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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난민이 되다
이은정 지음, 이강훈 그림 / 풀빛 / 2024년 3월
평점 :
3월에는 3·1절이 있는 달입니다.
모두 태극기는 게양하셨는지요?
‘독립 운동가, 난민이 되다’
난민의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고 합니다.
굴곡과 한이 많은 민족, 오랫동안 지난한 세월을 견뎌 낸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역사가 있죠.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순간에 나라 잃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빼앗겨 이미 조선에서 난민이 되었지만, 독립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타지로 가 또 다시 난민을 자처했던 분들입니다.
이 책은 그런 독립운동가들의 해외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여주고 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 해외까지 뻗어있는 일본군의 감시 속에서 조국의 독립만을 위하여 사는 삶에 얼마나 난관이 많았을까요.
며칠만 여행을 가도 조국이 그리운데, 목숨을 건 그들의 삶은 얼마나 긴장되고 서러웠을까요.
이 책에서는 여덟 분의 독립운동가가 소개되어 있어요.
중국에서 비행사가 된 권기옥, 미국에 한인 노동자 캠프를 세운 안창호, 만주에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김구,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홍범도, 러시아에서 조선인을 변호한 최재형,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한 남자현, 시베리아 벌판을 달린 김경천.
이분들 중에서 남자현 선생님을 자세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남자현은 3·1운동 참여를 계기로 만주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녕 만주로 가야겠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단발령을 철회하라고 외치던 남편이 일본군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의병에 가담했던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매 맞아 죽었고요. 가족뿐 아니라 우리 백성들을 짓밟고 있는 일본 놈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니 그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지어 주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만주로 간 남자현도 난민의 서러움을 많이 느꼈겠지요. 그럴수록 남자현은 독립운동 단체나 군사 기관 등을 다니며 열심히 군자금을 모으고,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의 옥바라지도 자처했어요. 만주에 교회 열두 곳을 세워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했답니다.
남자현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는 마음으로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난민이 된 서러움을 딛고 뜻을 하나로 모아서 대업을 이룰 수 있었겠지요.
나라를 구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이 책을 읽고 독립운동가들의 해외에서의 삶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