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라는 소설같은 철학서적으로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 소설. '알버트'라는 남자 주인공이 호수가 보이는 오두막에서 이틀에 걸쳐 쓴 유서를 소설처럼 실어 놓았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반쪽인 에이린을 만났던 시절부터 회상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일들, 숨겨왔던 비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정을 꽤 담담하게 서술한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이라는 병 때문에 몇달 내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알버트는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자신이 이해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틀에 걸쳐 유서를 쓰면서, 알버트의 심정에 변화가 생긴다. 과거 에이린이 호수 한가운데에 멈춘 나룻배에서 절망에 빠졌던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에이린은 '너(알버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슬픔과 고통을 맞이해야 함을 그 호수 한가운데서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알버트가 자살을 해버린다면, 자신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단순하게 정리되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남겨진 사람들은 갑작스레 슬픔과 고통을 선고받아야만 한다. 알버트는 그걸 깨달음으로서 심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 알버트를 사랑하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릴 슬픔과 고통이 조금이나마 더 늦춰질 수 있는 것이다. 알버트를 통한 '나'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이 알버트를 통해 느낄 '너'의 죽음엔 '사랑'이라는 차이가 있다. 불치병으로 시간이 지나 가족에게 짐이 될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나'의 죽음엔 사랑이 없다.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나'의 죽음이 '너'의 죽음이 되었을 땐 죽음과 동시에 사랑의 소실 또한 발생한다.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한다. '너'의 죽음은 단순히 '나'의 죽음 이상으로 사라지는 게 많다는 것을. 처음엔 소설을 읽듯이, 두 번째는 죽음과 사랑에 대해 사유하면서 읽는다면, 책 뒤에 실린 강신주 철학가의 말마따나 두 번 읽어도 두 번 다 다르게 느껴질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