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는 기계는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있을까? - 인공지능을 만든 생각들의 역사와 철학 Editorial Science : 모두를 위한 과학 2
잭 코플랜드 지음, 박영대 옮김, 김재인 감수 / 에디토리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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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는 가능한가
— 인간의 사유에 대해 다시 묻다


아이는 시리와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받았을 때 짜증을 냈다. 그리고 말했다. "나중엔 칩을 심으면 되잖아."
말은 가볍게 지나갔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칩을 심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뇌에 무언가를 더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뇌의 일부를 교체한다는 뜻인가. 교체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는 그 질문을 묻지 않았다. 불편함을 없애는 방법을 말했을 뿐이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검색창에 묻는다. 답이 온다. 우리는 그 답을 받아 적는다. 질문은 사라진다.
기계는 정말로 생각할 수 있는가.


앨런 튜링은 그 질문을 돌려놓았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대신 물었다.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느냐고. 속을 들추지 말고 겉을 보라고.
하지만 겉을 본다는 것은 이미 어떤 포기다. 우리는 기계의 손짓은 볼 수 있다. 안은 볼 수 없다. 그리고 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에게도 이미 알고 있다.
기계가 언어를 다루면, 우리는 그 자리를 채웠다고 말한다. 기계가 학습하면, 또 채워졌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면, 또. 그런데 채워질 때마다 그 자리는 다시 비어버린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그 안에 없고,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조차 말하지 못한다.
기계는 그 빈자리 앞에 서 있다. 그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글을 쓸 때 손은 먼저 움직인다. 생각이 손을 이끄는가, 아니면 손이 생각을 만드는가. 잘 모르겠다. 손이 쓴 문장을 눈이 읽고, 눈이 읽은 것을 손이 다시 고친다. 그 순환 어딘가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른다.
의식은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사고는 의식보다 먼저 있다. 그렇다면 의식이 없어도 사고는 가능한가. 아니면 의식이 없다면 그것을 사고라고 부를 수 없는가. 나는 내 손이 먼저 쓴 문장 앞에서, 이 질문을 피하지 못한다.
 

기계가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동안 인간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 사이, 기계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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