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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교토를 여행해 본 사람들은 안다. 오래된 도시, 그리고 그 오래된 도시 전체에서 물씬 풍겨오는 일본의 느낌. 그것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들만이 아니다. 오래된 건물 속 대를 이어가며 기술과 전통을 이어가는 노포들이 있기에 지금의 교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노포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금까지 이어온 가게들은 선대가 잘 닦아놓았다는 것이다. 이미 장사가 적정 궤도에 올라가 있어서 그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새로 가게를 여는 사람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적인 노력도 있지만, 금전적인 노력도 포함된다.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그것도 교토라는 대도시에서 가게를 한다는 것은 만만치않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게를 물려받는 것은 이런 금전적인 고민을 상당히 덜어준다. 가게를 꾸려가려는 사람에게 이것은 아주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미 선대부터 내려오는 단골과 입소문 덕분에 고객을 잡기 위한 노력 또한 줄어든다. 물론 기존의 고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건 새로운 가게나 오래된 가게나 똑같이 투자되어야 하는 노력이다.
다음으로는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의사가 없었더라도(다른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노포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은 단순히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다시피 그런 것들이 도시의 문화를 이루는 근간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가업을 이은 현 세대들의 인터뷰가 진심으로 가업을 잇고 싶어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에 정말로 만족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업종 간 유사점이 없는 곳들의 인터뷰마저도 대답들이 비슷한 것을 보면, 겉으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은 일본인의 정서만 볼 수 있었달까.
마지막으로는 대체로 위치가 좋다(그렇지 않은 매장도 있긴 하다). 아무리 대대손손 이어오는 매장이라도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 몰락할 수 있다.그러나 선대가 시작한 가게가 지금에 와서는 번화가 혹은 번화가와 가까운 곳,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밖에 없는 곳(신사 근처, 축제장 근처 등)이 대부분이다 보니, 내가 그 가게의 자손이라도 공부를 해서 물려받고 싶은 생각이 들겠다 싶었다.
물론 이러한 가게들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에는 그 가게만의 독특한 물건, 음식, 분위기, 추억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들이 노포에 묻어들 수 있게 노력한 주인과 손님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존재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겉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세대가 노포를 이어받아야 하는 이유나 역사적 사건과 가게의 관계보다 이 가게가 다른 가게처럼 평범함 속에 남지 않고 어째서 대대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특별함 혹은 고유함이라 부를 만한 것들을 더 소개해줬으면 좋았지 않았나 싶다.
책의 내용에는 각 가게들이 내세우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사연이 담기거나 매니아스러운 가게는 노포가 아니더라도 많다.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매니아적 취향에서 끝나는 가게가 아니라 손님을 매료시킨 퍼스낼리티가 될 수 있었던 내용을 자세하게 적어줬더라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