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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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 가도 책을 읽을 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이 생기면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창 밝고 고요한데 주림 참고 책을 본다'
달밝은 밤에 배고픔을 참고 책읽는 선비의 모습이 아름답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이 귀하던 시절 책을 사랑해 책속에 파묻혀 책벌레로 살고, 책 속의 구절에서 떠오른 단상, 의문점, 의견들을 파리 머리만큼 작은 글씨로 빼곡이 메모하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며, 존경스런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젊은 이덕무가 자신의 서재에 붙였던 이름, 구서재.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 아홉 가지 활동이란,
독서, 간서, 초서, 교서, 평서, 저서, 장서, 차서, 포서이다.
한자의 뜻을 생각해보면 된다. 독서란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 간서는 눈으로 읽는 것, 초서는 베껴쓰는 것이다. 교서는 교정보는 일, 평서는 책을 읽고 평가하는 일이므로 요즘으로 치면 서평쓰는 일에 해당하단고 할 만하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본인의 글을 쓰고 싶은 때가 오는데 그때 할 일이 저서, 책을 소장하는 장서, 빌려보는 차서, 책들을 바람쐬어주는 포서.

다산이 특히 강조한 것은 초서이다. 다산의 교육방식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초서. 책을 베끼며 자신의 생각도 확장해나가는 공부방식이다. 거기에 더해 열하일기를 가능하게 한 박지원의 메모. 우리가 지금 우러러 섬기는 대학자들은 아주 꼼꼼한 분들이었다. 신중히 읽고 중요한 부분은 베껴쓰고, 어떤 생각이 스쳐가면 놓치지 않기 위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하던 그 부분들의 자세에서 참으로 많이 뉘우치고 나의 학문에 대한 자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러 옛분들의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에 더해 이 책을 쓴 정민 선생이 진정한 책벌레이자 메모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출근길 지하철안에서 본인이 풀칠로 제본하여 만든 책을 읽고 번역하고 거기에 감상을 덧붙여 여러 권의 책을 냈다고 한다. 학생의 신분도 아닌 교수로서 연구실에서 뿐만 아니라 통근길에도 책을 펼치고 헬스클럽에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고서를 읽어 주역연구하시냐는 말까지 들으며, 아내가 외출준비를 끝마칠 때까지의 지루한 시간을 책으로 보낸다는말에서 이분은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하는 분이로구나, 존경심이 일었다.

새해초라 독서에 대한 각오가 남다르다. 그러한 때에 읽기에 아주 적절한 책이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 옛사람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학문에 대한 자세, 끝없이 기록하고 연구하는 모습들이 나도 책을 정말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을 고취시켜준다. 이제부터 그저 눈으로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꼼꼼히 읽고, 적극적으로 생각들을 메모하는 방향으로 독서에 대한 자세를 바꾸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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