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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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사망한 다이스케. 그의 죽음을 정리하다가 알게된 그는 다이스케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인가. 변호사 기도는 다이스케로 살았던 한 남자의 과거의 발자취를 의뢰받는다.
생판 몰랐던 사람과 과거를 교환해서 사는 것. '다이스케로 살았던 그'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한 남자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기도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한 남자다.
다이스케로 살았던 한 남자의 과거는 대개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도박에 빠져있고, 한탕을 위해 돈을 꾸려다 실패한 그 분노로 한 가정을 파괴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면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심히 이해가 된다. 타인이 씌우는 프레임이 없는 아주 평범한 과거를 지닌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게 큰 바람이 될 수도 있다. 다이스케로 살았던 남자는 다이스케의 과거를 그렇기 때문에 택했으리라. 그는 자신의 과거를 다이스케의 과거로 덮고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이스케로 살았던 삶이 길진 않았지만 과거의 족쇄 때문에 불행하게 살던 그가 과거를 바꾼 뒤로는 평범하게 살았고 행복해보이기까지 했다하니, 과거를 교환하는 행위는 범죄일지언정 그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남자, 기도는 다이스케였던 남자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재일이라는 자신의 출생과 변호사로서의 삶, 그리고 그의 가정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진다.
의뢰인인 리에라는 여성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다이스케의 전 여자친구였던 미스즈에게는 설레는 수준까지 마음이 흔들리지만 오히려 그런 흔들림을 통해서 가정에 더 충실하고자 마음먹는다. 소설의 막바지에 미스즈가 대놓고 기도의 예의바르고 성실한 면때문에 좋아했다는 뉘앙스로 하소연까지 하는데 기도는 그것이 자신인 줄 알면서도 '그 남자'라고 타인화시키는 것으로 미스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다. 아마 이 장면 이전에 있었던, 아내 가오리와 나누었던 가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진솔한 대화가 없었다면 기도는 미스즈의 마지막 한방에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가오리 또한 기도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은 전혀 이혼할 생각조차 없었고, 오히려 기도가 외도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나중에는 자살하지 않을까하는 과한 걱정까지 한 것에 대해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다.
과거를 바꾸는 불법적인 행위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다이스케로 살았던 남자도 그 행위를 통해 행복을 얻었고, 그와 함께 했던 이들도 그를 좋아했으며, 실제 다이스케 또한 자신이 싫어했던 과거를 타인에게 양도함으로써 나름대로 원하는 삶을 얻었다. 기도 또한 여러 차례 이성에게 흔들리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모두 뿌리치고 가정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다잡았으니 이 얼마나 훈훈한가.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과거를 알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겪어온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 현재만 알면 되는 것이라는, 내 나름의 깨달음도 얻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과거를 캐묻지 말자. 그 과거로 만들어진 지금 바로 그 상태의 상대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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