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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가족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일곱살때 운율을 잘 맞춘 시를 써 크게 칭찬을 받고, 우리 가문의 작가님이라는 기대와 부담속에 자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자 엄마, 아빠는 긴 상의 끝에 나를 기숙학교로 보내게 된다.
열살때 간 기숙학교는 감옥생활로 기억될 정도로 끔찍했다. 게다가 거기서 겪은 끔찍한 총기 사고. 사감 신부와 친구 다섯명을 쏘아 죽이고 스스로를 쏜 범인은 그나마 주인공 "나"에게 호감을 갖고 친해지고 싶어했음이 먼 훗날 밝혀진다.
대학에 들어가 만나게 된 여자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지만, 애정없는 결혼이었으므로 당연한 절차처럼 헤어진다. 그러는 동안에 소설을 한편 썼지만 출판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지는 못하고 카피라이터의 길로 접어들어 크게 성공하는 나.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의 기대를 항상 의식하고, 사람을 치유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만은 항상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버리고, 사랑받지 못하는 엄마는 줄담배를 피우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돌아다니며, 남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여동생은 미혼모가 되어 생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가족들의 일과 나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얽히며 이루어지는 이 소설.
행복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어보이고,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각박한 하루하루. 나는 그러한 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아버지와의 일들을 상기하고,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예전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내가 겪는 일들을 통해 옛일을 상기하고는 그것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본다.
이렇게 각박한 내용이지만 책장을 덮으며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제목과는 동떨어지게 가족의 힘을 믿게 되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요양원에 모셔놓은 아버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던 아버지가 15년만에 만난 아내는 한번에 알아보며 고맙다고 말한다. 그동안 돌고 돌아온 과정이 어쨌든 간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나 보다.
나는 어떠한가. 이혼한 아내에게 어마어마한 위자료를 물고, 자식들 양육비를 대야하는 힘겨운 현실이 남아 있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새 삶을 꾸려가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결말이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책을 내는 글쓰기에도 도달할 것 같은 느낌.
과정은 어두웠지만 결말은 밝게 끝난 소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밝을지, 여전히 어두울지...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와 글쓰기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 두가지 모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