한다.(선생님 나빠요!)
“세상엔 똑같은 애들이 없어요. 다 다르죠. 그래서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각기 다른 스물 다섯가지 맛 중에 하나는 거인을 만족시킬 수 있겠죠.”
선생님은 거인에게 아이들 하나하나를 붙들고 장점을 소개한다. 엉? 그러고보니 그렇게 아이들을 싫어하는 조 선생님이 아이들 각자가 뭘 잘하는지는 너무 잘 알고 계시네?
그런데 여기서 반전, 거인이 좋아하는 맛은 아이들처럼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아니라 조선생님처럼 고약하고, 딱딱하고, 얼얼하고, 시금털털하고, 짜고 구린 맛이었다!!
결국은 꼼짝없이 잡혀먹겠구나 싶었는데, 호두의 활약과 더불어 아이들의 도움으로 조 선생님은 살아남는다.
“안돼요. 선생님을 먹지 말아요.”
“우리 선생님이란 말이에요!”
거인은 투털대며 손으로 아이들과 선생님을 쓸어버리고 아이들과 조 선생님은 다시금 운동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조 선생님의 마음에 변화가....
‘호두와 아이들이 더는 골치 아프고 짜증스럽지 않았어요. 도리어 활기차고 씩씩하고 ....심지어는 사랑스러워 보였어요.’
사실 조 선생님은 늘 빈 집으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는 매일을 보내는 쓸쓸한 사람이었다.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녹으며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이젠 조 선생님 스스로 달라질 때였어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말썽딱지 두 아들들을 귀찮아하고 나쁜 면만 보고 혼내려고 하는 내 자신이 겹쳐져 보였다. 오늘도 사실 큰 아이를 크게 혼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혼낼 일은 아닌데,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오히려 잘 보듬고 타일러 주었어야 되는데 또 내 감정에 휘말렸구나 하고 후회막급이다. 조 선생님이 내 모습이다ㅠㅠ.
작가 선생님은 아이들의 마음도 참 잘 대변해 주셨다.
일부러 그런게 아닌데, 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하나도 몰라요. 철이는 공처럼 동그란 모양만 보면 가만있지 못해요. 통통 두들겨야 해요. 보리는 문방구를 보면 그냥 가지 못해요. 예쁜 연필이나 스티커를 골라야 해요. 반장은 남의 실수를 보고 가만있지 못해요. 선생님한테 일러야 해요. 호두도 다른 애들과 똑같아요. 눈앞에서 살랑이니 당겼을 뿐인데. 정말 땋은 머리가 나빴는데.
풋, 웃음이 나면서도 아이들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걸 어른이 이해 못하는거구나. 우리 아이들도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래서 그렇구나....혼내기 전에 앞서 좀 더 아이들 마음을 공감해줘야겠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어디가 제일 재미있었어? 하고 물어보니 큰 아이는 거인한테 잡혀있을 때 조 선생님이 맛을 설명하는 부분과 사실은 거인이 좋아하는 맛이 조 선생님처럼 고약한 맛이었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럼 소스는 어때요? 나는 백가지 맛이 나는 소스를 만들 수 있어요. 찍어 먹기한 하면 되지요. 달콤한 맛, 상큼한 맛, 고소한 맛, 부드러운 맛, 매콤 맛, 짭조름한 맛, 쌉싸름한 맛, 밍밍한 맛...”
“고약한 맛이에요. 딱딱하고, 얼얼하고, 시금털털하고, 짜고, 구려서 저를 먹으면 입에서 썩은 내가 날 거에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맛에 대한 묘사,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한 묘사들이 참 자세하고 맛깔난다. 아이와 맛에 대한 묘사를 같이 읽어보면서 깔깔대기도 했다.
김고은 선생님이 그리신 그림도 참 익살스럽고 정감이 가 책을 한층 더 재미있게 읽은 거 같다. 꼭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 책에서 그림이 빠지면 단팥 없는 붕어빵이 될 것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배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
“세상엔 똑같은 애들이 없어요. 다 달라요.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애들만 말썽딱지인가요? 어른 중에도 말썽딱지 친구가 있잖아요. 사람들은 유별난 데가 하나씩은 있어요. 난 그 별난 점이 좋아요. 애들이든 어른이든.”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맛도 있고, 다양한 맛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애들도 어른도 다 유별난 데가 하나씩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엄마도 유별난 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