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불을 진다는 게 어떤 말일까. 단순히 뜨겁고 위험한 것을 넘어서서 그것을 지고 있다는 것. 나의 위험, 혹은 우리의 위험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그 모습을 등에 불을 진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인쇄소 화재, 불타버린 책. 그 사건 이후 마주하는 사람들. 등장인물들은 '왜'가 아니라 화재 이후 '어째서'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시선이 고정된다. 조금 더 근원적인 곳을 봐야하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고 거기에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던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는지에 급급하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뿌연 연기에 가로막힌 것처럼 사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주장만 아우성쳤다. 어쩌면 진실이란 게 그런것일까.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것. 그들의 말속에는 각자의 진심이 담겨 있다. 사실이 아닌 진심. 그렇기에 더 혼란스럽다.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다 할말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이 모이면 사건과 동떨어져 버린다. 범인이 노린 건 그런 면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미스터리한 장면,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 각자가 처해진 환경에서 보이는 사회적 행동까지 두루 다 담은 작품이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린 소설이었다. 좋은 문장들도 많으니 한국 소설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등에 불을 지고> 추천드린다.****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