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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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살인사건 :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범인은 흉기로 입소자 19명을 살해하고 입사자와 직원등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2020년 범인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오는 글 :
2016년 일어난 사가미하라 살인사건의 범인이 법원에서 한 언동이, 구마가야/장애당사자 연구자는 용서되지 않았던 이유중 하나는 , 그가 본인의 행위에 대해 자신의 의지로 행했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아니, 오히려 그가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에만 귀속시켰던 점이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애 당사자 연구자/구마가야가 이 책을 “나오는 글”에 언급한 위 내용이 듣는 순간 이해가 가능할까? 어려운 개념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가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에만 귀속시켰던 점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통의 우리는 범인을 색출해서 해결로 삼는데 익숙하다, 범인도 찾았고 자신의 의지로 행했음을 인정했음에도, 자신의 의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삶의 방식을 용서할 수 없다니.
쉽게 나부터 출발해서 학교에서 혹은 공동체/사회에서 모두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의 의지의 다짐이 잘 이루어 질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모습이 보통이 아닌던가.
이런 의문점에서 출발해 왜 자신의 의지에만 귀속시킴을 용서할수 없는지 고쿠분과 구마가야의 대담을 탐닉하고 나오면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에만 귀속시켰던 점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자연스럽게 책임의 생성을 느끼게 된다.


- "괜찮아~칠 가이(Chill Guy)야,"
요즘 유행하는 칠가이이다. 밈에 자주 등장하고, 비슷한 발음만 보이면 chill로 대체하곤한다. 칠(Chill)은 ‘차갑게 하다’라는 뜻의 단어로 흔히 흥분된 감정을 삭이고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유행에 큰 의미가 없다고 볼수도 있지만,완벽함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 “스트레스 받지마”,“괜찮아, 별일 아냐”를 기저에 깔고 있다.

- 성인ADHD의 증가,
특별히 눈에 띄는 산만함, 과잉행동, 충동성을 느끼지 않았는데, “나, 성인ADHD래” 라며 갑자기 커밍아웃하며 스스로를 성인ADHD 위치시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본 책에서도 ASD(자폐스펙트럼 장애)가 30배 증가하고, 진단수요가 높아짐을 논한다. 사회 권위가 뭐든 제멋대로 결정하는 시대 그리고 그에 대한 반성이 지나치게 개인화된 이 사회를 낳았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름 떠올려본 위 두 현상은 책임의 생성과 맥락을 같이한다. 책속의 아야야씨와 같은 지각의 재구성과 행동의 측면에서 충분히 우리의 상황도 맥락을 함께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본문에서 아야야씨는 어떤 행위가 쉽지않다. 의지라고 하는 것을 아야씨는 고해상도라고 표현하는데,신체안에서 고해상도의 입자로 둘러싸여 일종의 주체성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포던스(행위를 촉구하는 정보들)가 신체 안쪽/바깥쪽에서 지나치게 대량으로 들어와 모순된정보가 되기도하고 '~하고싶다'는 하나의 의지로 묶어내기가 좀처럼 되지 않는다.

우리들도 실은 이런 과도한 행위를 촉구하는 정보들 속에서 스스로 의지를 내어 해내려하고 해내야만 하니 지치는것은 물론 주체형성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주체가 있어 자유로이 무언가를 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본문에서의 '의지' 를 다시 짚어본다. 의지는 수많은 과거가 올라올 수 없는 상태를 만들고 현재부터 시작하고 싶어하는 욕망이자 힘이다. 이 의지의 힘으로 현재, 미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혹은 강요당한다), '무로부터의 창조' 이것을 통해개인이 해결하려고 하니 Chill로 위로하고, 사회권위를 빌리거나 혹은 스스로를 의료적 모델로서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 또 다른면으로 보면 'Chill Guy'와 '(자처하기도하는)성인 ADHD'의 증가는 혼맹과 같다. 혼은 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자기를 자기로 인식할 수 없는 상태말이다. 세계속에서 함께살고 다른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여러 생각들과마음들을 잘 결정하며 나름의 동선으로 잘 살아아가고 있는듯 하지만 실은 나는 일상이 지친다고 쉽게 말하고, 누구와 사는것인지 무엇을 어떻게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혼이박힌? 아니 혼을 인식하는 다른이에게 사물처럼 이용되기 쉽다.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나에게 적용가능 한 사례도 많으니 편리하고 좋아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좋지만은 않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니 우울증이 필연적 귀결일 수 있다.

“오늘날 누구나 손쉽게 근거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그중 어느것을 믿어야 하는가 물으면 갑자기 장벽이 높아져서 여간해서는 일상에 편입될 수 있는 지식이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식이 된다는 건 더욱 어렵겠지요. 당사자 연구도 단순한 지식이 되지 않도록 몸으로 배우는 것을 중시하고 경험을 통해서 믿을 수 있는 앎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러한 자리잡지 못한 데이터 절대주의를 어떻게 근거잡고 관계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P.302

본 책의 기본적인 태도는 문제의 행동과 그 사람을 합치하지 않고 분리하여, 사고를 해프닝으로 바라보고, 그 매커니즘을 찾아간는 방법을 논한다. 예를 들어 모든 해프닝(방화현상)은 어떤 물질이 (산소와)결합하여 빛과 열을 내는 (혹은 열을 내지 않는) 연소(소화)현상이다.그러니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켜 죄를 짊어져야함이 아니다. 타인의 관점을 통해 그러한 하나하나 근거잡고 관계할지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중동태(주어가 장소가 되는 과정 / 주체를 장소로 삼아 자기가 구성되는 과정) 의 논의다. /(이곳에 옮기기는 요소요소 다시 소환하고픈 지점들이 너무 많다)
<타자와 잘 맞는 조건>을 침팬지 실험을 예로 설명하는부분 또한 흥미롭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 ’아, 이건 나다‘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자기를 자기로서 인식할 수 있는 겁니다...흥미롭게도 오직 혼자 길러진 침팬지는 거울을 통한 자기인식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 게다가.. 유리너머로 다른 침팬지들이 보이는 환경에서 침팬지를 고립시켜 키우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 이 침팬지는 다른 개체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통한 자기 인식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P.228
상상지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Becoming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사건으로 돌아가서 “지나치게 자신의 의지에만 귀속시켰던 점이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구마가야의 감정화의 과정에 잠시나마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울러 친절하고 상세한 주석과 번역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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