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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2월
평점 :
의지라는 독박, 책임이라는 장소
2016년 사가미하라. 한 남성이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에서 19명을 살해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조금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문제였다. 범인은 맥락도, 관계도, 타자의 실존도 지운 채, 오직 자신의 의지로 판단하고 청소하듯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 구마가야 신이치로가 짚는 불편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의지를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지를 너무 철저히 긍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범인을 찾고, 동기를 밝히고, 처벌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스스로의 의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면 사법적 책임은 완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과도한 의지'가 오히려 용서받을 수 없다면? 이 역설에서 출발해 고쿠분과 구마가야의 대담을 따라가다 보면, 자명해 보이던 의지의 사기성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의지주의의 폭력성은 사가미하라 범인처럼 극단적인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일상의 두 가지 증상으로 살고 있다. 하나는 '칠 가이(Chill Guy)'다. "스트레스 받지 마, 별일 아냐"라는 자기 방어. 다른 하나는 성인 ADHD 진단 수요의 폭발적 증가다. "나 ADHD래"라는 말이 커밍아웃처럼 발화되는 장면을 요즘 자주 본다. 그것은 단순한 진단 공유가 아니다. '내 의지로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고백이고, 그 고백을 의학적 언어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당사자 연구의 선구자 아야야 씨는 이것을 '고해상도의 입자'라는 말로 표현했다. 신체 안팎에서 밀려드는 과도한 어포던스 때문에 그것을 '~하고 싶다'는 하나의 의지로 묶어내지 못하는 상태. 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그 안에 있다.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오직 '내 의지'만으로 살아남으려다 주체는 형성되지 않고 영혼만 지쳐가는 것, 그것이 Chill Guy이고 자처된 성인 ADHD다.
이 상태를 혼맹(魂盲)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영혼은 있으나 자기를 자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타인과 연결되어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문득문득 일상이 지치고 내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길을 잃는 상태. 맥락이 거세된 삶은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진짜 만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서 고쿠분과 구마가야의 대담이 끌어오는 개념이 중동태(中動態)다. 중동태는 주어가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가 장소가 되어 자기가 구성되는 과정이다. 침팬지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거울 앞에서 자기를 인식하는 능력은 고립되어 자란 침팬지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다른 침팬지들을 '보기만' 한 침팬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관찰로는 '되기(Becoming)'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자와 실제로 부딪히는 구체적인 장소 없이, 주체는 구성되지 않는다.
당사자 연구가 취하는 핵심 태도는 바로 이 장소를 회복하는 일이다. 문제의 행동과 그 사람을 분리하고, 사고를 개인의 사악한 의지로 환원하는 대신 그것이 발생한 메커니즘을 함께 추적한다. 범인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관점을 통해 어떻게 관계 맺고 해결할 것인가를 도모하는 장(場)을 만드는 일이다.
사가미하라의 범인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는 이제 분명해진다. 그는 관계라는 장소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지웠다. 의지만 남기고 주체를 지운 자리에는 책임이 생성될 수 없다. 책임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